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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여행가 Aug 22. 2023

직장인은 기본적으로 을입니다

10년 차 직장인의 그땐 알지 못했지 

아침부터 팀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물어본다. 

  "오늘 **에 몇 시부터 깔린데?" 

  "아, 오후 2시부터 순차적으로 입고될 예정입니다." 


  (퇴근 후 저녁 시간)

 "**님, 퇴근 시간에 죄송한데 대표님 보고자료를 작성해야 해서, 이 숫자 좀 확인해 주세요"


최근 내가 기존에 하던 영역이 아닌, 팀장이, 아니 회사가 주목하는 IP와 콜라보한 제품이 출시되는 날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하던 일들에는 크게 관심 없었던 팀장이었던지라 이런 관심이 내심 기분이 좋다가도 이내 마음이 굳어진다. 조직개편 이후 지금까지 내가 혼자서 어렵게 하고 있는 다른 일들은 관심도 안 가졌던 팀장에게 서운했다가, 그 또한 회사의 직원임을 상기한다. 윗분들에게 보고할 거리가 중요한 자리니까. 공채 출신의 회장님 비서도 했었다는 키가 큰 우리 팀장은 큰 키만큼 스마트하다. 물론, 인간 AI라고 불릴 만큼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평도 있긴 하지만 임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사람임은 확실하다. 뭐 나와는 크게 상관없는 일이지만.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참 많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몇 년 전만 해도 회사에서 상사가 시키는 일이 항상 최우선이었고, 그 업무를 잘하는 것이 내가 회사에 존재하는 이유라고 느꼈었던 내가 이제는 그 업무가가 나에게, 상사에게 그리고 회사에 왜 중요한지를 평가하는 또 하나의 시선을 갖게 된 것이다.


어제는 원작사와 매주 있는 위클리 콜을 하고 나서 또 한 번 내가 철저하게 을의 입장임을 깨달았다. 사실 이 업계에서는 원작사의 말이 언제나 갑이긴 하지만, 그래도 계약서에 뻔히 있는 내용을 하지 말라고 우겨대는 통에 순간 입을 닫아버렸다. 몇 분간 정적이 흘렀다. 보다 못한 다른 팀원이 말을 이어가주긴 했지만, 원작사 측에서도 당황했던지 어젠다를 다 마무리하지도 않고 황급히 회의를 마쳤다. 평상시에 말도 안 되는 원작사의 요구에도 너스레를 떨며 회의를 잘 이어가던 나의 기존과 달랐던 태도에 원작사도 당황했던 것 같다. 


원작사에서도 20년 가까이 일한 그분은 50대 호주 국적을 가진 홍콩 아저씨다. 그는 한 회사에 오래 있으면 사람이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나에게 보여준 사람이기도 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더 설명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하는 일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크리에이티브를 승인해 주는 역할을 하는 그는,  한국 시장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혹은 계약 내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권한과 위치만 가지고 우겨대는 일이 당연한, 자기보다 높은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는 항상 자신의 기분을 다 표출해 내는 사람이다. 모두가 그 사람과 일하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막상 선뜻 나섰다가는 앞으로 진행되는 일에 차질이 생길까 봐 다들 맞춰주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회사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도 직장인 아닌가? 본인이 죽을 때까지 이런 갑질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갑의 입장일 때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한다. 자신의 무심코 던지는 그 말 한마디와 태도가 을에게는 몇 배의 타격감으로 오는지를 알아야 한다. 뭐 사실 갑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또 우리 국내의 유수의 회사들에도 포진해 계신 많은 분들이 떠오른다. 누군가에게는 내가 갑이라고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건, 항상 태도가 가장 좋은 사람들은 회사의 대표라는 것이다. 물론 잘 되는 회사의 대표님들.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열린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상대방이 내 사업을 도와주러 왔다고 기본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 잘 나가는 회사의 대표가 되었겠지만.


갑과 을을 떠나서, 내 일을, 그 일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는 데에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서로의 위치에 따라서 내가 일을 더 편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마인드부터 없애야 평생 을로 살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갑은, 누군가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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