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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Dec 26. 2023

장래희망 동물, 추구미는 동물의 숲

잔잔하고 평화롭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누군가 나에게 어떻게 살고 싶어?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동물의 숲처럼 살고 싶어요."


동물의 숲처럼 사는 게 어떻게 사는 건데? 말 그대로다. 모두가 각자의 텃밭을 기르고, 자연에서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얻고, 바다에 나가 수영도 하고, 서로의 마을과 집을 오가며 환대하고 환대받는. 동식물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여유로운 삶이다. 한국 빡겜러의 대출 상환 동숲 말고, 원래 동숲의 취지대로 플레이하는 즐겜러의 동물의 숲 얘기다.




그래도 감이 안 잡힐 사람들을 위해서 딱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대로 살아가시는 분들의 다큐멘터리를 들고 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GczeO1JdglM&list=LL&index=1


이 영상 속 부부의 삶 -자연농, 자급자족-이 바로 내가 추구하는 그 삶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 부부는 자연과 삶의 이치를 모두 알고 있는 것 같다.





이 부부는 나가노 현의 한 숲에서 직접 흙집을 짓고 자연농을 통해 식량을 자급자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부부가 필요로 하는 것은 모두 자연에 있다. 화덕을 만들고 싶을 때는 화덕을 지을 돌을 산에서 구하고, 허브 오일을 만들고 싶을 때는 숲인지 밭인지 모를 먹거리 숲-자연농원-에 나가 여기저기 고개를 내밀고 있는 약초들을 캐온다. 자연 속에 살지만 자연을 길들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와 같은 투쟁을 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자연에 감사하고, 자연을 닮아간다. 썩지 않을 흔적을 남기는 대신 모든 것이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만든다. 그들은 자연을 풍요롭게 가꾼다.



부부가 채종하여 보관 중인 토종 종자들



화덕의 재료가 될 숲속의 돌



식사 준비는 그날의 밭에서


이 부부는 토종 종자를 직접 채종하고, 보관해 두었다가 주변에 나눔하기도 한다. 집을 구성하는 모든 물건은 직접 만든다. 만들지 못하는 물건은 필요하지 않다. 먹거리는 자연이 언제든 제공해준다.



내가 채식을 하는 이유는 생명을 생산 공장 돌리듯 취급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기 위함이다. 나는 육식을 불매한다. 나와 같은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 중에선 자연스럽게 자라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동물은 먹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급자족으로 가축을 길러서 잡아먹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하지만 내가 지향하는 바는 이 부부처럼 채식으로 자급자족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소망이지만 나는 인류가 기후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채식하는 동물이 되었으면 한다. 마치 원래 육식을 했던 판다가 그랬듯이.


일단 애써서 가축을 기를 필요가 없으니 덜 번거롭다. 게다가 무경운 자연농을 하게 되면 힘을 써서 땅을 갈 필요가 없으니 가축을 부릴 필요도 없다. 80억 인구가 동물까지 굳이 먹어야 한다면 지구는 거덜 난다. 더구나 죽이기 위해서 누군가를 기르는 것은 어딘가 찝찝하다. 다소 잔인한 발상 같다. 나에게 있어서 동물은 일꾼이나 식량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이자 스승이다.


활엽수는 본인이 살아남기 위해 모두를 풍요롭게 먹이는 전략을 취했다.

그런 숲 속의 활엽수로 태어나고 싶다는 켄지 씨.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초원 위의 얼룩말로 태어나고 싶다.







1. 동물은 안 먹고, 왜 식물은 먹냐고?


채식에 대해선 종종 유치한 질문을 듣는다. 동물은 우리의 스승이라면서, 왜 식물은 먹느냐, 식물은 어째서 식량이라고 하느냐, 이런 질문들.

물론 식물도 우리의 훌륭한 스승이다. 우리는 식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또한 식물을 먹는 것보다 동물을 먹을 때 더 많은 식물을 필요로 한다는 층위의 이야기는 다른 채식주의자들도 모두 하는 말이니 여기선 아끼도록 하겠다.



결론적으로 나는 식물을 먹는 것이 식물에게도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 최우선은 번식과 번성이다. 살아남고, 더 많은 개체수를 남기는 것이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최고의 이익이다. 그러기 위해서 살아남기에 더 안전한 조건, 더 적합한 조건, 번식하기에 적절한 조건, 생태계의 공백을 찾아 어떻게든 많은 후손을 남겨야 한다.

동물은 먹고 먹힘으로써 개체수가 유지된다. 하지만 식물은 동물의 먹이가 됨으로써 더 많은 곳으로 자신의 씨앗을 퍼뜨릴 수 있다. 열매, 잎, 꽃 등을 내어주고 남은 씨앗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자란다. 모두 알겠지만 씨앗은 먹어봤자 다시 배출된다. 결국 동물을 먹이는 것은 식물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서 택한 생존 전략이다.


