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Feb 15. 2023

그런 인생, 부럽지 않다

자유를 헌납한 약탈자가 왜 롤모델인가

지난 일요일, 저녁 식사를 하며 TV를 시청하던 도중 어떤 자산가가 나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본인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벌어 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비인도적인 과로와 혹사를 영웅담처럼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대단하다며 추켜 세우는 모습이 그저 어이가 없었다.



그 방송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자산가는 24시간 내내 휴식도 없이 일하고, 바쁠 때는 임신한 아내까지 출근시켜서 자기 일을 돕게 했다는 말을 영웅담처럼 늘어놓았다. 패널들은 그런 게스트에게 대단하다는 듯한 리액션을 보였다.


임신한 아내를 과로시키고, 스스로를 혹사시켜 가며 노동력을 착취해 낸 것이 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일까? 가정과 배우자를 살피지 않고 소홀히 하며 24시간 내내 근무했던 것이 우러러볼 일인가? 누구보다도 각별히 몸조리가 필요하고,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을 회사에 출근시켜 자기 일을 돕게 했던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본인조차도 반성은커녕 성공비결이니 뭐니 하며 떠들고 있었으니 말할 것도 없다.



어이가 없는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막 8살 난 아이를 데리고 경영철학 따위를 가르친다며 그러한 류의 조기교육을 시키는 것이 앞서 나가는 부모인 양 비춰지고 있었다. 멋모르고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남들과 경쟁해서 돈을 버는 법부터 가르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이러니 대한민국에 괜히 아동 우울증 따위의 단어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그 시기의 아이들은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가치관을 성립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배워나가는 중요한 과정에 있다.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타인과 협력하고 공생하는 법 대신 경쟁하고 내 몫만 챙기는 이기적인 행위를 우선으로 가르치는 것이 옳은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이들이 살아남았으면 하는 부모들의 바람이 오히려 아이들을 더욱 삭막한 삶과 치열한 경쟁 속에 각개전투를 벌여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재테크, 투자, 저축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산가가 되어 상위 몇 퍼센트의 부자가 된 사람들을 롤모델로 삼으라고 말하는 이 사회에, 자본주의가 정말로 공평한 체제라는 공고한 믿음에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1. 자산가의 삶은 절대로 본받을 만한 삶이 아니다.


그들의 삶은 삶이 아니라 오로지 내 몫만을 차지하기 위한 쩐의 전쟁이다. 전쟁에서는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는 것이 정의다. 그러나 전쟁터에서의 정의가 정말로 올바른 정의인가? "남들이 워라밸을 해야 내가 돈을 벌 수 있다"라고 말하는 이기적인 모습이 본받아야 할 모습일까? 다 함께 평화로이 잘 사는 길은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나만 성공하면 돼, 나만 많이 벌면 돼, 나만 잘되면 돼'라는 식의 사고방식은 과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나의 몫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뺏어오지 않으면 안 된다. 부와 가난은 양립한다. 내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타인이 가난해져야만 한다. 남의 가난을 발판 삼아 그 위를 짓밟고 올라가려는 행위와, 수많은 사람들의 가난과 노동 위에 군림하는 것이 롤모델로 삼아 마땅한 것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적대감과 증오, 경쟁심과 혐오는 타인만을 향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에게도 그 화살이 향한다.


내가 나 자신을 항상 싸움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투쟁하며 살아야 한다면, 그 삶은 과연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일까? 언제나 나 자신을 이기기 위해서 언제나 스스로를 패배자로 만들어야만 한다. 영원히 오늘의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매일매일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야 한다. 그것이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 계발에 깔린 기저다. 그렇게 매일 자신과 싸우고 미워해야 이루어지는 게 성공이라니. 언제부터 성공이 정신분열의 다른 이름이었던가.


한 순간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이 자산가의 인생이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잃을까 봐 불안하다. 전전긍긍하며 "더"를 외치는 삶. 수많은 사람들의 그림자를 짓밟고 올라가 서있는 삶. 그런 사람들을 보며 롤모델로 삼으라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까? 피라미드 구조에서 상류층은 하층민들의 피눈물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인류 역사에 존재해 온 5천 년의 문명에서 계급은 언제나 약탈과 전쟁을 기반으로 발생했다. 내 몫을 더 축적하기 위해 욕심을 부리고 탐욕을 부린다는 것은 곧 약탈자가 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타인의 가난을 양분 삼아 부를 독차지 하라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가? 오히려 그들이 가난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지적하고, 부의 독점을 선망하는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줄 알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이 단 몇 사람의 손아귀 아래에서 흘러가고 있는데, 이것을 비판하기는커녕 그들 틈에 합류하기 위해 노력하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2. 돈의 소외와 모순적 태도


노동의 신성함을 따지면서 기본소득에는 반대하지만 정작 노동하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쓰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인다. 궁극적으로 일하지 않아도 돈이 들어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자 주식이니 부동산이니 투자니 하는 것들을 계속해서 시도한다. 매주 로또를 사고 당첨을 기대한다. 결국 이것은 "일하지 않을 수 있다면 되도록 노동을 피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일을 한다.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참된 노동이 아니라 돈에 의해 강제된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노동 없이 살 수 없지만 영혼 없는 노동은 인간을 질식하게 만든다. 다시 백수로 돌아가기 위해 삶을 바쳐 강제된 임금 노동을 해야 하는 바보 같은 체제를 옹호할 이유가 전혀 없다.


노동의 신성함이나 능력주의가 공정하다는 믿음 때문에 자본주의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사람들은 불로소득을 원하고, 일하지 않아도 돈이 알아서 불어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실제로도 소위 자산가들은 그런 수단을 취해 돈을 불린다. 일정 수준이 지나면 노동하지 않아도 돈이 돈을 불러온다니, 이런 특성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걸까?



언젠가부터 생긴 돈의 이런 특성으로 인해 부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돈이 있어야 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말 가난이 능력 부족 탓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산가가 된 것이 능력  덕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돈의 본래 목적은 교환을 위한 일종의 도구였다. 그러나 지금은 돈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돈은 점점 인간의 손을 떠나 제멋대로 움직인다. 돈에 자아가 생기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돈을 만든 인간은 오히려 돈에 끌려다니게 되었다. 단순한 수단에 불과했던 돈이 이제는 그 특성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이 편의를 위해 만들어 낸 돈이 인간에게서 멀어지더니 이제는 되려 인간을 지배한다. 인간은 돈으로부터 소외되었다.





돈에 의해 강제된 노동을 하고, 원치 않는 일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돈의 투기적 성격을 이용한다. 자산가의 삶은 결국 내 소유물에 의해 지배당하는 노예의 삶이다. 또한 나를 종으로 부리는 소유물을 더 많이 모시기 위해 경쟁하고 약탈하는 착취자의 삶이다.


부자가 되어봤자 한다는 건 나의 재산을 더 불리기 위해 타인의 삶을 임금 노동으로 옭아매고, 그들이 일해서 벌어다 준 돈으로 유흥거리를 찾아다니며 또다시 타인의 노동력을 소비하는 것뿐이다.


나는 그런 인생, 전혀 본받고 싶지 않다.


작가의 이전글 인간답게 산다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