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번 글에서 나는 보라카이 섬 시골의 경제사정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확실히 사람들은 가진 것이 많지 않았다. 집은 낡고 좁고 허름했다. 도시가 아니므로 오락거리나 유흥시설은 없다. 이제 막 근대화, 도시화, 개발의 물결이 닿아오고 있었다. 먹는 것은 그냥 쌀밥에 오이 몇 조각. 먹방 열풍이 시대정신이며 과일 하나도 그냥 먹지 못해 설탕을 발라 먹는 한국인들이 본다면 분명 부실하다 생각할 것이 뻔한 식단이었다. 와중에 코카콜라와 정제음식은 도시의 상징이 되었다. 나는 태어나서 그토록 많은 탄산음료를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물처럼 콜라를 마신다고? 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치아상태는 엉망이었다.
칼폴라니연구소장 홍기빈 경제학자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도 그 옛날엔 (아주 먼 옛날도 아니다) 돈이 악세사리였던 시절이 있단다. 그 때는 돈 바꾸러 간다는 말을 했다. 평소엔 산에서 나물캐다 먹다가, 시내에 나가 돈 쓸 일이 생기면 안 쓰는 물건 팔고 뜯어 온 나물 팔아 돈을 만들어 왔다는 거다. 돈 없이 밖에 나가면 아무것도 못하는 지금으로썬 상상할 수 없는 말이다.
돈이 없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시골 아이들이 생기고, 몸이 아파 돈을 벌러 나가지 못하는 어른들이 생겼다. 지천에 널린 바나나와 코코넛을 따 먹고 개울에서 깨끗한 물을 길어다 쓰면 되는 생활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졌다. 가난과 불우함이라는 단어가 그들 인생 사전에 침투했다. 그들은 후원을 기다렸다. 아이들 대학을 보내 줄 키다리 아저씨를 찾아야만 했다.
한국에서도 고도의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당시에는 이런 모습이었겠지. 나는 나바스에서 우리의 과거를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전혀 불행해보이지 않았다. 비록 가난하고, 가진 것이 없을지언정 그들에게는 어려움을 함께 이겨낼 가족, 친척, 친구, 이웃들이 있었다. 실제로도 경제활동이 어려워 집안 사정이 기울면, 주변 이웃들과 친척들이 힘을 모아 도와주며 서로 버텨냈다고 한다. 그들의 안전망은 돈이 아니라 관계였다. 경쟁이나 각자도생의 사회가 아니라 공생이 그들 사회의 규칙이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처지를 가엾게 여기거나, 불쌍하다 생각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있지도 않았다. 비록 접시에 올릴 수 있는 것이 쌀밥과 오이 뿐이라도 불평하거나 원망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본 그들은 항상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반면 한국인들은 그에 비해 엄청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만족은 잠시 뿐이고 늘 결핍의 감정이 밑바닥에 깔려있다. 도대체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을 가지고도 만족하지 못해 비행기까지 타고 다니면서 먹고 쓰려 돌아다니는 걸까?
이는 소비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소비를 통해서 얻고 싶은 것은 정말로 그 물건이나 음식 또는 여행지에서의 쾌락이 아니라 인정, 안락, 돌봄, 사랑이다. 이러한 속성들은 내가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고 편안함을 느낄 때, 내가 쓸모있는 인간임을 관계를 통해 확인할 때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선 나의 안전망이 되어 줄 사람도 없고, 내가 누군가의 안전망이 되어주고 있다는 감각 역시도 느낄 기회가 흔치 않다. 직장, 학교에서조차 존재 그 자체로 환영받고 존중받지 못한다.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 늘 애써야한다. 사회라는 공간에서 환영받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능력이다. 나라는 사람이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써 존재하게 된다. 비슷한 능력치의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내 존재는 지워진다. 이는 소비 능력이든 생산 능력이든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한국인은 늘 불안함과 결핍감을 느끼고 항상 스스로를 과시하고 드러내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없다.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한 곳에 나를 보듬어 줄 사람도 없다. 요즘은 가족들 사이에서도 무조건적인 인정과 존중은 찾아보기 어렵다. 부모가 금수저가 아니어서, 자식이 1등급이 아니어서. 서로를 향해 조건을 내세우고 못 미치는 존재라며 화살을 겨눈다. 연애도 결혼도 "시장"이 되었다. 우리 사회는 마음과 육신의 허기를 달래줄 온정이 너무나도 부족하다. 모든 걸 시장에 내맡긴 나머지 한국인은 언제나 시장하다.
하지만 나바스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나바스에서 만난 사람들, 아이들은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내 존재를 있는 힘껏 환영해주었다. 정말 추레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나에게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돌도 아닌데 같이 사진찍어달라, 사인해달라, 이름 써달라는 요청을 수도 없이 받았다. 무엇때문에 이렇게 나를 좋아해주는 건지 나 스스로도 모를 지경인데, 그냥 그들은 나를 좋아해주었다. 아이들은 곁에 붙어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존재 자체로 환영받는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오래된 미래>나 <무탄트 메시지>에서 원주민들이 저자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고 환영해주었다며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말해주었다 했던 구절이 생각났다. 그게 이런 거구나.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자유란 좋은 공동체의 동의어
내가 정말 좋아하는 말이 있다. 친구 friend의 어원이 free의 어원과 동일하다는 말이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번 보라카이 봉사활동을 통해 몸소 깨달았다.
