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배너의 문구를 본 순간, 문득 망고가 미친듯이 부러워졌다. 망고는 아무리 못나도 제 가치와 본질을 다하는구나. 비단 망고뿐만이 아니었다. 못난이 사과, 고구마, 감자, 오이... 식물들은 아무리 못났어도 다른 존재에게 영양을 공급해줌으로써 이 세상에서 제 쓸모를 다한다. 못났어도 동물의 먹이가 되어 남을 먹여 살릴 수 있고, 설령 먹이가 되지 못한 낙과들이라 하더라도 그대로 두면 거름이 되어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준다. 식물은 남이 보기에 못났든, 잘났든 상관없이 다른 생명을 살리는 이로운 존재다.
못났어도 해롭지 않다, 못나도 쓸모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인간은 못나면 그냥 '못난 인간'인데 망고는 어떤 형태여도 상관없이 다른 존재를 먹여 살리고 부양할 수 있구나. 망고는 좋겠다. 그동안 장래희망이 얼룩말, 돌고래, 아프리카 코끼리 등등이었는데 여기에 망고가 하나 추가됐다. 활엽수가 되고 싶다는 켄지씨처럼, 나도 진심으로 망고가 되고 싶어졌다.
둥근 귀 코끼리는 하루 종일 450kg을 먹고 잠만 자도 생태계에 아무 위해를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식물을 솎아내고 씨앗을 퍼뜨리는 역할을 한다. 누가 하라고 해서가 아니라 그냥 본능대로 하는 것인데도 이로운 일을 한다.
못난이 망고도, 못난이 사과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그저 본능대로 자라서 열매를 맺었을 뿐인데도 세상을 먹여 살리는 길에 일조한다. 마른 목을 축이게 도와주고, 주린 배를 채우는 데 기여한다.
그에 비해 나는 어떻지.
안 그래도 홈 프로텍터로 사느라 바쁜 내 모습에 스스로가 무능한 존재인 것만 같아 회의감을 느끼는 요즘이었다. 왜 나는 인간이어서 이토록 못난 걸까? 단순히 할 줄 아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무력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저 세상에 이로운 존재이고 싶었다. 내가 나대로 살아도 괜찮고 싶었다. 아무리 못났다고 여겨질지언정 나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있고 싶었다. 내가 나대로 사는 방식이 세상을 해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구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현대의 생활방식은 지구를 풍요롭게 하긴 커녕 황폐하게 만들고, 쑥대밭으로 만들기 일쑤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까지 폐허가 되어간다. 못난 인간으로 낙인찍히지 않으려 나를 몰아세우고, 그 잣대로 남을 몰아세운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그 방식이 자연을 못살게 굴기까지 해서 지구마저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더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인간이 수천년간 문명을 세우면서 자연을 짓밟고, 서로 싸우고, 자기 자신과 전쟁을 치르며 살아 온 그 방식에 반기를 들고 싶다. 자연과 떨어져 살며 일방적으로 자연에게 요구하기만 하는 삶도 멈추고 싶다. 내가 먹기 위해 누군가가 굶어야 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다른 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진심으로 식물이 되고 싶어졌다. 존재만으로도 이로울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부러웠다. 우리 인간도 그렇게 살 수 없을까. 그저 본능대로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 살면서도 세상에 이로울 순 없을까. 사실 지금껏 남겨 온 인류의 행보를 보면 아무래도 어려워 보인다. 인간만은 왠지 마음대로 살면 여기저기 망쳐놓기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나 현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한없이 해로워지는 것만이 인간의 숙명인걸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생명이 살아날 수 있다면.
그래서 더욱 농사를 짓고 싶어진다. 내가 식물이 될 수 없다면 식물을 길러서라도 세상을 먹여살리는 사람이 되고싶어서. 내가 적어도 나 먹고 살자고 누군가를 굶기면서 살고 싶진 않아서. 지구의 풍요가 될 수 없다면 지구를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식물을 돕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