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비건 8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그동안 매일 매 끼니를 직접 해 먹으면서 요리실력도 늘었고, 음식이 단순히 배를 불리고 입맛을 즐겁게 해주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삶이자 정치이고 경제 그 자체라는 의식이 들었다. 음식은 곧 우리의 세상과 연결된다. 오늘은 그동안 해먹은 음식과 간단한 조리법 소개, 그리고 음식을 먹으며 느낀 것, 철학적인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비건이 되고 나서 요즘은 매일 새로 태어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분명 밤에 에너지를 전부 소진한 상태로 잠에 들었는데,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생생한 상태가 되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피곤하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동이 터오는 새벽을 가볍게 맞이하기 때문인 듯하다. 매일 신체의 자기 회복력에 놀라며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의 나를 활동하게 해 준 세포들은 그 몫을 다하고, 다시 새롭게 오늘을 맞이할 수 있도록 몸이 낡은 허물을 한 꺼풀 벗겨낸 듯한 기분이다. 그러면 나는 오늘을 활기차게 맞이할 수 있도록 밤새 회복한 내 몸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새롭게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는다. 그렇게 매일 정화 작용을 거친듯한 몸으로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신다.
자연의 모든 것은 자정능력을 가진다. 모든 것은 순환하며 연결되어있다. 순환하지 못하고 고여있거나 축적되면 썩고 곪는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거대한 순환 고리 안에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의 장기도 순환하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몸 안의 기운과 피가 막히지 않고 잘 돌아야 한다. 잘 순환할 수 있도록, 그래서 매일 새롭고 신선한 기운으로 생명이 자라날 수 있도록 자기 자신과 타자와 지구를 도와주어야 한다.
투움바 파스타
대체유(아몬드유나 두유), 고춧가루, 간장으로 간을 한 투움바 파스타. 들어가는 재료만 간략하게 소개하는 이유는 각자 입맛에 맞는 간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채소도 원하는 대로 준비하고, 파스타 면도 취향껏 준비하면 된다. 대체유, 고춧가루, 간장을 적절하게 배합하여 끓여주기만 하면 끝이다. 파스타면을 먼저 넣어 삶은 다음 물이 졸아들면 다진 마늘과 채소를 넣고 간을 해주면 된다.
그냥 익힌 채소 모둠과 과일. 이렇게 간소하게 먹을 때 사실 가장 좋다. 요즘은 밥이 안 당겨서 그냥 쪄서 먹기만 하면 되는 감자나 고구마를 자주 먹었다.
가장 좋아하는 감자와 샐러드 과일 구성. 가장 간단하고 단순하지만 가장 깨끗하게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서 좋다.
상업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음식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게 되고, 그저 배를 채우고 쾌락을 느끼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 인간은 그동안 자연에서 직접 음식을 얻음으로써 이 음식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과정을 떠올리고, 내가 먹는 것들이 곧 나를 이루며 나의 기운이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원시 사회에서부터 산업 사회 전까지만 해도 내가 먹은 것들과 연결됨으로써 생태계의 순환 고리 안에 존재한다는 신성하고 경건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다. 근대 이후 가속화 된 산업 문명은 이러한 의식을 전부 끊어버리게 만들었다.
식사는 단순히 칼로리 열량 에너지 영양소를 섭취하는 문제가 아니고 내가 내 몸에 넣는 것들과 하나로 연결되는 영적인 행위이다. 이러한 인식을 가지고 식사를 한다면 경건하고 신성한 마음으로 과도하게 탐식하지 않게 됨은 물론이며 더 생명력 있는 것들을 세상과 나누는 마음으로 먹게 될 것이다. 내가 차지하는 자원이 적으면 세상에 있는 자원을 풍요롭게 아껴둘 수 있다.
갈릭 떡볶이.
편 썬 마늘, 양배추, 파프리카, 양파와 떡을 준비한다.
떡을 먼저 삶은 다음 물이 졸아들면 채소들을 넣고 다진 마늘, 소금, 파슬리, 후추로 간을 해주면 된다. 마찬가지로 간은 본인이 원하는 만큼 하면 된다. 정량은 없다.
비건 탄탄멘.
땅콩을 가루 내어 빻아 땅콩의 고소함을 더해주었고, 화죠와 건고추를 우린 물로 끓여내 얼얼한 맛을 냈다. 채소는 청경채, 숙주, 양파, 대파를 넣었다. 면은 통밀면을 사용했다.
탄탄멘에 쓰이는 두반장은 미소된장에 소금과 절인 고추를 추가해서 만드는 것이라기에 그냥 미소된장을 풀고 소금과 고춧가루로 간을 해주었다. 맛은시중에 파는 탄탄멘 못지않게 맛있다.
먼저 양파와 대파로 채수를 낸 다음 된장을 풀고 면을 삶아주다가 숙주와 청경채를 넣고 끓여낸 다음 간을 봐가면서 추가해주면 된다.
대기업에서 파는 자극적인 양념과 인공 첨가물, 기름과 설탕 없이도 충분히 맛있는 요리를 자연식으로 해 먹을 수 있다. 생쌀에 생채소만 먹는 것이 자연식이 아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잘못된 음식을 과식하는 이유는 음식이 단순히 배를 채우는 영양소의 집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 그리고 인간이 무엇을 먹어야 하며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도, 인간 스스로가 자연적인 생명체이므로 자연에서 난 것들을 먹어야 이치에 맞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 또한 이 음식들이 어떻게 만들어져서 여기까지 와 나를 보양해주고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기업이 기획하고 공장에서 생산된 거짓 음식을 먹는 존재가 아니라 자연이 선물해준 생명력 있는 에너지를 흡수하며 살아가는 생태계의 일원이다. 또한 그 자연이 기꺼이 인간에게 허락해준 양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음미하며 내가 이 식사를 통해 내 몸을 지탱할 힘을 얻고, 동시에 이 음식이 나에게 양분을 주면서 우리가 연결된다는 의식을 가진 상태로 음식을 대해야 한다.
