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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여행가 Sep 14. 2023

우리 그림 그리러 갈까?

출근길을 주하와 함께 나서는데 유독 날씨가 좋다. 주하도 내심 기분이 좋아 보여서 한 껏 들뜬 목소리로 주하를 바라보며 묻는다. 

"주하야, 오늘 날씨는 어때?"

 "날씨가 좋아"

 "날씨가 좋은 건 어떤 거야?"

 "날씨가 파란색이야" 


매번 내가 밖에 나갈 때마다 “와~! 날씨가 좋다"라고 하니까, 가끔 주하도 “오늘 날씨 좋다~”라고 말하길래 먼저 물어봤다. 주하가 제일 좋아하는 색도 파란색이고, 오늘 유독 하늘이 구름 없이 파랬다. 주하는 형태나 질감보다 색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이참에 다양한 색을 보여주는 책도 두어 권 구입했는데, 연하다와 진하다의 구분까지는 가능한 단계고, 색을 섞어서 다른 색을 만들 수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다. 


주하는 유독 파란색을 좋아한다. 24개월이 지나고부터였을까? 말을 조금 하기 시작할 때부터 주하의 단골 질문이 “무슨 색 좋아해?”였다. 본인은 그때부터 쭉 파란색을 좋아한다고 말했고. 덕분에 지인의 아들옷과 신발도 잘 쓰고 있다. 갓 태어난 아이는 시력이 완벽하게 발달하지 않아서 빛과 명암으로만 세상을 바라보다가 3개월 정도가 되면 색깔을 보게 되고, 만 2~3세가 되면 색깔을 구분하기 시작하며, 만 4~7세가 되면 좋아하는 색을 고집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다고 한다. 주하가 벌써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색을 고집하고 의사를 표현하는 것은 잘 발달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기쁘게 받아들인다. 


주하의 색깔놀이는 주로 목욕탕에서 진행된다. 아이들용 물감을 잔뜩 사다가 아예 목욕탕에 자리를 잡고 있다. 물감을 짜서 손에 발라서 화장실 벽에 발라도 보고, 찍어도 보고, 색을 섞거나 물을 뿌리면서 지우는 것까지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한다. 

주하와의 목욕놀이 시간은 대충 이렇다. 


"주하야 늑대 그려줘. 늑대는 무슨 색이야?"

"까만색" (까만색 물감을 벽에 색칠한다) 

"주하야 엄마돼지는 무슨 색이야?

"초록색" (내가 좋아하는 색이다)

"셋째 돼지는?" 

"갈색"

"첫째 돼지는?"

"빨간색"

"둘째 돼지는?"

"노란색"

 "아, 둘째 돼지는 지푸라기라서 노란색이야?"

"아니, 둘째 돼지는 통나무야"

"아, 그럼 첫째 돼지가 지푸라기야?"

“응.”


요즘 주하가 좋아하는 <아기돼지 삼 형제>를 색으로 표현해 달라고 해보았더니, 나름 자신만의 감정으로 캐릭터별로 색을 표현할 줄 아는 모습이다. 처음에는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려고 시도를 했는데, 아직 그림이 생각대로 그려지지 않아 짜증을 내는 모습이 보여서, 그냥 이렇게 목욕탕에 자유롭게 온몸으로 색깔을 가지고 노는 것으로 대체했더니 한결 편안한 모습이다. 이제는 아예 물감과 붓과 팔레트를 전부 목욕탕으로 이동해 두었고, 목욕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목욕탕배 사생대회가 펼쳐진다. 덕분에 목욕하기 싫어하는 주하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주하야, 우리 그림 그리러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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