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Jun 06. 2023

그러려고 하는 여행이 아닌데요

언제부터 여행은 소비와 자기 전시의 장이 되었는가

최근에는 티비를 틀면 온통 여행이나 다른 나라를 소개해주는 종류의 예능 프로그램이 범람하고 있다. 그동안 코로나 때문에 발이 묶였던 것을 화풀이라도 하는 것처럼, 입출국에서 규제가 풀리고 하늘 길이 열리자마자 랜선 여행을 표방하는 컨텐츠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컨텐츠들을 보면 대부분 맛집을 돌아다니고, 유명한 관광지나 쇼핑 타운을 소개해주고, 명품 본점, 디저트샵, 인스타에 사진 찍어 올리기 좋은 포토 스팟 등을 찾아가곤 한다. 


뿐만 아니라 여행사의 여행 상품도 이러한 구도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떻게 하면 더 초호화, 초특급의 사치스럽고 편안하고 우아하고 고상하고 남부럽지 않은 여행을 할 수 있을지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여행의 관심사는 온통 자기 자신에게 잡아먹혔다. 오로지 나의 만족, 나의 욕망, 나의 쾌락, 나의 미각과 나의 감각을 증폭시키고 충족시키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현대인의 여행은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 새로운 쾌락과 자극을 좇으려는 마음, 잃어버린 자유 시간에 대한 분노와 그 화풀이, 대접 받는 기분에 대한 갈망, 사치와 과시욕구, 타인의 욕망 모방, 갑갑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욕망 등을 동력삼아 이행된다. 그것을 부추기는 것은 여행 산업 그리고 온 나라의 전경을 보여주며 좋아보인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갖가지 여행 프로그램들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여행에 대한 이런 비정상적일 정도의 관심과 지나친 집착, 욕구는 인류 역사상 전례없던 사회적 현상이다. 인간은 지금껏 수백만년의 시간 동안 생계를 위해 아프리카를 떠나 온 등의 예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신이 발 붙이고 살아온 터전과 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삶을 살아왔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굳이 떠나고자 하는 욕망을 보이지 않았다. 원주민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만족하며, 싫증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에 반해 현대인은 병적으로 여행을 갈구한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동물들, 식물들은 자신의 근거지에서 -나고 자란 곳에서- 멀리 여행을 떠나려 하지 않는다. 사막을 여행하고 싶어하는 북극여우는 없다. 오로라를 보러 먼 거리를 떠나는 원숭이는 없다. 우리는 새들처럼 날개가 있지도 않고, 치타처럼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전 지구를 종횡무진 누비며 날고 기어다니는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나의 관심사에 들어올 일도 없는 먼 나라의 땅이 왜 밟고 싶은 것이며, 평생 맛 볼 일도 없는 먼 나라의 음식이 왜 맛있을 것 같다고 짐작해 먹어보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는 것일까? 먼 나라를 여행하는 일이 마치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처럼 타국의 화려한 도시나 휴양지, 건축물들을 보여주고 그 곳에서 한국에선 나지도 않는 재료들로 요리한 타국 음식을 먹고 감탄하는 모습들이 방송을 통해 전시된다. 그런 방송을 통해 심리적인 박탈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결국 타국 여행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여행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주도적 관광산업이 원하는 것이다. 


또한 여행에서 진정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해외에 나가 낯선 건축물과 낯선 음식을 먹고 낯선 사람들 틈에서 낯선 거리를 걷는 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일까? 현대인이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저 나를 옭아매고 있는 강제된 타율 노동과 의미를 잃은 공허한 도시적 삶에서 벗어나고자, 이 지겨움에 대한 보상심리로 분노를 표출하듯 여행을 갈망하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여전히 같은 형태의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잠깐의 여가는 삶에 숨구멍을 내주기엔 역부족이다. 더군다나 여행을 가서도 우리는 일상에서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일을 한다. 여행을 가서도 결국 돈을 쓰고, 소비하고, 자아 전시를 위해 사진을 남기고, 인스타 피드를 채우며 자랑하고, 좋아요와 인생샷을 위해 애를 쓰고, 사치로 버무린 가짜 행복을 보여주기 위해 치장한다. 쾌락적 소비의 추구, 미각적 욕망의 충족을 위해 현지 기념품을 구입하고 블로그 유명 맛집이든 로컬 맛집이든 음식점을 찾아 헤맨다. 


단지 공간적 배경만 바뀌었을 뿐 관심사가 온통 나에 치중되어 있으며, 나의 욕망만을 좇아 소비로 허영심을 채우는 행위는 집에서 인터넷 쇼핑을 하고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것과 결국 다르지 않다. 그런 여행은 진정으로 나의 의식을 깨워주거나 고양시키지 못한다. 여행에서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다. 현대의 여행은 철학적으로 타락한 도피성 유흥이다. 공허 속에서 얻는 것은 오로지 피로감뿐이다. 


여행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거짓 욕망이라는 것을 제쳐두고, 여행은 기본적으로 변화에 대한 촉구다. 새로움에 대한 시도이자 달라지기 위한 관문이다. 나를 불확실성과 위험에 던져 놓고, 오로지 타자에게 나를 맡기는 행위이다. 평화 시위를 위한 도보 여행이나 원주민들의 횡단은 이러한 목적을 담고 있다. 타성, 즉 오로지 작은 자아에 갇히기를 거부하고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어가며 성숙해지는 것, 타자 그리고 나 자신과 새로운 관계로의 변혁을 꾀하는 것이 여행의 진정한 목적이다. 


그러나 현대 소비사회에서는 오로지 나 자신을 달래기 위한 여행만이 판을 친다. 나를 달래는 수단은 이 땅에서나 저 땅에서나 소비이다. 현대의 여행은 그저 소비의 장 확대에 불과하다. 그것은 전혀 새롭지도 않고 변화를 촉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왔던 삶에 인간을 더 깊이 물들인다. 여행에서 돌아오면 남는 것은 없고 다시 일하고 돈벌고 구매하고 지쳐 잠드는 매일이 반복된다. 여행으로 얻는 쾌감은 물건 구매의 쾌감과 비슷하다. 그것은 덧없고, 한시적이며,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어주지 못한다. 



여행이란 낯선 풍경과 낯선 존재들과의 마주침이다. 한마디로 나를 떠나 타자에게로 가는 행위다. 하지만 지금 여행의 콘셉트는 정반대다. (...) 그야말로 어디서건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를 외치는 격이다. 미각의 확장과 나르시시즘의 증폭. 참 궁금하다. 이럴거면 왜 떠나지?
여행이란 떠나는 것이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친숙한 이들에게서 낯선 타자들에게로. 궁극적으로는 전혀 다른 자신을 만나기 위해. 
(...)오늘날의 여행은 떠난 것이 아니다. 열나게 제자리 뛰기를 한 것일 뿐.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


뿐만 아니라 소비주의 관광은 지속가능한 여행도 아니다. 여행지에 가서까지 쓰레기를 만들고, 쓰레기를 구입하고, 어마어마한 탄소를 배출하는 비행기를 타고, 나르시시즘의 충족을 위해 사치를 마다않는 여행은 지구에도 큰 부담을 안긴다. 

지속적이지도 못한 방식으로 이행되는 지속적인 대안이 될 수 없는 도피. 그것이 현대의 여행 신봉에 대한 진실이다.  


우리가 여행을 통해서 정말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도대체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여행을 갈망하게 만든것인가? 당연하게 생각해 온 여행의 의미를 다시한 번 새겨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현대인이 모르는 진짜 평생 숙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