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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May 04. 2017

집 속의 집_리움 미술관

7년 만에 리움 미술관에 갔다.

회사에서 회식 전에 단체 관람 식으로 간거였지만, "리움"이라는 말이 묘하게 향수를 자극했다. 


리움 미술관이 있는 한강진 역, 한남동에는 많은 추억들이 있다.

7년 전에 예비 대학생 때 왔던 리움 미술관,

2년 내내 군복무를 했던 공관,

몇 번 갔던 한남동 동네 목욕탕,

면회 온 엄마와 함께 갔던 음식점,

그 때는 정말 매웠던 누군가와 함께 갔던 동아 냉면,

12월이었지만 뜨거웠던 블루스퀘어 공연장... 


한강진 역에 내려서, 리움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데 참 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생각보다 역에서 리움 미술관이 참 가까웠다는 걸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7년 전의 일이지만, 미술관으로 가는 길목 길목이 다 생각이 났다.

미술관의 구조와 모습도 다 생각이 났다.

겨우 한 번 왔을 뿐인데도, 정말 신기하게 몇 번 왔었던 것처럼 다 기억이 났다. 


7년 전의 어느 하루가 생각이 났고,

그 때의 기분, 감정, 생각들, 그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다 생각이 났다.

잠깐 다시 순수하던 때로 돌아간 것 같아, 그 때의 기분에 젖어서 멍하게 서 있었다. 

리움 미술관에서는 서도호의 "집 속의 집"이라는 전시를 하고 있었다.

"집"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천으로 그림으로 참 다양하게 전시해 놓고 있었다. 

전시장 입구의 크고 하얀 벽.

전시의 이름을 적어 놓은 그저 하얀 벽에 불과할 뿐인데도, 참 깔끔하고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내가 정말 찾아가고 싶어서, 혼자 미술관에 와본 적은 없었다.

늘 누군가와 함께, 누군가에 이끌려서 찾아오고는 했던 곳이다. 


"너는 이 그림들이 다 뭘 의미하는 지 알아? 정말 이 그림들을 다 알고 보는 거야?"

"아니"

"그럼, 미술관에는 왜 오는 거야?"

"그냥 보는 거야." 


언젠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전시 자체보다는, 오히려 미술관 자체의 느낌, 냄새 같은 것을 더 좋아했던 듯 했던 사람.

조금 이해가 갈 것 같기도 했다. 

나는 그림도 미술도, 잘 모르지만,

오늘은 미술관의 느낌이, 미술관에 오는 사람들이, 그 냄새가 참 따뜻하고 좋게 느껴졌다. 

몇 번되지 않았지만, 그 동안 내가 가봤던 미술관에서의 기억들이 소소하게 다 살아났다.

어쩌면, 정말 그림을 좋아하고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 말고,

단지, 나처럼 이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을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지금까지 자기가 살았던 집들을 이 곳에 옮겨 놓았다고 했다.

7년 전에 처음 혼자 서울에 올라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았던 나의 집들이 떠올랐다. 


기숙사,

친척집,

2층에 따로 떨어져 있던 하숙집,

훈련소,

현충원,

공관,

다시 기숙사,

보라색 침대가 놓여있던 하숙집,

조그만한 개가 반겨주던 하숙집,

그리고 지금의 자취방 

생각보다 참 많은 나만의 방들을 거쳐왔고, 또 이사를 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떠올려보면, 그 때의 집들의 구조와 물건들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 때의 감정들도 그 방에 오롯히 살아 남아 있는 듯 하다. 

나는 또 어떠한 방들을 거쳐갈까. 

정말 집에서 사소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들.

무언가 의미를 부여해 버리면, 이렇게 변해버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니어쳐 식으로 조그맣게 꾸며놓은 방 중의 하나.

중간에 있는 SKID ROW의 앨범이 마음에 들어서 찍었다.

스무살 때 한창 주구장창 듣던 SKID ROW의 앨범.

18 and LIFE, Youth Gone WIld, Monkey Business, In a darkened room, I remember you 등등 

지금도 그 음악들을 들으면, 혼자서 주구장창 걸어다닌 때가 생각이 난다. 

꼭 남미로 한 번 떠나보고 싶다며 읽었던 체게바라의 평전.

쿠바에 가면, 노인들이 시가를 피워 물고 음악을 연주한다던 부에나비스타소셜 클럽도 생각이 났다. 

어디선가 본듯한, 귀여운 그림.

집에 발이 달렸다.

집도 오랫동안 한 곳에만 머물러 있으면 엉덩이가 근질근질할 것이다.

이것은 집의 숨겨둔 욕망 쯤 될까? 

이 그림을 보다가,

대륙은 떨어져 있어도, 바라보는 하늘은 연결되어 있으니까,

변하는 건 하나도 없다고 믿던 시절이 생각났다.

나에게도, 그렇게 믿고 생각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건 집이 걸어서 대륙을 횡단하고, 낙하산을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일만큼이나

어려운 일임을, 세상에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은 하나도 없음을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알게 되었다. 

7년 간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들과

많이 아파하던 그 시간들이 생각났다. 

그 때는 죽을 것만 같았던 시간들도,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고 나니 크게 겁내하지 않고도 되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간도 많이 흐르고 나면,

아무렇지도 않게 아물어 있을 것이다.


물론,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다면 말이다. 지금은 당연히 아프다. 

그러나, 언젠가는 꼭 그리된다라는 것을 이미 몇 번 경험했고,

또 마음 한편으로 그렇게 믿고 있기에,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7년 전 리움 미술관에서 좋아하던 여자 아이한테,

말 한마디 어떻게 건넬 줄 몰라서, 다른 곳만 바라보고 어색하게 서 있던 아이가

이제는 몇 번 사랑도 해보고, 헤어져 보기도 했다는게 신기했다. 


앞으로 또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또 어떤 사람들과 만나게 될 것이며, 또 누구와 사랑하게 될 것이며, 아파할 것이며,

7년 후 오늘 나는 어떤 곳에 서 있게 될까... 

요즘 따라 자꾸 앞으로의 미래가 참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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