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 3가지
올 2020년은 유독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코로나 덕분에(?) 재택근무를 6개월 넘게 하고 있기도 하고, 외부 모임과 여행들은 대부분 취소되었다. 달라진 점이야 많이 있겠지만, 유독 올해 초에 샀던 일기장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평소라면 일기장은 연초에 세웠던 계획만 초라하게 새 것처럼 남아 있어야 하는데, 벌써 몇 장 남지 않을 정도로 아주 너덜너덜해졌다. 일기라는 형태의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위안을 받고 있었던 걸까.
항상 글 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만 할 뿐, 학업, 취업, 연애, 결혼 그리고 일상의 여러 가지 우선순위에 글쓰기는 항상 뒤로 밀려나기만 했다. 그러다 문득, 모든 것을 제쳐 두고 일기장을 꺼내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질문해 보게 되었다. 왜 나는 글을 쓰려고 하는지.
'인생이 공허해질 때마다, 나를 달래기 위해 씁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극도로 줄어들었다. 물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안 만나면서 오는 스트레스 절감 효과도 있었지만, 가족들조차도 만나기 꺼려지는 이 시기가 나같이 에너지를 외부에서 얻는 외향성이 높은 사람에게는 많이 힘들었다. 시속 100km로 쫙 뚫린 고속도로만 달리다가, 시속 30km 이하로만 달려야 하는 스쿨존에서 계속 맴돌고 있는 기분이랄까. 속도가 줄어드니 멍 때리는 시간이 많아지고, 쓸데없는 생각들도 덩달아 많아진다.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된 거야,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런 공허한 질문들이 가득해지면서 불안해질 때마다, 아무 때고 일기장을 펼쳐서 글을 썼다. 당장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적거나, 곧 다가올 작은 이벤트들을 적어 놓기도 하면서, 당장 눈앞의 불안을 잠재웠다. 그렇게 불안의 이유들을 차분히 적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불안이 잦아들곤 했다.
고민이 있거나 불안할 때면, 항상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서 풀어내던 나였는데, 코로나로 인해 글을 쓰면서 스스로 달래주는 방법을 하나 배웠다. 사실 나도 모르게 하고 있던 방법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서 좀 더 명확하게 알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나를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가장 효과적이면서,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는 글쓰기. 앞으로의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될 것 같다.
'기록을 통해, 나와 내 삶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어서 씁니다.'
올해 2월부터 쓰인 내 일기장의 글들을 하나씩 읽어 보았다. 2020년 상반기의 나는 의외로(!) 전반적인 일상에 만족하고 있었고, 때때로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고민과 그것을 해쳐나갈 방법을 함께 제시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마냥 불안해하고만 있었던 것 같은데, 일기장에 쓰인 기록을 보니 나는 꽤 긍정적인 사람이며, 일상의 소중함에 대해 감사하고 있었다.
나에 대한 판단은 가장 최근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과 그에 따른 감정의 변화에 좌지우지되기 쉽다. 예를 들어 전반적으로 좋은 성과를 거두었고 좋은 기억이 많았던 전 직장 생활이, 퇴사할 때쯤 들었던 직장 상사의 악랄한 코멘트만 기억 남게 되어 버린다던지. 행복했던 추억과 많은 깨달음이 있었던 전 남자 친구와의 연애가 마지막 헤어질 때의 순간들만 남는 것처럼.
내 삶은 하루하루의 총합이다.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알면, 내 삶이 보인다. 글쓰기는 하루하루의 일상을 소중하게 대하는 내 삶의 태도를 반영한다. 나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면서, 내 하루를, 내 삶을 돌아보고 내 방식대로 만들어 가기 위해 글을 쓴다.
'혼자서도 행복하지만, 함께여서 더 행복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
나는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고 나를 찾는 사람이 많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뭐 좀 더 일찍 그런 아줌마가 되면 더 좋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내가 남들을 품을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어야겠고,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깃거리들을 잔뜩 가지고 있어야겠지. 가뜩이나 기억력이 안 좋은 내가, 나이가 들어서 더 좋아질리는 만무하니 말이다.
삼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보내면서, 이미 많은 것들을 경험했고, 그 안에서 느끼고 깨달았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이야기들을 기록해 두지 않았기 때문에 단편적인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제일 안타깝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내 삶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어 기록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그런 할머니(혹은 아줌마)가 되어 있지 않을까.
내 삶의 목표를 위해서 글쓰기를 시작한다. 나를 달래주는, 나를 더 깊게 알 수 있도록 해주는 나의 행복한 글쓰기가 누군가에게도 위안과 즐거움과 영감이 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글쓰기라는 소중한 친구를 만들었으니, 조금 늦더라도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조금씩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