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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24. 2022

어느 채식인의 식사 일기

이사 준비로 남이 차린 밥상 먹은 후기

1. 정제소금이랑 천일염이 맛이 다르다. 둘 다 똑같이 짜긴 한데 천일염이랑 다르게 정제염은 진짜 짠맛만 난다. 불쾌하고 인공적이고 자극적인 짠맛이라서 염분 보충이라는 느낌보다 그냥 짜기만 하고 기분이 나쁘다. 어딘지 모르게 인위적인 짠맛... 그냥 천일염으로 간을 하다가 간 맞추기에 실패해서 짠 거랑 맛이 다름.

아주 오랜만의 조미김.
내가 원래 먹던 김.

원래 먹던 비 조미김을 다 먹어서 아주 오랜만에 일반 조미김을 먹었더니 기름은 고사하고 정제염 짠맛이 너무 익숙하지 않거니와 불쾌하고 강렬한 짠맛에 먹고 싶지 않아 졌다. 옛날엔 어떻게 이 짠 김에다 고추장까지 넣어서 밥을 싸 먹었나 모르겠다. 엄마가 애를 잘못 키움. 아니, 자본과 기업이 사람을 잘못 키운다.






2. 건강염려증 그만하자고 생각했는데 역시 신선하지 않은 음식, 특히 기름진 음식을 배부르게 먹었더니 기분이 좋지 않다. 내 몸에 좋은 것들을 넣어주어야 하는데 자동차에 깨끗한 연료 대신 부산물 둥둥 떠있는 오래된 휘발유 넣은 기분임.


어제 먹은 순두부.

들깨 국물은 대부분 육수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어 그나마 가장 안전한 메뉴인 들깨 순두부를 택했다.(당연히 굴은 뺌.) 원래는 일반 하얀 전통 순두부를 먹으러 갔던 거였는데 이 지점엔 그 메뉴가 없었다. 프랜차이즈면 제발 전 지점 메뉴 통일 좀 해주기를...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갔는데도 메뉴가 달라 당황했다.


 내가 먹은 것이 곧 내가 되는 거라면 어제 해물 육수인지 맹물인지 모를 국물에다 끓인 순두부, 기름진 감자전을 먹을 것이 아니었다. 내가 동물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에 집중하자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신선하지 않은, 다 죽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싶지는 않다. 장기적으로 나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것이 뻔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스스로에 대한 학대 같다. 좋지 않은 음식인걸 알면서도 건강염려증 그만하자면서 꾸역꾸역 먹는 게... 너무 자해 같음. 이런 걸 입에 밀어 넣는 것 자체가 내 몸한테 미안해서 싫다.


게다가 어제 감자전 마지막 조각에서는 무려 돼지기름 냄새가 났다. 삼겹살 구운 것처럼 신선하지 못한 냄새. 부패한 기름 쩐내가 나서 정말 정말 버리고 싶었다. 근데 비건이 음식을 버려? 그냥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대가라고 생각하면서 꾸역꾸역 먹었다. 맛없었음 정말로... 동물성 음식을 조리한 곳에다 같이 조리하니 감자전에서도 비린내가 나고, 좋은 기름이 아니라 업소용 콩기름을 고온에 조리하니 산패된 기름 냄새가 난다. 그런 냄새들이 불쾌했다. 손으로 감자전 찢어먹었는데 손에 묻는 기름들도 기분 나빴다. 식용유를 고온에 조리하면 다 트랜스지방이 되는데...


더 이상 여기에 무엇이 들어갔는지 몰라 의심스러운 것들, 신선하지 않은 음식들을 굳이 돈 줘가면서까지 먹고 싶지 않다. 이제 외식 그만하고 싶다는 소리임.

게다가 배가 부르면 오히려 몸이 힘들다. 과식이 아니라 그냥 배가 든든할 정도로만 먹었는데도 몇 달 내내 배부름이 뭔지 모를 만큼, 허기만 면하는 수준으로 먹어온 게 습관이 되어서 그런가 몸이 무겁고 지치는 기분이었다. (아니면 그냥 내가 어제 식사 전에 배가 하루 종일 고팠던 상태로 에너지를 많이 써서 지친 걸 지도...) 그러나 그걸 감안해도 배가 무거우니까 기동성이 좋지 않고 움직임이 둔해진다.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어도 위가 자극을 받아서 마찬가지로 움직임이 불편해진다.


