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May 09. 2023

동행의 밥상

교보문고 에세이 공모전 출품 글

작년 초부터 채식을 시작했다. 그 동안 육식 위주의 식생활을 계속해왔던 나로서는 상당히 큰 변화였다. 길들여져 있던 육식이라는 타성을 던지고 변화를 택하게 된 것은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동물을 참 좋아했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귀여워하면서 동물을 기르고 싶어했고, 동물 사진이나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 일요일이 되면 꼭 동물 농장을 챙겨봤다. 학교에 사는 고양이가 피부병에 걸렸을 때는 동물병원에서 약을 지어다 먹여주기도 했고, 그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을 때는 사람들 손을 타지 않도록 보호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동물이 예쁘다면서 모순되게도 급식실로 돌아서면 늘 입으로 죽은 동물을 씹었다.


채식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각이 없었다. 식탁 위의 고깃덩이가 되기 전엔 전부 살아있는 생명이었다는 것조차도 인지할 기회가 없었다. 내가 봐 온 살코기들은 요리 되기 전부터 이미 죽어있었다. 정육 코너 붉은 조명 아래 토막 난 상태로 포장되어 장바구니에 실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니. 우리가 늘 보는 고기에는 학교 잔디 밭의 고양이와 같은 생명의 기운이라곤 전혀 남아있지 않다. 그들이 가장 최초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알 겨를이 없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것들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덜 익은 고기의 붉은 살점이 마치 내 살점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결을 따라 찢어지는 익은 살결, 잘려나간 덜 익은 살점을 보며 문득 “내 몸도 도려 놓으면 저런 모양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자각했다. 아, 이렇게 조각나기 전에는 전부 생명들이었구나. 나와 같은 포유류였구나, 하는 당연한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동족을 먹는 듯한 꺼림칙함에 그 날 부로 고기는 입에 댈 수 없게 됐다.


너무 오랫동안 감쪽같이 속아 왔다. 마트의 포장지에 둘러싸이거나, 프랜차이즈 치킨집의 포장 박스에 들어있어서 미처 몰랐다. 그 안에 들어가기 전에는 모두 살아있었음을.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참히 살해당해야 했음을. 공공연한 살육이 식도락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었음을 말이다. 월드컵 경기가 있는 날은 치맥의 날이 아니다. 인간의 일방적이고도 이기적인 즐거움을 위한 대량 살육의 날이다. 나와 같이 느끼고 호흡하고 삶을 사는 생명이 희생되어야만 이 식탁에 올라오는 것임을 나는 너무 오랫동안 모르고 살았다.


장을 보러 가면 항상 매대에 놓여져 있지만, 고기는 원하는 만큼 언제든 무한대로 생산할 수 있는 공산품이 아니다. 항상 어디선가 그 목숨을 대가로 치러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갈수록 소비자와 생산지의 거리가 멀어져만 가고, 생산 과정은 복잡해지는 반면 소비는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바뀌어만 간다. 우리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 본래 무엇이었는지 진실을 알 기회는 점점 사라진다. 소비의 촉진과 기술의 발전은 진실을 은폐한다.


요즘은 아이를 기르거나 반려인을 만나는 대신 반려 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인생이라는 여정에 동물과 함께하기를 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토록 온 사람들이 동물을 사랑해 마지않으면서 죽여대는 동물의 수도 어째 점점 늘어만 간다. 손으로는 동물을 쓰다듬고, 입으로는 동물의 사체를 뜯는다. 동물 학대 뉴스에는 분노하면서 매일 그 학대의 산물을 삼킨다. 강아지는 안 되지만 돼지는 괜찮다. 무지성한 이중잣대였음을 깨닫고 이제 그러기를 멈추었다. 모든 생명에는 경중이 없다.


불과 수십 년 사이에 이루어진 일이다. 인간이 동물과의 동행을 저버리고 그들을 탐욕의 수단으로 대해온 폭력적인 태도 말이다. 생명을 공산품으로 취급하며 동물의 애환을 외면한 벌이라도 받는 듯, 이제 사회엔 만성질병과 기후변화, 전염병의 위기가 도사리게 되었다. 어쩌면 타자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은 곧 나에게 하는 것임과 같음을 지구가 알려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동안 생명 공동체 안에서 인간과 비인간 생명들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어리석은 인간에게 가르쳐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동물을 그저 이기적인 욕구의 수단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는 인류가 다 함께 바뀌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모든 동물들과 인간이 평화의 관계를 맺고 지구 위에서의 아름다운 동행을 이루어 나가는 미래가 오기를 바란다. 동물이 인간의 진정한 반려이자 동행자가 되는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생명의 눈물 없이 밥상을 차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화(和)의 음식, 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