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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J Mar 11. 2018

[로마의 평일 3] 로마에서 폭설의 기준은 5센치

 

작년에 오자마자 나눈 잡담에서 겨울이 되어 로마에 혹시라도 눈이 오면 얼마나 웃긴 상황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믿지 못할 에프소드들을 들었다.


일단 생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눈이 오는게 거의 8-10년마다 한번씩 정도로 드문 현상. 평소에 워낙 온화한 지중해 날씨에 익숙한 나머지 정말 씨알꼽재기만큼만 와도 도시 전체가 마비가 된다고 한다. 로마 시내에 눈이 딱 2센치정도 쌓인 어느 해 겨울. 길에 나가보면 여기저기 미끄러진 차, 오토바이, 트럭 등이 즐비하고 사람들은 눈이 미끄러워 더이상 운전이 위험하다며 길에 그냥 차를 버리고 막 가는 일도 허다했다고. 그해 겨울 로마 경찰은 눈이 왔을때 응급상황에 대처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스노모빌을 사겠다고 했었단다. 핵심은 눈을 치우기 위한 스노모빌이 아니라 눈을 헤치고 이동하는 모빌을 사겠다고. 물론 2센치가량 쌓였던 눈이 서너시간만에 녹으면서 다시 없었던 일이 되었다고 한다.


깔깔거리고 들으면서 호들갑떠는 이탈리아 사람들답다고 생각했으나 10년만에 한번씩 오는 눈을 내가 볼 확률은 적을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첫 해 겨울을 겪어보니 생각보다 2월이 춥긴 하지만 눈이 올 정도의 날씨는 만들어지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맞이한 2월의 마지막 일요일 초저녁. 간간히 서로 숙제 정보를 교환하곤 하는 핸드폰의 학부모 단체챗방에서 메세지가 몇개 온다. 오후 5시 30분에 송고된 로컬 신문기사 하나. 오늘 밤 눈이 살짝 오고 영하로 기온이 떨어져 그 눈이 얼 염려가 있으니 로마 시장 직권으로 내일 모든 학교 휴교령을 내렸다고..


아직 눈 안왔는데????
아직 얼음도 안 얼었는데???
내일 휴교?

혼자 실소하며 설마 그럴까 싶었는데 학부모 챗방에서는 시장이 발동한 행정명령이니 당연히 사립이라도 학교는 쉬어야 하는거라는 의견이 대세... 우리 학교도 만약 안쉬면 쉬게 해야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안그래도 스키방학이라고 일주일 쉰 상태인데 또 하루를 쉬는건가요?


행정명령 내린게 5시 30분이라는데 6시에 땡하고 학교에서 이메일이 날아왔다. 네네 여러분 내일은 하루종일 학교 닫아요. 화요일에 만나요.

이렇게 아이들은 하루 더 방학이 늘어났다.


휴교령이 내리자마자 어린이집, 초 중 고를 막론하고 대학들까지 지체없이 공고를 내서 오늘 하루는 모두 닫는다고 내거는 걸 보고 이런 일사불란함은 처음 보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효율적일 수 있었던 이탈리아인가.


아침 6시 즈음 깨서 밖을 보니 어머나, 눈이 오긴 왔다. 한 5센치 정도 쌓일정도로 왔으니 정말 오긴 왔구나. 안왔으면 참 많은 사람 뻘쭘할 뻔 했는데 눈아 잘왔어. 애들은 어차피 학교 안가게 됐으니 가볍게 나만 출근하면 되겠군 하고 준비를 시작하려던 찰나, 다시 핸드폰에서 메세지들이 서로 오간다. 회사 사람들이 서로 동네마다 눈 많이 왔냐고 확인하며 지금 버스도 단축운행, 기차도 단축운행한다고 소식들을 물어나른다. 차를 가지고 나가는 건 자살행위이니 절대 운전하지 말라는 조언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더니 회사 운영과와 연락이 닿은 한 직원이 몇 분 후에 상황 업데이트를 알려준다. 건물 전체 경비를 해체하고 문 열어줄 경비인력이 출근 불가하여 오늘 사무실 문 닫는다고. 역시 사장님 다음의 사무실의 절대권력은 경비이다. 결국 총무과장 명의로 오늘 사무실은 닫는다는 공식통보를 받고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대부분의 공공기관은 다 닫았고 수퍼들이나 가게들도 대형 체인 아닌담에는 다 닫은 상태. 콜로세움 등 유적지, 공원들도 모두 임시 휴업이다.






다 해봐야 10센치 가량의 눈이왔을 뿐인데 휴교령에 도시 전체가 문을 닫다니. 그리고 그게 너무 당연한거라니. 그런데 이 상황에서 새로움과 어이없음을 넘어서서 잠시 내가 얼마나 각박하게 살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눈이 매년 오고 자주 오고 많이 오는 우리 입장에서는 당연히 눈 오면 치워야 하고 눈 오기 전에 염화칼슘 듬뿍 뿌려 최대한 빨리 녹게 해서 조속히 정상화를 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놓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8년 10년에 한번 정도 일어나는 여기서는 오히려 그렇게 준비해놓고 대비하는 돈과 노력을 들이는게 지나친 투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구도 급하지 않고 누구도 더 일하지 않으며 그냥 적당히 모두가 덜 일하는 분위기가 너무 생소하고 웃기지만 이렇게 하루 정도 갑자기 놀고 지나가는 거라면 7-8년에 한번은 그래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작가의 이전글 [로마의 평일 2] 비싸면 아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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