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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r 18. 2022

사회도 개인도 없는 국가

집단주의 경쟁사회 대한민국

나는 항상 대한민국 사회가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고,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을 무시하는 철저한 집단주의 사회라고 생각했다. 공동체 앞에서 개인이 지워지는 것을 어쩔 수 없는 것,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회라고.


게다가 한국에서 채식인은 아직까지 소수자에 해당하기 때문에, 같은 채식인들이 다들 다양성의 존중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나만 가지는 문제의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공고해져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시청한 유튜브 동영상에서는 한국사회가 극심한 개인주의를 겪고 있는 사회라고 말하더랬다. 무슨 소리야, 한국에는 개인이 없는데.  처음 들어보는 주장이라 당황스러웠으나 다음 문장을 듣고 이내 그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저는 한국을 사회 없는 사회(society without social)라고 불러요.


출처

https://youtu.be/N8OkMgIxY_w






그러니까 집단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그 안에 조화, 협력, 화합, 지구 공동체 의식, 약자에 대한 공감과 같은 사회적인 가치의 추구는 없다는 소리다. 오로지 너와 내가 같아야만 한다는 이기심과 너와 내가 같기 때문에 벌어지는 경쟁만이 남는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 가지 감상이 떠올랐다.


이토록 최악일 수가 없구나.



정리하자면 현재 대한민국은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없는 집단주의 사회이면서 사회적 가치와 공생에 대한 상상력이 결여된 극단적 이기주의 경쟁 사회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은 이타주의가 아닌 이기주의를 배운다. 타인에 대한 존중과 다름을 인정하는 태도 대신 상대가 내 가치관에 부합하는 행동을 해주길 바라고, 은근히 강요한다.






어제는 티비를 틀었다가 한국인의 DNA라고 논해지는 내용에 대해 보았다. 한국인들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고 말하더랬다. 그 말을 듣고 뼛속까지 공감했다. 한국 사회는 네가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한다. 내 방식대로 하라고 주장하면 네가 나와 같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엄연히 폭력이다. 타인을 입맛대로 바꾸려는 태도는 가히 폭력적인 행위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눈치라는 이름으로 이런 폭력을 정당화한다. 집단생활하려면 네가 맞춰야지. 사회생활하려면 네가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가령 다 같이 식사하는 자리를 가지려면 꼭 누군가가 포기해야 하는 걸까? 그냥 각자가 먹을 것을 각자가 선택하고 한 자리에 모여 앉아있기만 하면 되는 것은 아닐까. 내 입에 넣을 것조차 마음 편하게 선택하지도 못하는 삶이 편안할 리 없다.






외국에서는 상대방에게 자기 의견을 말할 때 내 생각은 신경 쓰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덧붙인다. "내가 보기에 너는 주황색보다 마젠타가 어울리는 것 같아. 지극히 내 개인적인 의견이니 신경 쓰지 말고 주황색 입고 싶으면 입어." 이게 그들의 화법이다. 상대방이 선택의 주체임을 고려한다.



그러나 한국인의 화법은 다르다.


 "너는 주황색보다 마젠타가 어울리니 이왕이면 다음부턴 마젠타를 입어."


이게 강요가 아니면 무엇인가?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통제하려 시도해 놓고 꼭 뒤에 변명을 덧붙인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조언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조언이 과연 상대방을 위해서일까? 본인이 원하는 상대방의 모습을 보기 위해, 혹은 내가 보기 싫은 상대의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서는 아닌가? 이토록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위를 저지르고도 교묘한 포장으로 죄책감에서 도망치려 든다. 내가 하고자 하는 첨언이 상대방을 진짜 위하는 것인지, 상대방이 내 뜻대로 행동하기를 바라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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