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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16. 2023

괌에서 비건으로 살아 남기 2주차

괌에서 비건으로 먹을 수 있을까?

괌의 음식들은 대부분 정크하다. 기름지고, 짜고, 느끼하고, 채소는 찾아보기 힘들며 육식 위주에 MSG의 인공적인 맛도 아주 강하다.



평일에 받는 도시락 반찬들은 도저히 못 먹어줄 음식들이 대부분이다. 먹다가 화가 나서 던지고 싶을 지경이었다.


도시락은 대부분 이렇다. 엄청난 양의 흰 쌀밥에 고기 덜렁. 채소볶음은 전부 공장과 기름맛의 향연이다. 짠지류는 입에도 못댈만큼 짜다. 아무리 더운나라라서 염분이 많이 필요하다 해도 이건 정말 아니다.


고정제탄수 고지방 고콜레스테롤 고염분 식이섬유전멸식단... 괴롭다. 이렇게 먹다간 고지혈증과 당뇨는 시간문제다.






지난 2주 동안 여기 저기 마트를 배회해보았다. K마트는 식료품보다 생필품 위주고, 코스트유레스는 거대한 창고형 매장인데 크기만 크고 넓기만 넓었지 정작 물건 가짓수는 다양하지 않았다. 공장같은 내부 구조와 높은 천장까지 쌓여있는 공산품의 향연이 괜스레 징그러웠다. 인간미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렇게 공장에서 만들어진 인위적인 상품들에 익숙해진다는 게 무서웠다.


괌은 들판에 야생 닭과 돼지가 돌아다닐 정도로 자연 친화적이지만 정작 인간들은 자연과 너무도 멀어져있다. 모든 것은 비행기를 타고 섬에 도착한다. 기업의 연구소에서, 공장식 축사에서, 급속 충전 배터리처럼 인스턴트화 되어 비행기에 실린다. 고립된 자연의 섬은 기실 인공물의 섬이다. 사람들은 600만년의 자연을 간직한 제 몸에 들어가는 것이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 모른다.


괌에 오기 전, 일본에서 봤던 사람들의 모습과는 달리 이 곳 사람들은 앉아서 숨쉬는 게 버거워 보인다. 풍선처럼 가득 부푼 탐욕을 먹고 똑같이 부풀어오른다. 이 곳에서 주는대로 먹었다간 저렇게 되는걸까. 은연중에 두렵다.


여기 음식들은 가격이 비싸고 양도 많다. 모든 것이 벌크로 판매된다. 미국식 자본주의가 어떤 느낌인지 2주면 충분히 깨달을 수 있다. 미국이 왜 인간성도 잃고 건강도 잃었는지 미국만 모를듯 하다.






2주가량 장 본 음식과 가져온 햇반으로 끼니를 해결했으므로, 이번 포스팅은 괌에서 비건으로 마트 장보기 정도가 되겠다.


오트밀은 의심할 여지 없이 비건이다. 케이마트에서 510그램에 1.99불. 마트 물가가 되게 비싼 느낌은 아니다.


비건 커리들. 마트에 갈때마다 있는 물건의 종류가 조금씩 달라진다. 페이레스 기준으로 5.6~5.7불이다. 나는 봄베이 포테이토와 에그플랜트 커리를 사왔다.


왼쪽이 감자, 오른쪽이 가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꽤 나쁘지 않다. 감자는 한 끼에도 다 먹을 수 있을 양이지만 맛의 퀄리티는 오히려 커리집과 비슷하거나 나은 정도.

덜 느끼하고 덜 달아서 덜 물린다.

인공 첨가물없이 전부 천연 재료만 사용되었고, 간은 약간 심심한 느낌이다. 고춧가루를 뿌려서 살짝 더 매콤하게 먹으니 더 맛있었다.


가지는 2번 나눠먹을 양으로 충분했다. 감자는 망고 파우더가 첨가되어 좀 더 새콤한 맛이라 익숙치 않았는데 가지는 익숙한 토마토 커리 맛이고, 더 맛있었다.


커리집 절반 가격으로 2번이나 먹을 수 있으니 가성비도 좋고, 재료와 성분도 좋아 안심이다.


데이브스 브레드. 통곡물을 사용한 빵이고 사워도우 향이 난다. 다만 천연 발효종을 이용해 구운 정통 호밀 사워도우를 도저히 대량 생산 공산품으론 따라가기 힘들었는지 일부러 새콤한 향을 첨가한듯한 느낌이 든다.

