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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09. 2024

우울이 날 집어 삼켜도

기후 우울, 그게 내 얘기가 될 줄 몰랐지

나, 취업 거부 선언

얼마 전, 내가 작년에 써 놓은 글이 뒤늦게 큰 반응을 얻는가 싶더니 급기야 브런치 큐레이팅 시리즈에도 소개 되었다.


소개글

https://brunch.co.kr/@tmm/24


소개된 글

https://brunch.co.kr/@dailyphilosophy/56


당돌하고 철모르고 뻔뻔한 데다 겁대가리 없는 "취업 거부" 선언문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공감해주었다. 단순한 공감을 넘어 다르게 살아가기로 결심한 청년을 향해 보내는 응원처럼 여겨졌다.


사실 올 해 초까지만 해도 환경 관련 섹터의 NGO 단체에서라면 일 할 마음이 있었다. 관련 포폴과 이력서도 준비해 여기저기 면접까지 보러 다녔는데 하나는 최종 합격까지 했지만 다른 알바에 먼저 합격하게 되어 타이밍을 놓쳤고, 다른 면접에서는 이 직무와 나의 성향이 잘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맞았다.


면접은 정신력 소모가 너무 컸다. 해야 하는 말, 하면 안되는 말, 해도 되는 말을 거르고 걸러 그 정신 없는 와중에 두괄식으로 설명까지 해줘야 한다. 내가 하는 모든 말 하나 하나가 평가의 대상이 된다. 이리저리 재단 당하고 사이즈가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나가리다. 환경 문제는 인권 문제나 노동권 문제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당연히 환경단체라면 그걸 알고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알면 뭐하나. 아니, 알기는 하나. 여전히 기성 세대의 일반적 기업 문화와 다를 바가 없었다. 인간을 부품 취급하는 것. 오죽하면 노동자들끼리도 서로를 부품, 부품 하며 자조적으로 부른다. 우리가 언제부터 부품으로 태어났지?


사회적으로 이로운 일을 하겠다며 모인 사람들마저도 하나의 팀을 이루는 것,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것, 목표에 대해서 잘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그냥 원하는 일을 잘 수행해 줄 알맞은 기계를 찾는 걸 더 중요시 여기는 풍토에서 벗어나질 못하더라. 적잖이 충격이었다.


내가 취업 거부를 선언했던 것도 그 일로 인한 충격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어떤 조직에 속한다는 건 '나를 버리는 것'이라고 느꼈다. 나를 버리고 잃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래서 떠났다. 농촌으로, 해외로, 다른 삶을 찾기 위해.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녹록지 않았고 건강이나 정서적인 문제에도 부딪혔다.


그런데 저렇게 당차게 선언문을 남겨놓은 주제에 나는 부끄럽게도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일자리를 구했다. 구직활동을 했을 뿐만 아니라 금방 성공하기까지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 이틀만에 면접이 잡혔고, 첫 면접에서 바로 합격했다. 전국적으로 지점이 여러 군데 있는 큰 어린이 수영장이었다. 너무 감사하게도 그 곳엔 좋은 어른들이 많았다. 경쟁하지 않는 문화, 서로 도와주는 문화가 있어서 좋다는 과장님의 말씀에 기대 되기까지 했다. 직무 교육을 받는동안 그냥 나답게, 편하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고 행동하면 된다는 격려와 이 길이 맞는지 아닌지 고민될 수도 있지만 당신도 그런 고민을 했으니 괜찮다는 위로까지 들었다. 너무 감사했다. 어디 가서 이런 일자리를 또 구할 수 있을까. 사회에 나와 얻은 첫 직장으로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을 상대하는 일은 잘 맞았다. 아이들이 너무 귀여워서 힘든 줄도 모르고 수업을 했다. 개중에는 이유도 없이 처음 본 나를 좋아해주는 친구들도 있었고, 나랑 한 수업이 마음에 들었다며 다음 주에도 나한테 수업을 듣고 싶다 한 친구도 있었다. 너무 감사하고 뿌듯했다. 처음엔 내가 수영을 이렇게 못한다니, 이게 맞는 걸까,하는 자괴감에 늘 자신이 없었는데 내가 가르친 아이들이 한 시간만에 금방 느는 것을 보면서 자신감도 생겼다. 일하는 보람도 있었다. 모니터를 보지 않으니 눈 건강도 좋아지는 듯 했다.


그런데 내가 일을 계속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이 없었다. 조금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난 뒤에는 다음날 아침부터 헛구역질을 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살면서 한번도 이렇게 구역질이 나거나 했던 적은 없었는데, 갑자기 원인도 모른 채 2주 간격으로 아침에 일어나 두세시간을 헛구역질만 하며 보냈다. 혹은 급격히 몰려오는 복통에 시달리기도 했다. 장이 약한 편인데 찬 물에 오래 있으니 배가 안 좋기도 했다. 일본에서 혹사당한 몸뚱이로 겨우 귀국했는데, 쉴 틈 없이 훈련이 몰아치니 번아웃이 왔다. 쉬어야 하는 거 아닐까. 쉬고 싶다. 격렬하게 쉬고 싶다. 하루 6시간 교육으로도 이러는데, 이걸 마치고 나면 8시간 풀타임. 더 큰게 온다. 견딜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운동도 내 몸에 맞는 정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어깨도 무릎도 발목도 성한 곳이 없었다. 유리 몸뚱이는 그렇게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났다.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게다가 일반 직장인과 출퇴근 시간, 출퇴근 요일이 다르니 남는 시간에 무언가 배우러 학원을 다닐 수도 없었다. 이게 가장 걸리는 부분이었다.


