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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여행가 Sep 10. 2020

집은 공간일까,
그곳에 사는 사람일까.

생애 첫 청약에 광탈하면서 든 생각



결혼 4년 차. 2번의 전세 계약을 하고, 곧 또 이사를 가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30대 부부라면, 결혼하면서 내 집을 살 수 없는 게 정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만의 특수한 "전세"라는 계약을 활용해서, 여러 지역에 살아보고 우리 가족에게 맞는 동네와 환경을 찾아보자는 나름 야무진 목표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주변의 친구들이 소위 "영끌"을 해서 집을 장만할 때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내 방식이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임신을 하고 나서부터였을까. 벌써 다니던 어린이집이 바뀌는 것에, 선생님과 친구들이 바뀌는 것에, 3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던 친구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 였을까. 갑자기 안 보던 부동산 뉴스가 눈에 들어오고, 괜찮은 동네를 발견할 때마다 네이버 부동산에서 지역 매물가를 확인했다. 그리고, 청약에 대해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혼인신고 7년 이내에만 쓸 수 있다는 "신혼 특공"에 도전하기에 이르렀다. 분양가 상한제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었던 올해 8월에만 3개의 청약을 처음으로 신청하고 들뜬 마음으로 남편과 기대하고 있었는데, 모든 곳이 광탈이다. 내 점수로는 탈락이 당연한 것인데,  탈락이라는 안내도 없이, 그냥 빈 화면만 뜨는 청약홈에 몇 번이나 다시 들어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아이(가족)에게
'집'이 주는 안정감이 가장 중요할까? 


의식주는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일상이고, 이 일상들이 모여서 내 삶이 되는 것이니까. 그런데,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우리 가족이 입고, 먹고, 사는 곳의 주체는 항상 우리 가족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에게 보여 주기 위해, 돈을 더 벌기 위해,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의식주는 우리 자신(가족)의 주체성(자아)을 표출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며, 그것이 온전히 우리 자신(가족)을 대변할 수도 없음도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  


50년대생인 우리 부모님 세대에는 보통 2~3명의 아이가 있었다. 부부의 맞벌이도 꽤 많았던 시대였고, 시댁이나 친정에서 손주를 봐주는 집도 꽤 많았다. 그래서 둘째가 태어나면 첫째는 부모와 떨어져 사는 집들이 있었던 때였고. 나는 워낙 외향적인 성향의 아이라, 서울에서 꽤 떨어진 경북 상주에서 부모님과 2년여 동안 떨어져 있으면서도 씩씩하게 잘 지냈었는데, 아직도 엄마는 그때의 내 이야기를 하면 눈시울이 붉어지신다. 어린 얘를 혼자 두고 서울로 올라올 때의 마음이 너무 아팠다면서. 무던한 성향이라고 생각했던 나도 꽤 많은 부분이 유년시절의 부모와의 이별이, 나의 부정적인 성향들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은 서른이 넘고서야 우연히 한 심리 상담에서 알게 되었다. 그만큼, 어린 시절 유년기의 부모와의 안정적인 애착 형성과정은 그 사람의 전체적인 성향을 결정짓는 데에 큰 역할을 한다. 


집을 안정감, 투자의 목적, 혹은 주변에 휩쓸려서 사기에는 일단 가격이 말도 안 되게 비싸졌다.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무리하게 집을 사는 것보다, 내 삶의 질을 올려줄 수 있고, 나와 우리 가족의 정체성을 보여 줄 수 있는 집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집보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넓고 비싼 집을 구해도,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가 풍요롭지 않다면, 그 집은, 그 가족은 초라할 것이다. 어떤 공간에 있든, 무엇을 먹고, 입든, 행복으로 꽉 찬, 풍요로운 가족이 되는 것이 우선이다. 곧 태어날 우리 아이에게 2년마다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안정적인 집은 줄 수는 없지만, 그 집에 살고 있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우리 가족이 항상 함께 있을 것이고, 우리가 어디에 있든 우리 가족이 바로 우리 집이며, 고향임을 알 수 있게 해 줘야지. 


신혼 특공 광탈로 잠깐 허무해졌던 마음을 다잡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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