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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r 05. 2019

H사를 졸업합니다

1년 전 이 맘 때 퇴사 메일


안녕하세요, HR팀 OOO입니다.

제가 오늘까지 출근을 하고 4월 2일을 마지막으로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한 분 한 분 찾아 뵙고 먼저 인사를 드려야 되는데 이렇게 메일로 말씀을 먼저 드려 죄송합니다.


마지막까지 정들었던 H사를 놓기가 쉽지 않아, 몇 개월 간 고민 또 고민을 하다 보니 인사드릴 새도 없이 시간이 많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정들었던 동료 분들을 보면 스스로 마음이 많이 아플 것 같아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H사에서의 임원 면접 전 날, 너무 간절히 입사를 하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라 무작정 서울에서 새벽 6시에 지하철을 타고 기업은행 앞에서 H사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고 돌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나도 저 사람들의 동료가 될 수 있을까”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H사는 부족한 저에게 인사팀으로서 근무를 할 수 있도록 제게 기회를 준 유일한 회사였습니다.


첫 회의 시간에 “인사팀원으로서 나도 회의에 참석할 수 있구나”라고 숨만 쉬어도 행복했던 것 같은 순간들이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대부분의 시간을 교육담당자로 보내면서 회사에서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늘 부족한 부분이 많았는 데도 교육장 안 밖에서 응원해주시고 걱정해 주셨던 분들이 계셔서 행복하게 회사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분에 넘치게 인정받고 사랑 받았습니다. 회사를 넘어 조직과 사람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교육 후에도 늘 찾아 뵙고 더 지원해 드려야지 하고 마음은 먹으면서도, 막상 하는 것은 부족했던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에 늘 죄송스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오며 가며 마주치는 복도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마음만큼 더 반갑게 인사 드리지 못한 것 같아 혼자 늘 미안해 했습니다.


이렇게 아쉽고 계속 뒤돌아볼 것 같은 H사를 떠나고자 하는 것은 철이 없게도 아직 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입니다. 또, 조직개발 담당자로서는 아직 제 역량이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H사를 떠나고 나서 후회할 것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를 하기 보다는 해보고 나서 후회하는 것을 선택해 보고자 합니다.


학생 시절부터 작지만 사회 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단체들에 몸을 담았었습니다. 그러한 단체들과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을 도울 때 저도 살아있는 것 같아서, 인사와 조직개발이라는 업무에 관심을 갖게 되고 H사에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모든 스타트업들의 꿈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성공한 벤처회사인 H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제 7명 남짓 되는 아주 작은 스타트업에서 더 많이 고생하면서 부딪치고 배워 나가 보려고 합니다. 늘 좋은 환경과 많은 지원 속에서 일하다가, 바닥에서 시작하는 것이 많이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그 경험들로 더 많은 사람들과 조직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려 합니다. 늘 교육에서 말로만 떠들었던 것을 직접 실천해보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려 합니다.


늘 마음 고생하는 저희 HR 동료들에게 가끔은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나중에라도 제가 도움이 될 부분이 있다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늘 건강하고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보고싶은 건 답이 아니다. 선택 앞에 망설이는 손짓, 괴로운 떨림, 그럼에도 끝내 선택을 하고야 마는 과정이다. 정답은 없다. 나를 증명하고 인간답게 만드는 선택만이 있을 뿐이다. 오직 선택만이 나를 증명하고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씨네 21, 송경원"




6년 간 인사담당자로 몸 담았던 첫 회사를 퇴사하며 마지막으로 마음을 담아 사람들에게 보냈던 편지. 이 편지에 마음으로 응원하며 보내줬던 답장들을 하나하나 저장하고 가끔 꺼내보며 오늘도 힘을 낸다.


어렸을 때부터 낯 가림이 심하고, 소심하고 감정과잉인 내가 오늘도 이렇게 인사를 하고 있는 것은 대부분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슬펐던 일, 화났던 일, 힘들었던 일 역시 많았지만 대부분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즐거웠고 존중받으며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사를 다니고, 그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들을 쓴다. 회사가 마냥 좋다는 것도 거짓말 같지만, 마냥 힘들고 싫다는 것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마다 함께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힘들었던 이야기 뿐만 아니라 회사 내의 좋은 사람들과의 좋았던 이야기들, 사람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나눴던 이야기들을 글로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힘든 회사 생활 속에서도 고마움을 나누고 마음을 나눴던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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