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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03. 2023

괌, 비건이 살기엔 어때?

비건의 괌 한달 어학 연수 생활기

비건이 된 이래 가장 큰 결심은 아닐까. 솔직히 비건 자연식을 실천하려면 아직은 집이 가장 안전한 게 현실이다. 한국에서조차 불가피하게 외식을 해야하는 날이 생기면 우선 비건이 먹을 수 있는 메뉴를 파는 식당부터 파악하는데, 올해는 대체 무슨 용기가 생긴건지 겁도 없이 해외에 나가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진짜 웃겨.



발단은 학교에서 진행하는 단기 해외 파견 프로그램 공고였다. 가장 쥐약인 자소서 작성 없음. 수학 계획서 제출 없음. 그냥 필수적인 서류 몇가지만 제출하면 되는 데다 경쟁률도 세지 않았다. 전 비용 자가 부담이라는 점이 꽤나 걸렸지만 장학금을 300만원까지 주겠다고 하니 장학금 받으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겁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취사 불가능. 도시락 형편 없음. 조식 뷔페 없음. 육식 대국 미국임. 뭐 하나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안전을 추구하려면 집에 있는 편이 낫지. 더군다나 어학 연수, 액티비티 포함이라고 해도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항공료에 생활비까지 더하면 이게 다 얼마야. 부모님 등골에 빨대를 꽂다 못해 뜯어 먹는 수준은 아닌가. 내 이기적인 욕심으로 한달 새 집안을 털어먹는 것만 같아서 많이 망설였다. 거짓말이 아니고 정말 울면서까지 이걸 꼭 가야하나 그냥 집에나 있고 알바 해서 한 푼이라도 보태는 게 나은거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자꾸 내 안에서 '이대로만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하고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비록 굶더라도 새로운 환경에서 내가 내 신념을 지켜나갈 수 있는지 시험해 볼 때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괌 행을 결정. 혹시나 가서 굶어 죽을까 봐 햇반과 김을 바리바리 챙겼다.


출국날 아침은 공항에서 직접 삶은 고구마로 해결했다.


호텔은 주방 취사가 되는 것으로 유명한 오션뷰 호텔 앤 레지던스였는데, 아직 호텔이 리모델링 중에 있고 태풍 피해 후 전열 복구가 완료되지 않아 주방 사용이 불가능했다.


그럼 처음부터 취사가 안된다고 할 것이지, 처음엔 간단한 취사가 된다고 연락을 받아서 한시름 놓고 있었더니 뒤늦게 취사가 안된다고 말을 바꾸더라. 그 뒤부터 이래저래 걱정이 많아졌다.



가서 뭘 해먹을 수 있지? 취사가 안되면 햇반 뿐인가? 솔직히 햇반에 두부만 있어도 맛있게 먹을 자신은 있었기에 설마하니 굶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괌에 오기 전에 미리 각 마트에서 파는 것들의 가격을 조사했고, 전자레인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메뉴들을 고안했다. 햇반에 김 혹은 햇반에 두부. 오트밀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고 전자레인지로 감자 정도는 익혀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도착한 괌의 오션뷰호텔.

방은 정말 아무것도 없이 휑했다. 호텔에 수영장이 있고 바다가 있으니 수영을 매일 할 수 있겠다며 왔는데 수영장도 태풍 이후로 잠시 중단. 여기서 가장 현타 왔다. 집에서도 매일 수영할 수 있는데 내가 왜? 굳이? 여기까지? 이 돈을 들여서?


절망적인 수영장 꼬락서니.



아침 고구마 몇 조각 이후로 전혀 먹지 못한 와중에 아무것도 없는 호텔 객실을 보고 장부터 봐야겠다는 결론이 섰다.


그렇게 장을 보러 마이크로네시아몰로 향했다.


마이크로네시아 몰.


걱정했던 것과 달리 생각보다 먹을만한 것들이 꽤나 많았다. 표기가 대체로 불친절한 한국과는 다르게 non-gmo, organic, whole grain 등의 라벨 표시가 잘 되어 있고 성분이 비건인 상품은 친절하게 비건 표시가 붙어 있어서 쇼핑이 한결 수월했다.


유기농 제품군이 상당히 다양하다. 과자나 오트밀 뮤즐리 등 시리얼도 유기농으로 나오고, 팝콘도 유기농 팝콘이 있다.


특히나 오트밀, 뮤즐리 등 식사 대용 시리얼이 아주 다양하게 나와있어서 선택에 애를 먹었다. 선택 기준은 설탕이 들어가지 않고, 기름이 사용되지 않고, 인공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것이어야 했다.