사실 수영장에 취직하자마자 제일 처음 세운 계획이 바로 '5년 안에 탈직장인 되기'였다. 도시에서 벗어나 직장이라는 곳에 출퇴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으로 전환하는 걸 목표로 잡았다. 평생 직장? 개나 주라지. 난 평생 백수가 꿈이다. 인간의 디폴트 상태는 백수란 말이다. 출퇴근과 8시간 풀타임 노동에 얽매여 사는 삶은 최소화하고 싶었다. 5년 정도만 돈을 벌어 모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방에 있는 집 정도는 살 수 있었다.


거기에 틈틈이 작가 경력도 쌓고, 그림 실력도 외주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늘리고, 번역이 가능할 정도로 외국어 공부를 더 해두고, 작곡이나 모델링, 그래픽 공부도 해두면 프리랜서로 먹고 살 수 있겠지. 놀고 있는 땅을 빌리거나 화분을 사서 텃밭으로 자급자족도 할 계획이었다. 수영 강사 경력이 있으면 국내 바다가 아니라 호주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누구나 계획은 그럴싸하다.


그런데 웬 뉴스가 나왔다. 호주 겨울 40도. 이거 실환가. 지난 8월에 호주가 40도를 찍었다는 뉴스에 처음엔 '호주니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겼다. 그런데 잠시만. 호주는 8월이면 겨울이잖아. 올 해 시드니는 겨울에 40도라는 미친 기록을 세웠다. 한국이 더웠던 것 만큼 다른 나라도 정신 나간 더위를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그래도 오키나와 갔다가 너무 더워서 못 살겠다는 말을 달고 지냈는데. 그럼 난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방향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올 해는 정말, 기후 위기의 위험성을 제대로 실감한 것 같다. 9월 추석에도 푹푹 찌는 불볕 더위. 지금은 10월인데 낮엔 햇살이 따스해서 반팔차림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살기 힘들 정도로 더워지면 이민 가고 싶어도 갈 수 있는 곳이 줄어든다. 오히려 너도나도 도망가겠다고 난리가 날지 모른다. 바야흐로 기후 난민의 시대다.


오키나와에서 해수욕을 할 때, 바닷물이 뜨거워서 속이 안 좋았던 경험이 있다. 해수욕도 바닷물이 어느 정도 적절한 온도여야 할 수 있는 건데 이대로면 여름에 해수욕을 해도 온천욕이 되는 수가 있다. 할머니, 이건 온천물이잖아요. 이상하다, 방금까진 바닷물이었는디.


그 좋아하는 해수욕도 잃고, 수상 레저도 잃고. 만약 이대로 여름과 겨울만 남게 되면 최애 과일인 사과, 감 등 가을 과일도 잃겠지. 요즘 맛있는 시나노 골드와 태추단감, 제철맞은 고구마로 천고마비의 계절을 보내는 중인데 한국에서 더이상 쳐다도 볼 수 없어지면 눈물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고구마야 본래 아열대 작물이니 예외로 쳐도.


결국 유리 몸뚱이에 굴복하고 수영을 그만 둔 뒤로 후련한 마음도 있었다. 정규직으로 취업하면서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내가 정말 배우고 싶은걸 배우러 떠나지도 못하고, 우핑도 못하고, 새로운 도전을 해볼 시간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삶의 의욕이 바닥을 치는 기분이었는데 퇴사 하나로 싸악 나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막막함이 몰려왔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좋지. 일단 배우고 싶었던 그림과 게임 기획 학원을 알아봤다. 난 정말 알아만 보러 갔는데 다단계 당하듯이 눈뜨고 코 베였다. 학원 멘토라는 사람은 말만 멘토고 보험사 영업사원처럼 끈질기게 강매하는 장사치였다. 그래, 국비 지원이 되니까. 공짜로 학원을 다닐 수 있다면 크게 손해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6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게임 기획을 배웠는데, 막상 이게 내 길이 아닌 것 같으면 어떡하지. 나는 또 시간만 날리고 나이만 드는 걸까. 나이는 사실 숨만 쉬어도 자연스럽게 드는 건데, 그 사이에 아무런 발전이 없으면 불안한 내가 싫었다. 한국의 정상성 타령이 지긋지긋하다면서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이었던 거다. 아무에게도 내 삶이 왜 이런지 설명할 필요가 없다면 괜찮다. 늦은들 어떠하리. 그냥 배우기만 하다 인생이 끝나더라도 상관 없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으니까 괜히 눈치가 보였다. 도대체 난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걸까. 사회가 나의 감시자 역할을 하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도 잠시, 정말 운이 좋게도 내 허접한 포트폴리오와 수려한 자소설만으로 같이 일해보자며 보잘 것 없는 나에게 외주 작업이 들어왔다. 수영강사가 꿈이었는데 귀국 후 이틀만에 이룬 것도 모자라 재택근무자라는 꿈을 2주만에 이뤘다. 말도 안되는 행운이다.


