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r 07. 2019

우리가 너를 좋아했던 진짜 이유는

1년 전 이맘 때의 퇴사 면담

그 날은 좀 이상한 퇴사 면담이었다.

구성원들의 퇴사 면담을 주로 진행하던 파트장님도, 몇 개월전부터 종종 퇴사 면담에 참여해서 퇴사자 분들의 의견을 듣던 나도 퇴사 면담이 처음은 아니었다. 평소와 다를 게 없어 보이는 퇴사 면담에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면 파트장님과 내가 오늘 퇴사 면담의 총 참석 인원이었다는 것이다.


그 날은 나의 퇴사 면담이었다.

전 날에도 갑자기 밤에 혼자 짐을 싸다가 무려 40분을 혼자 책상에서 소리없이 울었기 때문에 퇴사 면담은 씩씩하게 마치고 올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 걸. 파트장님의 눈을 보자마자 쉴새없이 눈물이 흘렀고 그렇게 서로 안아줬던 기억이 있다. 동료들과 떨어진다는 슬픔과 미안함과 그 밖의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


"우리가 너를 좋아했던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지만, 너를 좋아했던 진짜 이유는 사람에 대한 진정성 때문이었어. 어디가서든 OOO이니까 잘할 거야."


파트장님이 퇴사 면담에서 마지막으로 내게 건네 준 말이었다.


똑똑하거나 일을 정말 잘해서가 진짜 장점이 아니라, 진정성이라니. 측정할 수도 없고, 두루뭉실한 것 같은 나를 좋아하는 진짜 이유가 처음에는 약간 섭섭하게도 느껴졌다. 진정성이라니 그저 마음이 여리고 감정적인 말의 좋은 버전인 것 같기도 한 말. 퇴사 면담 이후 다른 팀 동료에게도 비슷한 내용의 응원 메시지를 받았었다.


진정성. 마지막으로 그 말을 품고서 나는 첫 회사를 나왔다. 이직을 하면 그 동안 쌓았던 경험과 지식들로 뭐든 그 이상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낯선 사업, 조직, 일과 방식들. 큰 기업들에서는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것들이 스타트업에서는 당연하지 않았고, 도대체 스타트업에서 인사담당자는 무엇을 해야 하고 뭐가 잘하는지 알기 어려운 순간들이 많았다. 생각해보면 만들어진 환경에서 아주 잘 맞는 동료들과 딱 그 일만 잘 해내면 되는 환경에서 나도 모르게 자만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해보지 않은 일과 어떻게 하면 되는 지 모르는 일들 앞에서 작아져만 가고 스스로에 대한 자책도 커졌다. 내 역량이 이것 밖에 안 되었나, 왜 이렇게 똑똑하게 못하고 있지. 그렇게 한없이 스스로 못나 보일 때 저 말이 바닥에서 나를 이끌어준다. 내가 정말 잘한다고 인정 받은 것. 사람들이 정말 나를 좋아해줬던 이유. 똑똑해서가 아니라, 일을 정말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이 있어서.


진정성이 무엇인지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저 온 마음을 다해 사람과 일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가끔 찾아오는 괴로운 시간들을 보낸다. 불편하고 힘들다고 고민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음을 믿고, 쉽게 타협하지 않고 붙들어 매는 것이 나의 유일한 강점이라고 생각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H사를 졸업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