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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하고 사사로운 Nov 25. 2024

20년 만에 처음으로 지하철에서

유난히 피곤한 하루였다. 어떻게든 웃어보며 잘 지내는 하루가 끝났고, 회사 밖을 나가면 무거웠던 가면이 벗겨지고 몸도 축 늘어지는 것 같았다.


지하철 문이 열리는데 어떤 남자 분이 다리를 심하게 절뚝이면서 지나갔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이 올라 차서 순간 눈물이 핑 돌 뻔 했다. 감정은 올라오는데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다리를 한 동안 절었던 기억 때문일까. 다시금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찾아왔기 때문일까.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그 순간, 다리로 시선이 갔고 정말 다리를 저는 분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경험해보지 못했다면 판단하지도 않았을 일이었다. 거짓말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거짓말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멍하게 서 있는 사이에 남자는 통로 사이의 문을 지나, 껌을 사 달라고 말하면서 지나갔다. 다리가 심하게 꺾일 때마다 마음도 심하게 꺾이는 것 같았다.


껌의 가격은 얼마일까. 얼마의 웃돈을 받는 것일까. 사명감이나 대단한 원칙은 아니었지만 지하철에서 무언가를 사본 일은 없었다. 쓸데없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자는 통로 사이의 문을 지나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이상한 감정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냥 마음이 아팠다. 남자가 갔던 길을 따라 지하철 사이의 통로를 하나, 두 개, 세 개, 네 개 정도를 지나쳤을 때 노약자 석에서 다리가 풀린 채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남자가 있었다. 


"껌 한 통 살게요".

"엇, 천원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행복하세요"


껌을 받는 그 순간 어쩐지 부끄러우면서, 뜻밖의 선물을 받는 느낌이었다. 껌의 가격이 고작 천원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미소가 너무 환해서. 병이 나쁜 것 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 전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도 하게 되었고, 공감하지 못했을 세상과 감정들에 대한 이해도 더 할 수 있게 되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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