이후 혼자 가서는 모든 성분을 하나하나 비교해 보았으나 첫 날 장을 볼때는 같이 간 일행이 있어 차마 그럴 여유는 없었다. 적당히 밥스레드밀 뮤즐리를 골랐다. 가격은 400여그램에 8달러. 싼 건 아니다. 거기에 일반 오트밀을 510그램에 6달러 남짓 주고 구매했다. 이건 유기농 사양인데 이정도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시 간다면 밥스레드밀 대신 사진속 뮤즐리를 구입할 예정. 8백여 그램에 12달러 정도고, 설탕 없이 오로지 롤드오트와 건조 과일 뿐이다.


통밀빵 제품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보다 유기농 통밀, 통곡물이 사용된 먹거리를 구하기가 쉽다. 통밀빵은 종류도 무지하게 많다. 페이레스에는 코스트유레스에서 본 제품은 없었고, 조금 더 가격이 비쌌다.



구황작물은 보통 무게당 단위로 가격을 매긴다. 1파운드에 1,69달러. 단호박이 엄청 크니 3~4파운드는 나갈 것 같았다.


페이레스 마켓은 식료품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공산품 투성이인 괌 마트 중에선 그나마 농산물, 신선식품을 다룬다. 감자도 다양하게 있다.

한국에선 거의 수미감자 한 품종 뿐인데 여긴 러셋 감자, 홍감자, 노란감자를 판다. 노란 감자는 정확한 품종명을 모르겠다. 러셋과 홍감자는 분질감자로 쪄먹으면 맛있는 품종이다.


조림 사이즈는 이렇게 한 봉투 단위로 판매한다.


감자에 진심이라면 너무 맛보고 싶은 러셋 감자... 4.54kg, 10파운드에 10.99달러다. 약 9키로에 22달러 정도 되는 셈. 알이 크기가 어마무시하게 크니 한국 사이즈로는 왕특 정도 될 듯한데 한국에선 왕 사이즈의  분질감자를 10키로 주고 사려면 3만원은 드는 듯 하다. 이정도면 가격은 합리적이지 않나 싶다.


괌은 식재료를 씻을 때 생수로 씻어야 한다. 생수를 매번 사야한다는 부담, 방에 주방시설이 없다(계수대가 없다)는 부담, 칼이 일회용 나이프 뿐이라는 것만 아니었다면 감자를 삶아먹어볼 생각도 했을텐데.


대체유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맛도 여러가지 맛으로 나오는데 나는 언스위트 오리지널을 먹는다. 그런 것은 보통 유기농 소이밀크가 전성분이다. 유기농인 점이 한국과 다르고, GMO 콩이 사용되지 않았다는 표시 덕에 안심이 된다. 다만 가격은 비싸다. 1리터에 5불을 주고 샀다. 2리터 용량은 더 저렴한 대신 무첨가는 보이지 않았다. 코스트유레스에 검색해 본 가격은 2리터 9불이었다. 페이레스가 그렇게 저렴한 건 아닌듯 하다.


마이크로네시아몰 2층에는 푸드코트가 있다. 여러 가게가 있고, 각 가게에서 주문을 한 뒤 음식을 받아 중앙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식사하면 된다. 논비건 친구와 가도 마찰이 없다.


나는 시즐 그릴(sizzle grill)에서 데리야끼 두부 덮밥에 현미밥 옵션으로 주문했다. 지불금액은 12달러. 여긴 현미밥을 준다. 정말 좋다. 바스마티 쌀이 단립종인 자포니카보다 입맛에도 잘 맞아 더욱 맛있었다.

해피카우에는 나오지 않지만 비건 옵션이 있고, 메뉴판에 비건 표시는 없지만 왠지 비건으로 주문 가능할 것 같은 메뉴는 비건으로 변경도 할 수 있다. 버터가 들어가지 않으니 담백하고, 간도 적당했다.



생각보다 비건으로 먹을 것이 많고, 비건을 배려해주는 다양한 마크와 라벨들이 존재한다. 이정도면 매일 두유에 시리얼만 먹어도 문제 없이 한달 보낼 수 있을 법도 하다.


만들어진 밥-즉석밥 종류는 햇반 2~3달러, 장립종 현미밥 기준 4~5달러로 상당히 비싼 편이다. 현지 즉석밥은 한국보다 양이 많다. 그리고 외식 양이 기본적으로 많은 편. 소식가 혹은 평범한 양이라면 포장 후 2끼로 나눠 먹을 수도 있고, 가격은 시키기 나름이지만 10~15달러가량 된다. 한국보다 외식물가가 크게 비싸다는 느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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