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살면 살 길이 있다
바다가 너무 좋았다. 아니 좋다. 바다가 있어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고, 물에 들어가야 비로소 숨 쉴 수 있는 사람이다. 천직이 벨루가인데 인간으로 잘못 태어난 모양이다. 하늘에서 비행기를 타고 착륙하기 전, 바다와 땅의 경계가 맞닿는 곳을 볼 때마다 이루말할 수 없는 경이로움이 나를 사로잡는다.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뛴다. 모두가 살면서 이유 없이 좋은 게 하나 쯤은 있을텐데 나한텐 그게 바다였다.
항구도시나 해안가, 바닷가 마을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안정됨을 느낀다. 한 번도 바닷가에 살아 본 적도 없으면서 땅과 물이 맞닿는 곳만 가면 그렇게 고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 속에 있으면 엄마 품에 안겨있는 듯한 포근함을 느낀다. 물은 항상 나를 품어준다. 물에만 들어가면 아픈 곳이 사라진다.
몇 개국 안 되긴 해도 여러 나라 바다를 돌아다녀봤다. 한국은 동해바다, 서해바다, 남해바다 전부 둘러봤고. 괌, 일본, 필리핀의 바다에서 지내도 봤다. 그런데 오키나와 바다만큼 내 집 같은 곳이 없었다. 오키나와는 작년 여름 방문한 게 처음이었는데도 그랬다. 도착하자마자 집에 돌아 온 기분이었다. 놀라울 정도의 안정감을 느꼈다.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말마따나 바다가 나를 불렀다. 어서오라고.
고작 2박 3일 다녀왔지만 9박 10일, 한달 살기를 했던 곳 보다도 강한 향수를 느꼈다. 부산 바다는 편안함보다 불안함을 느꼈고, 서해바다는 예쁘지 않았다. 남해바다는 탁 트여 시원했으나 수영할 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마음의 안정이 필요할 때마다 그 때 봤던 바다가 자꾸 떠올랐다. 다시 가고 싶었다.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
온 우주가 때마침 그런 내 등을 떠미는 듯 했다. 일단 전례없는 엔저가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엔화 800원대가 말이나 되나. 환전하라는 신의 계시였다. 때마침 진에어에서 미야코지마 직항을 개통한다는 소식까지 접했다. 가야지, 가야겠네. 안 되겠네. 직항 개통도 하필 올 해 여름부터였다. 안 그래도 올 여름은 그 바다에서 수영할 생각 뿐이었는데. 워킹 홀리데이 원서 접수도 7월에 하려다 4월로 앞당겼다. 곧 결과가 나올 테다.
사실 자연이면 다 되는 줄 알고 무작정 시골 살이를 하러 내려왔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던 모양이다. 지대가 높은 곳은 나와 잘 맞지 않았다. 나는 고립된 느낌이 싫었고, 열려있는 공간이 좋았다. 산은 나를 가로막았으나 바다는 나를 가로막지 않았다. 내가 원한 자연은 대평야와 너른 들판과 시원한 바다였다. 춥고, 벌레가 많고, 인적이 드물고, 미끄러져 구르기라도 하면 답도 없는 첩첩산중이 아니었다.
역시 난 바다에 가야 숨통이 트이는구나. 모든 자연이 내 마음을 사로잡진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렇게 떠나야겠다고 온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다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모 귀농 유튜버의 예언 관련 영상을 보았다. 이런 게 내 알고리즘에 왜 뜨는 건가 싶으면서도 무슨 얘길 하나 궁금해져 얼떨결에 그 영상을 끝까지 시청했다. 영상 속에서는 몇가지 예언이 등장했다.
현재의 종교는 많이 변질되고 타락해서 장차 세상의 모든 종교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 일본 열도와 미국 캘리포니아 서부가 잠길 것이라는 예언. 지구의 지형에 대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언. 하나는 뭐더라. 아무튼 뜬금포 국뽕 예언이라 까먹었다. 나는 사실 이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면 화딱지만 날 뿐이라 망하든 말든 알 바 아니었다. 갑자기 한반도가 잘 될 거라는 예언에서 신빙성이 떨어졌다. 인구소멸로 멸종할 것이라는 전망이 차라리 더 신뢰가 갔다. 그 외에도 통일이라거나 대재앙/격변 이후 한국에 평화가 찾아올 것처럼 이야기 했었는데, 그건 이루어지면 좋겠다 생각은 들더라.
그런데 다른 사람도 2025년, 전세계적인 지각변동 급의 대 재앙이 일어날 것이며 그로 인해 일본 열도의 1/3이 잠길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둘은 국적도 나이도 직업도 출생도 다른데 어떻게 같은 예언을 하게 된 것인지 믿기지가 않았다.
심지어 후자는 여태까지 꾼 예지몽 13개 중 11개가 적중했다. 2개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난다면 2025년쯤이 될 것이란다. 예언대로면 지구의 세계지도가 뒤바뀔 정도의 대격변이 일어나는 것은 2025년 7월 4일경이었다. 아니, 왜 벌써. 나 아직 오키나와 살아보지도 못했는데.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7월에 내려고 했던 서류를 앞당겨 4월에 제출했으며, 5월에 결과가 나온다. 비자가 발급된다면 항공권 가격때문에라도 6월중으로 출국 할 예정이었다. 계획대로면 워홀 비자로 1년을 돌고 와도 2025년 6월 이내다. 이걸 웃어야 해 말아야 해. 완전히 정착할 마음도 가지고 있었는데 남태평양 판에서 균열이 일어난다나, 화산이 폭발한다나 뭐라나. 반은 울고 반은 웃는 기괴한 표정밖에 지을 수 없었다.