문제는 또 다시 자신감 하락의 늪에 빠져있는 상태가 되었다는 거다. 알고보니 게임 시나리오는 소설과 결이 너무나 달랐고, 내가 이 프로젝트를 잘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되었다. 최선이야 다하겠지만 역량이 부족하면 어떡하지. 세상에 천재는 너무나 많고 그 사이 나는 없는 느낌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작가로서 일을 계속 따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림, 모델링, 그래픽 같은 시각 분야와 작곡, 사운드 이펙트같은 청각 분야랑 달리 글은 한국어라는 언어에 국한될 수 밖에 없어 받을 수 있는 일의 범위도 좁아질 뿐더러 조만간 챗GPT한테 먹혀버릴 것 같다는 불안도 올라오기 시작했다. 수영 괜히 관뒀나. 인간 육신을 가져본 적도 없는 AI가 운동까지 가르쳐주진 못할 거 아냐. 아, 어쩌란 말이냐. 꽈배기도 아니고 트위스트만 계속 추고 있으니 창자가 꼬일 노릇이다.


게임은 취업문도 좁고 취업 후에는 그게 취업문이 아니라 지옥문이었음을 깨닫게 할 정도의 미친 노동 강도를 자랑한다. 난 또 다시 부품 노예가 되는 걸까. 그건 싫다. 어떻게든 홈 프로텍터로 살고 싶다. 그 뿐만이 아니라 게임 시장도 성장, 상품성, 변화의 압박에 무지하게 시달리는 업계다. 탈성장을 외치는 프롤레타리아가 매일같이 성장, 수익, 매출, 이익, 기술 혁신 따위의 단어를 들으면서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자신이 없다. 무엇보다 난 싸우고 싶지 않다. 폭력도 싫고 전쟁도 싫다. 내가 게임을 하는 이유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예쁜 캐릭터를 보고 싶어서다.


그런데 이 "아무 생각 없이"라는 게 과연 좋은 걸까. 그만큼 내가 발디디고 있는 이 현실 세계가 거지 같으니 게임으로 도피하려는 건 아닐까. 나는 창작을 정말 사랑하고, 게임은 창작물을 현실감있게 시각화 한 궁극의 형태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아주 오래 전부터 게임을 만들어서 놀았고 이야기를 지어냈으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문화를 꽃 피워 왔다. 그러니 예술을 하는 것, 좋아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을 뿐더러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가 되어주기도 한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캐릭터 IP 컨텐츠를 좋아한다.


하지만 매년 지구가 더 뜨겁게 불타고 있고, 가고 싶었던 나라는 겨울에 모닥불이 필요 없을 정도로 그냥 모닥불 그자체가 되었다. 앞으론 점점 더 많은 나라들이 그렇게 변해갈지도 모른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기온 35도에 습도가 100이면 땀을 배출하지 못해서 죽는다는데, 오키나와에서 습도가 매우 높았던 날 진짜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정말 기후 문제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이런 상황에 기후 외에 다른 게 우선 순위가 될 수 있을까. 기후 문제로 인해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며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일조차도 어려워질 것이라 생각하니 우울하지 않을 수 없다. 기후 우울이 내 얘기가 될줄은 나도 몰랐지. AI도 골치아파 죽겠는데 기후까지 겹치면 변수가 너무 많다. 이과 여러분들, 제발 폭주를 멈춰주세요.


풀타임 노동자 신세에서 벗어나려면 화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그런데 기후가 안정되지 않으면 농산물 물가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원으로 알배추 한 통 겨우 사서 먹다 굶어 죽고 마는 거다. 물가에 생존이 위협받는 삶은 결국 구매력을 위해서 더 노동할 수밖에 없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의 노동은 이미 과포화 상태다. 안 해도 될 일을 돈 때문에 만들어서 하느라 지구만 더 축나는 셈이다. 기후 위기가 가속화 될수록 작황은 더 안좋아질텐데, 그렇게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기 전에 멈췄으면 좋겠다. 정말 간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생활농업인으로의 전환 뿐이다. 소규모 자연농, 생태농으로 가족들이 먹을 것을 직접 수급하는 형태를 이뤄서 식량 공급 체계 자체를 뒤엎는 게 답이다. 거무칙칙한 아스팔트 도로에 인간들만 바글거리는 가짜 조경대신 공동체 텃밭으로 실용성과 녹지 조성 모두 잡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페이를 위한 노동은 지금보다 훨씬 줄여도 아무 문제 없다. 그냥 서로 혼자서는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거들어주고 도우며 살면 생각보다 삶의 많은 부분이 해결된다. 지금은 남남으로, 개인으로, 고립되어서 오로지 돈만 가지고 모든 걸 해결하려니 벅찬 것이다.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현실이 괴롭다면, 이 세계를 평화와 즐거움으로 가득 채울 순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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