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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24. 2022

먹는 것에 진심인데요

진짜 잘 먹고 잘 사는 것

나는 먹는 것에 진심인 사람이다. 단언컨대 나만큼 먹는 일에 진심인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분별하게 유행하는 음식들, 온갖 가공을 거친 음식들, 혹은 해외의 화려한 먹거리들을 먹어 치우는 방송이 성행하는 요즘이다. 이런 세상에서 먹는 일에 진심이라고 하면 흔히들 먹는 행위 자체를 굉장히 즐기며, 아무거나 잘 먹고, 식당에 가면 여러 가지 사리나 메뉴를 추가한다든지, 맛집 탐방이 취미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먹는 것에 진심"이라고 하는 말은 그런 것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탐식을 즐긴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여기서 먹는 것에 진심이라는 말은 어떻게 하는 것이 정말로 "잘"먹는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잘 먹는다는 것은 소위 말해서 아무거나 입 안에 밀어 넣고 맛있게 먹으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무엇을 먹어 마땅한 생명인가를 생각하며 먹는 것이 바로 잘 먹는 것이다. 무엇이 인간을 살게 하는 올바른 먹거리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정말로 잘 먹는 길의 출발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 산업 문명이 만들어 낸 현대의 음식들은 인간의 진정한 음식이 될 수 없다. 고양이가 초식 동물이 아니고, 얼룩말이 육식 동물이 아니듯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공장에서 만든 가짜를 먹는 존재가 아니라는 소리다. 인간은 동물들과 같이 자연에서 나와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이다. 인간은 자연이 주는 은혜를 먹는 생명이다. 공장에서 만든 음식, 자연적이지 않은 고도로 가공된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 초원의 동물이 없듯이 인간도 본디 자연이 내어주는 것을 먹고살아야 마땅한 동물이다.


그런데 현대에는 자연의 맛을 살리기는커녕 식탁 그 어디에서도 자연을 맛볼 수가 없어졌다. 인간이 병들고 살이 찌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연의 구성원인 인간이 점점 자연에서 멀어진 섭생을 일삼으니 병이 들고 염증이 몸에 붙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잇살이 찌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자연계에선 나이를 먹는다고 살이 찌는 동물은 없다. 이 시대에 나잇살이 찐 세대들은 지난 세월 동안 자연에 뿌리박은 전통적 삶에서 급격한 근대화를 겪은 세대이다. 자연을 떠난 생활 방식으로 인해 몸이 적응하지 못한 탓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산업 문명이 고도화되면서 음식은 점점 땅을 떠나고 공산품처럼 변해갔다. 인스턴트나 자극적인 양념으로 재료 본연의 맛을 묻어버린 화려한 음식들은 인간을 인간 본연의 입맛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제철 나물을 맛있게 먹지 못하고, 잡곡밥이나 현미밥이 맛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그 결과이다. 인간은 본래 취해야 할 섭생에서 벗어나 기업이 화려하게 꾸며 놓은 가짜들을 방종하게 탐닉한다.


단순히 인스턴트, 패스트푸드, 가공식품뿐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은 모든 생명과 그 생명의 터전을 설계할 때 그 안에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조화를 갖추어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예컨대 모든 생명체들은 자신이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땅에서 나는 것들 만으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도록 태어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수입산 곡물을 슈퍼푸드랍시고 먹고, 아보카도나 샤인머스캣 같은 수입산 품종과 과일을 너도 나도 찾아댄다. 계절감이라곤 이미 상실한 지 오래라 가을에 빙수가게에 찾아와선 딸기빙수는 없냐고 물어댄다.


두류를 가공한 음식들, 이를 테면 된장이나 간장 같은 장류들, 두부는 외국에서 수입된 유전자 변형 콩을 사용한다. 생명체의 근본이 되는 유전자를 조작해 인간의 입맛대로 바꾸겠다는 것, 그런 콩을 대량으로 단일작하여 수입하겠다는 것은 생명에 대한 모독이다.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연을 모방해 따라잡거나 넘어설 수 없다. 세상을 그렇게 기계로 대하는 근대 이후의 세계관은 단편적인 분석만 가능할 뿐, 결코 전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살아있는 유기체를 기계로 대하는 그 태도와 외국 땅에 기생해 자연을 변형해 만들어 낸 공산품을 길러 수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착각이 인류 식생의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자연에 가만히 두면 알아서 자라는 것이 작물인데, 대지의 힘으로 농사짓는 대신 석유와 화학비료로 농사를 짓는다. 지역에서 자급하여 먹으면 식량을 의존해야 하는 국가가 발생하지 않을 텐데 그것을 세계 각지로 분업하여 굳이 힘들여 수입하고 수출한다. 이런 세계화 시스템은 절대로 효율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단일 농작으로 인한 토양층의 황폐화, 기아, 낭비를 동시에 일으키는 만악의 원흉이다.


공장식 축산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곳에 있는 동물들은 인간이 동물의 섭생에 맞지 않는 먹이를 먹여 키운 동물들이다. 동물이 자연스럽게 자라지 못하고 병이 들어 비대해지거나 피폐한 환경 속에서 정신질환을 앓거나 병들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공장식 축산과 목축을 위해 다른 생물종의 터전을 몰아내고 가축과 인간만이 살아남은 지구를 만들어냈다. 현대의 육식은 생태계를 교란하는 행위의 근원이다.


따라서 화려함과 무작정 대식만을 쫓아가는 오늘날의 먹방은 잘못 먹어도 한참 잘못 먹고 있는 것이다. 자연은 우리의 선결 조건인데 인간은 자꾸 땅을 버리고 공멸하는 지름길로 먹거리를 몰아간다. 앞으로 우리에게 잘 먹는다는 것은 자연에 발맞춰 인류의 어머니인 대지를 해하지 않는 먹거리를 먹는 것, 자연과 하나 되어 간소하게 요리하여 먹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생명을 지탱하는 자연 대신 자본에 봉사하는 상품들을 먹게 되었다. 무엇을 먹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한 탐구가 세상에 대한 변혁의 씨앗이 된다. 모든 것은 먹는 것에서 시작되었으며, 먹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참고하면 좋을 서적

짚 한 오라기의 혁명, 녹색평론사

-후쿠오카 마사노부

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1309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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