채식 이후 몇 달 내내 배고파서 힘들었지만 배불러서 힘든 것 역시 유쾌하진 않다. 그러니 매운 음식으로 과식까지 하면 몸이 얼마나 피곤하겠냐고. 과거의 내 만행을 다시 한번 반성하는 중. 이십 년가량을 잘못 살았으니 남은 인생만큼은 식사로 내 몸을 해치고 싶지 않다.


음식은 살기 위해 먹는 건데 유독 현대인만이 죽기 위해 먹는다. 서구화된 식습관으로 병들어 죽든, 공장식 축산과 산업적 어업으로 인해 기후 위기로 죽든, 공장을 돌려 인공첨가물, 합성 화학물질 잔뜩 넣어 만든 가공식품으로 환경과 신체를 모두 오염시켜 죽든, 소비주의 문화가 만든 음식의 피해자들이 과식으로 문명병에 걸려 죽든. 아무튼 유독 현대인만이 죽기 위해 먹고 있다.


소위 가난하던 시절에 우리 조상들은 다 직접 재배한 유기농 현미와 통밀을 먹었고, 정제 설탕 따위는 입에도 댈 수 없었다. 밭에서 기른 채소를 밥상에 올리고 산에서 따온 나물을 밥상에 올렸다. 기름은 직접 짠 참기름과 들기름을 썼다. 그런데 더 잘살게 된 지금은 오히려 식탁의 질이 아주 나락으로 추락했다.


콩기름 카놀라유 올리브유 포도씨유 등등 오만가지 식용유들을 범벅으로 쓴다. 생리에 맞지 않는 먹이를 먹어 (초식동물에게 GMO곡식과 사료, 음식물 쓰레기를 먹이고, 빨리 잡아먹기 위해 성장 촉진제를 맞힘.) 병살이 찌고, 과도하게 빨리 자라고,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동물들을 도려다가 지지고 볶고 삶고 튀기고 아주 난리 부르스를 떤다. 정제 설탕, 정제염, 껍질을 전부 벗겨낸 정제된 곡식 가루들에 가공유지와 화학물질, 방부제 보존료 MSG 등을 버무려서 식탁에 올린다. 더 나아가 원재료가 무엇인지 감히 상상조차 가지 않는 괴랄한 것들을 만들어서 팔고 있다. 특히 카페 음료나 디저트, 분식들.

포스터만 화려하게 뽑아놓으면 다인가 싶다.
날이 갈 수록 수상해지는 음식(?)들...



자연 그대로의 맛을 먹다 보면 저런 것들이 더 이상 맛있다고 느껴지기보다 그냥 공장에서 만든 인위적인 공산품 맛이라고 느껴지게 되는데, 이미 현대인은 저런 자극에 길들여져서 영양으로 자살골을 넣고 있다. 자본 때문에 인간을 죽이는 식품업계에 기꺼이 돈을 내고 목숨을 바친다.






3. 건강은 둘째치고 내 몸이 살아있는 동물 무덤이 되는 것이 싫다. 나는 동물들의 무덤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잡아먹은 것이 내가 된다면 나는 살아있는 채소, 과일, 신선한 양곡으로 좋은 에너지- 태양의 에너지-를 듬뿍 받은 몸이 되고 싶지, 인간의 탐욕 때문에 잔인하게 혹사당하다 죽은 동물들의 시체로 채워진 몸이 되고 싶지 않다. 바다를 헤엄치고 갯벌에서 숨 쉬어야 할 생물들을 잡아다가 고아서 끓인 시쳇물도 먹고 싶지 않다. 거기 들어있는 것들은 엄연히 시체들이다.


다른 생명체들이 인간을 싹 잡아다가 백인은 유리 칸에 가둬 전시하며 돈 받고 분양하고, 흑인은 토막 내서 구워 먹고, 황인은 끓는 물에 던져 국물 내서 먹는다면 징그럽고 잔인하다고 할 거면서 인간은 다른 동물들을 상대로 지금 그 짓거리를 하고 있다.