좋은 기운으로 가득 찬 생명력 있는 유기농 자연식을 먹으면 나 역시도 활기 있고 좋은 에너지로 내 몸을 채우는 것이 될 테고, 인간의 탐욕과 동물의 원한이 가득 든 산업화의 산물을 먹는다면 생명력 없고 죽은 기운만이 몸을 채우게 될 것이다.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 된 육류, 공산품과도 같은 과자, 정크푸드, 인스턴트, 패스트푸드 등이 후자에 속한다. 탐욕과 무지가 만든 음식은 먹는 사람 역시도 탐욕과 무지에 빠지게 만든다. 이것이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져 왔는지도, 고기가 사실은 그저 힘없이 살해당한 시체 조각일 뿐이라는 것도, 대기업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 인간에게 해로운 첨가물 범벅이라는 것도 모르는 상태로 입에 밀어 넣기 바쁘도록 만든다.
달달한 것이 먹고 싶어 져서 통밀 두부 브라우니를 구웠다.
두부 반모, 무가당 카카오파우더, 사과 작은 것 1알, 통밀가루, 천일염, 두유만 준비하면 된다.
재료의 비율은 나도 꾸덕하고 단단하게 만들기에 실패했기 때문에... 들어가는 재료만 언급했다.
반죽의 농도는 봐가면서 조절하면 될 것 같다. 180도 오븐에 25분 정도 구워주었다.
냉장고에 넣어놓고 식혔더니 초코크림 케이크 같아졌다. 동물의 젖을 쓰지 않고도 자연의 재료로 충분히 달달하고 맛있는 케이크의 사치를 느낄 수 있다.
이 음식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하다 미소 국밥으로 정했다.
뽀얀 국물이 보고 싶어서 미소된장을 사용해 아욱 된장국을 끓여보았다. 한식 된장을 썼을 때와 전혀 다른 맛이 난다. 맛은 설렁탕과 비슷하다. 국밥집에 가면 느낄 수 있을 법한 진하고 고소한 맛이다.
미소된장, 후추, 거피하지 않은 들깻가루로 설렁탕이 그리울 때 비슷한 느낌을 낼 수가 있다.
미소된장 한 스푼, 통들깨가루 2작은술을 넣고 후추로 마무리를 해주기만 하면 된다.
자연식은 이처럼 간단하면서도 새롭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레시피로 응용이 가능하다.
위의 반찬들은 오이 고추 된장무침, 부추무침, 부추 장떡, 양파 상추 무침이다. 모든 반찬에는 기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재료의 신선한 맛이 더 잘 느껴지고, 장떡은 기름 없이 굽는 쪽이 장떡의 식감과 어울린다.
요리를 하다 보면 생각보다 기름이랑 설탕이 필요가 없다.
기름과 설탕을 쓰지 않고도 맛을 내는 데에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심지어 더 깔끔하고 담백하고 맛있기까지 하다. 그래놀라도 기름 없이 구워도 바삭하게 구워진다. 그런데도 불필요하게 여기저기 기름과 설탕을 넣어 만들어 팔거나 쓰이거나 한다. 사실은 꼭 필요하지 않은데도 그냥 습관처럼 넣는 것 같아 보인다.
과거의 사치는 현대의 필수품이 되었다. 문명이란 사실 불필요한 생필품을 늘리는 과정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에 백번 동의한다.
들깨 크림 파스타.
두유, 거피 들깻가루, 통밀 파스타면, 간장 혹은 소금, 원하는 채소만 준비하면 된다.
모든 파스타는 원팬으로 조리한다.
파스타면을 먼저 물에 삶아주고,면이 어느 정도 삶아졌다 싶을 때 물을 살짝 따라내고 채소를 넣은 다음 간을 해주면 끝이다.
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입맛에 맞도록 조리하면 된다.
우리는 자연이 내어준 아름다운 순환 고리 속에서 공생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탈자연적인 삶의 양식과 자연의 예측 불가능성을 통제하려는 지배적이고 기계적인 접근 방식이 지구의 조화를 무너뜨렸다. 인류는 지구의 자정작용에 의해 삶의 터전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놓였다.
우리는 우리 각자와 서로의 살림살이를 더 이상 남의 일인듯 외주 맡기고 외면해서는 살아갈 수 없다. 기후재앙으로 인한 식량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도 식량 자급이 필요하다. 해외에 의존하는 식량 수급과 시장에 의존하는 식량 수급은 타국에 대한 착취, 노동자와 자연에 대한 착취를 낳는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고 생명을 사랑하며 타인을 사랑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삶과 존재를 사랑해야 한다.
가급적이면 살림살이를 타인의 임금노동에 외주 맡기는 대신 내가 직접 길러먹고, 요리해 먹음으로써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기름으로써 자립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음식 앞에서 무력한 소비자가 되지 않고 매일의 식사에 자긍심과 자립심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져 나를 채워주는지 그 과정을 보게 되기 때문에 식사가 소중해질 것이다. 그렇게 매일의 생명력 있는 식사로 나의 오늘을 만들어 나감으로써 나를 돌보겠다는 마음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