사실 어떻게 해서라도 지금의 좀비 문명이 끝나기를 바랐다.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는 생명을 좀먹으며 유지되는 체제다. 살아있는 것들을 갉아먹고, 인간의 삶을 갉아먹고, 척수에 빨대를 꽂아 등골을 뽑아먹는다. 우리를 위해 만들어진 줄 알았던 체제는 역으로 체제를 위해 우리를 소모한다. 체제의 유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태엽이 감긴 것처럼, 혹은 톱니바퀴처럼, 사회가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왜 이렇게 사는지도 모르고 그저 숨만 쉬며 사는 흉내를 낸다. 그 안에서 태어나는 건 좀비들이다. 좀비들은 이유도 모른 채 살아있는 것들을 물어 뜯는다.
마구 망가져가는 세계의 모습에 참담함을 느꼈다. 비통했다. 제발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는데. 애석하게도 정신을 차리긴 개뿔, 사람들은 날로 날로 천박해져갔다. 이해할 수 없는 지경의 도파민 중독자들이 속출했다. 진상들은 행패를 부리고 사회는 점점 꼴사나워져 간다. 죽은 것이 살아있는 것을 대체했다. 자연대신 기계와 사랑에 빠졌다. 세계를 뜯어 고치려는 가짜 수리공들이 판을 쳤다. 뜯어 고쳐야 할 것은 세계가 아니라 세계관일텐데.
생명을 함부로 대하는 현대 사회가 미친 것만 같았다. 기후위기 뉴스를 볼 때마다, 자연 재해 뉴스를 볼 때마다 통렬과 희열이 동시에 솟구쳤다. 지구야, 인간이 미안해. 인간들아, 어디 한 번 업보 빔 맞고 다 같이 뒤져보자. '이런 사회가 지속될 바엔 차라리 얼른 지구의 복수를 맞고 다같이 자멸 엔딩을 맞이하는 게 낫겠다' 싶다가도, '그래도 인류가 여기까지 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 이런 우여곡절을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인류의 사춘기가 지나면 유토피아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다.
그런데 그 유토피아라는 게 2025년 7월 대격변 이후 도래할 것이란다. 무당보다 신출귀몰하다는 모 만화가의 예언에 따르면, 2025년 7월 일본 국토가 잠길 정도의 대재앙에 인류가 휩쓸리게 되지만 거기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평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 거란다. 살아남는 사람들은 '사는 것' 그리고 '행복'을 염원하는 사람들이다. 세상을 돌보려는 선한 마음이 있다면 세상이 그를 돌봐줄 것이라고 말한다.
사필귀정. 내가 제일 좋아하는 사자성어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이기적인 욕심과 단기적인 이익으로 악마한테 양심을 팔아 넘긴 인간들은 분명히 벌을 받게 되어있다. 내가 세상에 한 일은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신은 인간의 잔재주에 속아 넘어가 줄만큼 멍청하지 않다. 우주는 침묵하지 않는다. 우리의 선택을 지켜보고 되돌려준다. 그것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남을 해하는 것은 곧 나를 해친다. 반대로 남을 돕고자 하면 내 앞에 은인들이 나타나준다. 정말 신기하게도.
만일 그 예언이 진짜라면 너무 가슴아프다. 살아 보고 싶었던 땅을 영영 밟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타이밍이 소름끼쳤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업보로 가라앉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바다에 그런 짓을 하니까. 바다를 더럽혔으니까. 그 안의 생명들을 못 살게 굴었으니 바다가 한 몫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통쾌하다. 역시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해.
그 만화가의 책에는 "사는 것과 행복을 바라면서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빛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적혀있다. 숨만 붙어 있는 가짜 삶이 아니라 제대로 사는 것. 온 힘을 다해 살아있는 것. 그리고 세상 만물을 먹여 살리는 것. 죽음으로의 행진이 아니라 살아있기 위한 몸부림. 행복을 바라는 마음. 전부 내가 바라는 것들이다. 아마도 그 작가가 말한 게 이런 마음 아닐까. 그림도 묘했다. 무려 2025년인데 사람들이 개울에서 빨래를 하고 농사를 짓고 있었다. 현대 문명의 삐까번쩍한 모습이 아니라 소박한 자급노동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나같이 웃고 있었다.
앞서 지구 대격변을 예언한 스님도 그 대격변 이후의 사람들은 하나 하나 빛이 나고 평온한 삶을 사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들이 말한 '빛나는 미래' 라는게 내가 생각하는 유토피아와 같은 것일까. 아마도 그럴 것만 같다. 두려우면서도 가슴이 뛰었다. 살고자 하는 사람들, 살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살게 될 것이라잖아. 바르게 살면 하늘도 지켜줄 거란다. 그 뒤에 도래할 유토피아를, 어쩌면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꿈꾸는 동물의 숲 라이프가 진짜로 펼쳐지는 걸까.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른데. 게다가 이런 방식이 될 줄은 예상치도 못했다. 변화의 바람이 한 번 휩쓸고 가면, 세상은 좋아지는 걸까. 그렇다면 꼭 살아남아 예언 이후의 세계를 보고 싶었다. 그토록 간절히 염원하던 세계가 현실이 될지도 몰라.
그게 현실이 된다면, 나는 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모두 살아남아 그 유토피아를 맞이하길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른 길을 걷기를. 그래서 우주의 노여움을 사지 않기를. 꼭 한 명도 빠짐없이 살아 남아 미래에도 함께 행복하기를. 내가 말하는 평화의 지구가 허황된 꿈이 아니라는 것을 두 눈으로 보고, 느끼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지금의 불안, 초조, 긴장으로 도배된 시대를 넘어 진짜 평화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진정한 행복을 맛보며 같이 웃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