우리가 쌀을 추수하고, 남은 볍씨를 심으면 벼 한 톨에서 무려 삼천 톨이 자란다. 싹 난 감자 한 바구니를 심으면 백 바구니가 자란다. 씨알 하나가 백 배, 천 배로 불어난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농사는 투자 대비 수익률이 아주 높은 종목이다. 비트코인이나 주식 저리 가라다. 또한 이는 식물에게도 이득이다. 농부가 자신의 씨앗을 심고, 자라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면 번성할 수 있다. 본래 농부는 이렇게 풍요로운 식물 생태계를 가꾸는 자연의 수호자다. 농부는 식물의 이익에 봉사한다. 농부의 본분을 다하는 농사가 바로 자연농이다. 풍요로운 초록을 만드는 것. 그 대가로 식구들을 풍요롭게 먹여 살리는 것.


현대의 농업은 식물을 보살피는 농사가 아니라 인간을 위해 식물을 착취하는 농사다. 단일 작물 대량 생산 재배 방식, 스마트팜 등은 오로지 식물을 인간 입에 풀칠할 수단으로만 바라보는 데에 그친다. 이것은 식물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외의 존재를 인간을 위한 도구로 취급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식물, 동물, 인간은 모두 동등하다. 우리는 모두 자연이라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들이다. 이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자연의 자식들이다. 함부로 대해져도 상관없는 자식이란 없다.



그런데 오직 자연의 막내인 인간만이 이를 모른다. 같은 인간끼리도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차별하고 구분 짓고, 폭력으로 대한다. 다른 종을 초월한다고 거들먹거리며 다 같이 죽자는 식으로 나온다. 절망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지만, 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모두 인류가 유아기에서 벗어나 성장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사춘기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신의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로 인해 깡그리 박멸당하기를 바라는 신은 없을 것이다. 자연은 인간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2. 자아가 없는 동물이 스승인 이유


다르게 생긴 형제자매가 있음을 알기 위해,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모두가 풍요롭게 먹고 살 방법을 깨우치기 위해, 세계에는 아주 다양한 것들이 있음을 알기 위해 우리가 지금까지의 과정을 겪어 왔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을 배우려고 인류는 여행을 하고, 모험을 하고, 발견을 해왔다. 오로지 인류만이 이런 스펙타클한 역사를 겪어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자아가 있기 때문이다.


흔히들 동물은 자아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과학적으로 진실인지 아닌지는 차치하고, 나는 동물이 그래서 인간의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아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스스로를 우월하게 생각하며 남들을 배척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무아(無我)야 말로 깨달음의 끝판왕이 아니던가. 인간의 자의식 과잉은 배척, 혐오, 착취, 줄 세우기, 차별, 우열 가르기, 자기 검열, 자아 분열 등을 낳았다. 자아에 갇힌 인간은 불행하다. 인간은 "나"를 잊을 때 가장 행복하다.


아무튼 좁은 세상과 편견, 선입견, 자아 속의 고독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인간은 세계를 탐험했고 지평을 넓혔다. 다양한 문화의 공존과 교류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런 것까지 부정할 마음은 일체 없다.


대략 5천 년 전, 문명과 가부장제가 탄생하기 이전의 인간 사회가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무위자연 도가 철학파인 나에게는 그 시기가 유토피아처럼 느껴지지만 기록이 워낙 없다 보니 사실인지 아닌지 알아내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들은 자연에 흔적을 남기지 않으며 살았고, 우리의 예상보다 다양하고 풍요로운 음식을 먹으며 건강했고, 감사와 호혜를 기반으로 평등하게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감사와 호혜의 정신을 잊은 지 오래다. 옆집을 불신하니 보육원에 돈을 주고 아이를 맡긴다. 이웃을 불신하니 반찬가게에서 돈을 주고 반찬을 산다. 경제는 성장하지만 관계는 각박해진다.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대가로 만성 스트레스와 운동부족, 매연과 미세먼지에 시달린다. 의사와 병원이 늘고 의술은 화려해졌지만 병도 그만큼 늘어났다. 수명은 늘었다지만 건강은 감소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동안 겪어온 시행착오에, 인류가 가지고 있던 자연과의 공생법을 결합한다면 분명 80억 인구도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른다. 신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벌이지 않는다.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이지경으로 벌여 놓은 사태는 우리 손으로 해결할 수 있다. 80억 인구 모두가 굶주리지 않고 평화와 안정, 건강과 풍요, 행복과 사랑을 보장받을 수 있다. 자아가 생긴 인간이 그것을 배우기 위해 지난 역사가 있었다.






3. 동물의 숲처럼 살기


나는 이 부부처럼 자연농으로 자급자족하면서 마음껏 헤엄치며 살아가고 싶다. 근처에 강이나 호수, 헤엄칠 수 있는 바다가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모두들 자기만의 개성으로 꾸민 자연농원에 초대하기도 하고, 초대받기도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환대해 주길 바란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는 여행자가 될 수도 있고 정주민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존재가 안전, 풍요, 평화, 자유, 사랑, 건강, 여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세상. 나는 그 해답이 자연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러한 현실판 동숲을 위해 막내인 인간이 적응하는 시기일 것이다. 잠자리채로 동물 주민을 때리며 노는 천덕꾸러기에서 갓 딴 야생 사과를 사슴 친구에게 나누어 주고 씨앗을 심는 성숙한 주민이 되기 위한 과정일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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