별도 인공 첨가물은 없으나 천연 발효는 아니고 설탕과 오일, 이스트를 사용했다. 한국에선 정말 통밀 소금 발효종만 사용한 빵만 먹다 이 빵 먹으니 빵이 달긴 달았다. 사용된 설탕 양이 많은 건 아닌듯하다. 달아서 물릴 정도의 간식빵 수준은 아니고 미국스러운 식사빵 맛이다.


왼쪽의 빵이 조각이 더 크고 조직이 치밀해서 좀 더 든든하다.


도시락 먹기 싫은 날엔 빵을 들고 가기도 한다.


처음에 샀던 뮤즐리와 오트밀.

지금은 파란 통에 담긴 1.99불짜리,  먹고 있는데 이 사진 속 오트밀과 뮤즐리가 더 맛있다.


이번에 사온 뮤즐리. 귀리가 귀리뻥 비슷한 맛이 난다. 개인적으로 밥스레드밀 쪽이 더 맛있다.


현미 튀밥. 2.8불 정도 주고 샀다. 양이 꽤 넉넉해서 비싼 느낌은 아니다. 얼마만에 보는 튀밥인지 너무 반가웠다. 시리얼처럼 말아먹으면 든든하다.


인스턴트 현미 밥이 있어 사봤다. 가격은 2불 내외에 4~5번 먹을 양이 들어있다. 박스 안에 따로 낱개포장없이 그냥 쌀만 덜렁 들어있어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70~80퍼센트 미리 조리한 쌀을 건조시켜둔 건데 여기에 물을 부어주고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밥이 되는 즉석밥이다. 햇반보다 저렴해서 사왔더니 도대체 물 양과 조리 시간을 맞추기가 너무 힘들다. 잘못하다 락앤락과 밥을 통째로 태워먹는 바람에 다시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여차하면 한국에 가져가 한국 쌀과 섞어 지어 먹어야할 판이다.


오트밀에 물을 붓고 적당히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죽처럼 퍼지는데 그럼 한국 쌀밥과 비슷하게 먹을 수 있다. 당분간 그렇게 먹어야하지 싶다.


이 곳 쌀은 찰기 없는 장립종이다. 찰지고 둥근 자포니카 쌀보다 수분을 덜 먹어서 그런지 덜 싱거워 입에 잘 맞는다.


페이레스에 갔더니 손질된 시금치가 있었다. 봉투 째 렌지에 넣고 2분간 돌려서 데치면 바로 먹을 수 있다길래 그렇게 해서 숙주와 함께 무쳤다.


시금치 숙주 무침. 이제야 밥먹는 것 같고 그렇다. 무치고 남은 시금치로 가져온 고추장이랑 밥도 비벼 먹었다.


비건 가정식을 못할 것 까진 없지만 주방시설 없는 호텔에서 밥을 먹기엔 한계가 있었다. 거의 일주일 내내 시리얼을 먹은 것 같다. 이와 별개로 식당엔 비건 친화 옵션이 많이 준비 되어있고, 별도의 옵션이 없더라도 요청하면 들어주는 편이다.


캘리포니아  피자 키친. 한국 코엑스에도 체인이 있다. 사진 속 피자는 캘리포니아  베지 피자 치즈 제외. 포장하면 1불이 더 붙는다. 용기 값인가...

가격은 15.99불이고 양은 적당히 혼자 든든히 먹을 양 정도 된다. 도우가 얇은 도우인데 크러스트 부분만 도톰해서 부담스럽지도 않고, 포만감도 있다. 크러스트는 퍽퍽하지 않고 고소하게 잘 구워져 바삭하다. 채소도 신선하고 만듦새도 예쁘다. 채식 피자는 메뉴판에 표시가 되어있고, 한국어로도 적혀있다. 재료가 명시되어 있으니 적당히 채소가 들어간 피자 중 치즈를 빼고 달라 하면 비건이다. 너무 맛있게 잘 먹어서 재방문 의사 있다.


똑같이 17불 주고 먹은 파이올로지와 비교된다. 거긴 너무 대충이었는데...



채식은 보통 유제품까지 포함이다. Vegetarian 이라고 쓰여있는 메뉴 중에서 비건 옵션이 되는지 확인 후 주문하면 된다.


더워서 그런지 식욕도 없고 시리얼이 있으니 굶을 일은 없지만 한국인이라 그런지 한식이 너무 먹고 싶은게 조금 흠이다. 매콤한 국물이 세상 제일 그립다. 그리고 시원한 과일이 먹고 싶은게 또 힘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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