집에 있는 동안엔 항상 에고와 강박에 시달려 살았다. 신경을 분산 시킬, 내 신경을 빼앗아갈 타자가 없으니 머릿속 관심사는 온통 나 자신이었다. 내가 오늘 운동을 많이 했나 안했나, 내가 오늘 과식을 했나 안했나, 내가 오늘 바르고 성실하게 살았나 그렇지 못했나. 결과는 늘 자기 검열과 자기 재단이었다. 스스로를 감시하고 감시 당하는 삶이란 정신병 걸리기에 아주 딱이다. 특히나 한국은 그 정도가 심하다. 누가 봐도 자기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세우고 언제나 마음 불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자기 관리를 잘한다며 갓생이라 올려친다. 사회가 국민을 집단 정신병에 몰아넣은 게 분명하다. 평생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사는 삶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강박은 고도 경쟁 사회가 부추긴 것도 한 몫 하지만, 무엇보다도 관심을 돌릴 타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나친 자기 검열은 자기 존재를 너무나도 크게 인식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세상에서 내가 너무나도 큰 존재처럼 느껴지는 거다. 신경을 쏟을 타자가 없으면 무얼 해도 오로지 자기 자신만 보인다. 자아가 무럭무럭 자라 비대해진다. 오로지 내 스펙, 내 외모 등등에만 신경을 쏟게 된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만이 머릿속에 가득할 때, 우리는 자유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모두가 나의 적이자 무관한 사람이 되기 때문에 나의 의식이 오로지 내 안에만 갇혀있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있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내면으로 쪼그라드는 의식으로부터 해방시켜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집에서는 온통 관심사가 나 자신이었다. 내 오늘을 반성하는 데에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고, 내 미래와 앞날을 걱정하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하지만 단체 봉사활동에서는 나 자신보다 공동체에 민폐가 되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같이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힘들어도 버텼고, 세계로부터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시야에 온통 타자가 가득 차있었다. 봉사단원에게 폐가 되지 않는 것, 봉사지의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것, 그들과 즐겁게 소통하는 것, 이 자리에 녹아드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이래야만 한다, 저래야만 한다'라는 나만의 규칙이나 내 자아가 세워 놓은 벽을 허물어야 했다. '나'를 내세우기 보다 물처럼 이 안에 스며들어 잘 어울리는 것이 중요했다.
이러한 마음이 신기하게도 오히려 나에게 해방감을 주었다. 단체 생활이 불편해서 항상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어렵고 피곤했는데, 그건 내가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남들이나 상황이 나에게 맞춰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혼자인 게 편했던 것은 에고가 강해서였다. 타자가 불편했던 것은 그 사람들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거였다.
내가 세운 벽을 내려놓고, 스스로가 물이 되었다 생각하며 공동체에 스며들고 보니 너무나도 편안했다. 나의 상태, 나의 앞날 등등을 신경쓰기 보다 지금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나가는 이 순간 순간에 집중하며 항상 웃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니 하루 종일 걷고 땡볕아래 3시간씩 서서 아이들을 상대해도 전혀 피곤하거나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교육 봉사를 마치고 나면 기운이 솟아났다. 사람들은 나에게 에너지를 주었다.
에고만 해방된 게 아니었다. 기댈 사람들이 많으니 혼자였다면 하지 못했을 일들도 할 수 있었다. 가령 혼자라면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도 짐을 해변가에 그냥 두자니 누군가 훔쳐가진 않을까 걱정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럿이 함께라면 교대로 짐을 봐주거나 바다에 들어가지 않을 사람에게 짐을 맡기거나 할 수 있다.
일정을 내가 다 계획하지 않아도 누군가가 새로운 장소를 제안해 주기도 하며, 조금 위험한 장소여도 서로 붙잡아주고 지탱해주며 나아가다 보면 다치는 사람 없이 안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혼자라면 용기가 없어 하지 못했을 일도 친구들이 함께 하니 용기 내어 해낼 수 있었던 일들도 많았다.
공동체란 이런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안전망이 되어주는 것.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적대적이고 전투적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무도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전제 때문이다.
배가 고파도 함께 요리하거나 요리해 줄 사람이 없고, 힘이 들어도 부축해 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 지하철 퇴근길은 내가 먼저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리 저리 어깨를 밀쳐가며 몸을 욱여넣는 사람들 뿐이다. 나 또한 지하철로 대학교 통학을 하면서 점점 성질 버리는 걸 느꼈다. 비건을 하기 전보다도 하고 나서 더 심해졌다. 비건을 하기 전엔 엄마가 차려준 밥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기에 덜 힘들었는데, 비건을 시작한 이후 모든 끼니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기에 집에 가서 해야할 나의 돌봄 노동역시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급해졌고, 오지 않는 지하철이 야속했고, 조금이라도 빨리 타서 자리를 확보해야 내가 산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꼭 지하철이 아니라도 다들 비슷할 것이다. 옆에 있는 사람이 나의 안녕을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우리는 그토록 적대적으로 변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나의 안녕을 보살펴주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전투적으로 서로 밀쳐가며 살아갈 필요가 있을까?
이번 봉사활동은 나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항상 탈성장과 공동체에 대해 관념적으로만 이해했지 그 영향력을 느껴 볼 새가 없었는데, 보라카이에 다녀온 덕에 책으로만 보았던 이야기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