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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30. 2022

돈 위에 사람 있어요

돈보다 진짜 소중한 것들

건강한 먹거리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자본주의 아래서 인간이란 뭘까? 하는 의문이 든다. 온통 즐비한 카페와 식당 메뉴들, 화려하게 광고하는 인스턴트와 과자들의 향연을 보고 있노라면 참 식품을 파는 기업들이 이걸 먹는 사람의 건강 따위 안중에도 없구나, 싶어 진다. 그저 자극적인 합성 첨가물들을 때려 넣고, 영양 밸런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괴식들을 마구 생산하고 개발하며 팔아댄다.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식품은 더 이상 음식이 아니라 그저 공산품이며, 기업에게 있어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소비자로 전락한다. 그냥 돈만 써주면 장땡이라는 거다. 인류의 건강 같은 기본권조차 자본주의 사회에선 유린당한다. 현대인의 건강까지도 자본주의의 인질로 잡혀있는 꼴이다. 



요즘은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대해 회의감을 느낀다. 자본주의라는 것, 화폐라는 것은 모두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인데 어느샌가 주객이 전도되어 화폐와 자본의 질서 아래 인간이 지배당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돈이 많아야 행복할 거라는 착각을 심어주고, 소비를 하면 행복해질 거라는 착각을 심어준다. 인간은 소비하기 위해, 소유하기 위해,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자본의 노예로서 구르고 노동한다. 그 과정에서 삶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지 못하고 그저 돈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인간은 생산하는 기계이자 소비하는 기계가 된다. 노예제도는 폐지되었으나 그 대신 전 인류는 자본의 노예가 되었고, 스스로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신분제 역시 폐지되었으나 상위 1%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계급 차이가 발생한다. 자본 축적의 정도가 신분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게 다 돈벌이가 된다. 인간의 기본권은 물론이고 인간마저도 상품으로 전락한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상품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라 인적 자원으로 길러진다. 취업 "시장"에서 더 잘 팔리기 위해 "스펙"을 쌓고 스스로를 "마케팅"한다. 스펙은 원래 군사용 무기 사양을 따질 때 사용하던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 아래서 인간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법보다 더 비싼 노동 기계가 되는 방법을 배운다. 나의 성과와 성취, 능력을 두고 시간당 얼마의 화폐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가를 계산하며 자기 자신을 물화하고 상품화한다. 



기업은 단지 이윤 추구만을 위해 자극적인 콘텐츠를 알고리즘에 띄우고, 어떤 물건을 판매하고자 할 때 인간 삶에 이로운 것인지 보다 돈이 될 것인지를 먼저 따진다. 어떤 기업이 거대해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약자들의 지갑을 착취해야만 한다. 사람들은 순간의 쾌락을 위해 기꺼이 착취당한다. 무언가를 더 소유하기 위해 돈을 악착같이 모으고, 자본을 어떻게든 굴린다. 삶을 돌볼 시간은 사라지고 이게 자본을 위한 인생인지 인생을 위한 자본인지 모르겠는 지경에 이른다. 




나는 이게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인간의 존엄 위에 자본이 있고, 생명의 존중 위에 자본이 있는 지금 사회가 너무나도 기괴하게 느껴졌다. 실존하는 것들을 허구의 개념인 돈으로 얼마에 교환할 수 있는지 따지며 가치를 매기는 것. 



자본은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이고, 돈과 화폐는 인간이 만들어 낸 도구이며, 허구의 약속이다. 반면 인간, 동물, 자연은 현실에 실재하는 것들이다. 현실에 존재하는 가치들을 지켜내야 하는데, 실재하는 것들은 외면한 채 허상뿐인 돈에 목숨을 내걸고 있지는 않은가? 지구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것들을 허상의 숫자로 바꿔치기하면서 생명이 죽어나가든 말든 나 몰라라 하고 있는 현실에 회의감을 느낀다. 인간의 행복이 자본 아래 사장당하고 있는 현실에 회의감을 느낀다. 정말로 중요하게 지켜야 할 가치들이 무엇인지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사는 게 아닐까.



돈은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고, 자본주의 체제라는 경제 시스템 안에서만 유효하다. 


그러나 현실에 실존하는 것들은 다르다. 인간은 그 자체로 존엄하고 소중하며, 지구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다른 생명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 동물, 자연을 재화, 상품, 물적 자원으로 취급한다. 생명이 아니라 그저 기계를 다루듯 한다. 착취와 약탈, 불평등과 차별을 발판 삼아 굴러가고, 인간의 기본권마저 기업의 이윤 아래 인질로 붙잡히는 자본주의가 과연 옳으며 당연한 것일까?



더불어 소비와 소유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느낀다. 더 많이 소유할수록 나라는 존재가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든다. 내 방 안에 물건이 많아질수록 나의 존재감은 약해진다. 소비한다는 것은 자연을 파괴한 결과물을 손에 쥐겠다는 의미이고, 소비라는 이름 아래 불필요한 쓰레기를 구입해 다시 쓰레기로 내다 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많이 가지면 행복할 것 같지만 정작 다 가진 뒤에도 허무함만이 남는다. 소유는 궁극적으로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더 가지고자 하는 것은 욕구가 아니라 욕망이며, 욕망은 절대 해소되지 않는다. 


어차피 많이 소유해 봐야 내가 영원히 들고 갈 수도 없는 것들이다. 내 손에 탐욕스럽게 쥐고 무덤까지 가져가 봤자 땅속에서 나와 함께 썩어갈 것들이다. 


또한 내가 더 많이 가져간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모든 것은 무한하지 않고, 내 손에 쥔 것이 많을수록 다른 사람의 손에 돌아가는 것은 적어진다. 무분별한 소비와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것은 일종의 약탈이다. 



정말로 돈으로부터 자유롭고 풍요로워지는 길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나만의 삶을 살겠다고 선택하는 것임을 알았다. 더 많이 가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는 것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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