알은 엄연히 다른 생물의 태아이다. 젖은 다른 생명의 새끼를 위해 분비되는 액체다. 고기는 음식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살아 숨 쉬던 다른 동물들의 죽은 살점이다. 불판 위의 고기 냄새는 그냥 살이 타는 냄새다. 타는 냄새. 나에게 이제 그것들은 탄내가 풍기는 시체 조각이나 다름없다. 징그럽고 잔인하다.


우리는 젖먹이가 아닌데도 다 큰 어른들까지 다른 생물종의 젖을 탐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젖먹이들한테도 다른 종의 젖을 뺏어다가 물리고 있으니 인간 생리에 맞지 않는 행위임을 알아야 한다. 그 젖은 송아지를 소로 자라게 하기 위한 젖이지, 인간 아이를 인간 어른으로 만들어주기 위한 영양분의 젖이 아니다.


언젠가 도축이 인간 도살과 같은 행위임을 인지하는 날이 올 것이다. 


생존을 위해 먹이사슬 안에서 잡식으로 존재했던 -심지어 인류는 주로 잎채소, 열매, 나무에서 내려온 뒤부터는 떨어진 열매와 뿌리채소, 덩이줄기, 심심풀이로 짓던 농사를 통해 얻은 곡식 낟알 등을 주식 삼아 먹어왔다. 인간은 동물을 뜯기 좋은 형태로 진화하지 않았다. 사냥하기엔 너무 느리고 약하고 힘이 없으며 손발톱도 날카롭지 못하고 혀도 부드럽고 치아도 뭉툭하다. 우리의 장이 초식동물보다 짧은 것은 생채식 대신 화식을 했기 때문이다. 결코 동물을 많이 먹어서가 아니며, 수렵 채집 시절에 인류를 주로 먹여 살려 온 것은 여성들이 채집해 온 식물들이었다. 수백만 년 동안 인류는 다양한 식물성 음식과 녹말을 먹었다.- 그때와 지금은 엄연히 다르다.


오히려 우리의 아주 오랜 조상들은 살기 위해 야생에서 동물 하나를 사냥할 때도 제사를 지냈다. 그들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들을 생명으로 대하지도 않는다. 돼지에게 연민을 느끼면 또라이가 된다. 강아지랑 돼지가 그러니까 뭐가 다르냐고. 인종차별이 나쁘다는 건 알면서 동물종 차별은 당연시한다. 동물농장 보면서 우는 건 정상이지만 채식하면 비정상이다. 인간이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이 아주 뿌리 깊게 박혀있고, 우월하기 때문에 막 대해도 괜찮다는 우생학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인간은 그들보다 우월하지 않다. 오히려 무엇을 먹어야 할지조차 몰라서 인터넷 검색이나 하고, 공장에서 나온 것을 음식이라며 먹고, 본능적으로 지진이나 자연재해를 직감하지도 못하고, 빠르게 달리지도 못하고, 자기 식사량도 몰라서 과식하고, 주량도 몰라서 과음하고, 체온을 유지할 체모도 없어서 덥거나 추우면 죽고, 생후 일 년 가까이 걷지도 못한다.


동물들은 병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살기 위해서 어디에 터를 잡아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알고, 계절이 변화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며, 밤과 낮 중 언제 활동해야 하는지도 본능적으로 알고, 자연재해의 전조도 본능적으로 느낀다.


인간은 생명체인데도 생존과 관련된 것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전능하다 믿는다. 본인이 자연에 소속된 일부인 줄도 모르고 자연을 해친다. 자연에는 없는 소유라는 개념이 얼마나 허구인 줄도 모르고 소유하기 위해서 스스로의 정신과 타인을 해친다. 인간은 이토록 연약하고 어리석다.





4. 원래 자라야 할 것보다 더 자라거나 성장이 멈추지 않으면 그것은 암으로 변질된다. 따라서 멈출 줄 모르고 탐욕을 부리며 더 큰 생산성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축산업은 암이다. 더 많고 더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오늘날의 육식은 암이다. 원래의 상태보다 더 크게 자라난 축사의 동물들은 암이다. 이런 재료를 넣고 더 높은 매출만을 바라보는 오늘날의 외식업, 식료품 산업 역시 암이다. 암을 먹으니 암에 걸린다. 인간을 위해 동물의 생명을 팔아 무한 증식을 꿈꾸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생명을 파는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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