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어려운 것 같다. 사실 다른 회사도 어렵고, 우리 나라도 어렵고 다른 나라도 어려운 것 같다.
헬 조선이라고도 하고, 전세계적으로 저성장기, 불황기라고 한다.
결혼을 할 나이가 되고 보니, 집 값도 너무 비싸고 모든 것이 비싸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 살기에는 적은 돈을 받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빚을 내고 그걸 갚기 위해 일해야 하고 아이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면 계산이 잘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수저 계급론을 언급하며, 나는 흙수저로 태어났지만 내 자식에게는 흙수저를 주고 싶지 않아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했다.
특별히 경쟁에 낙오되거나, 아주 불성실하게 살아온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무엇을 잘못했지'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기성 세대들 중 누군가는 '나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젊은이들에게 힘든 세상이다, 힘내라'고도 하고, '억울하면 먼저 태어날 수 밖에'라고 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의 속성 상 "빚"은 필연적인 요소이고, 이런 시대가 온 것이 기존의 세대들이 미래 세대를 고려하지 않고 비도덕하게 흥청망청 빚을 낸 것이다라고도 한다. 쉽게 단정지을 수는 없는 부분이다.
어쨌든 나는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평범하거나, 숟가락으로 따지면 그보다 낮을 서른이다.
나도 친구들도 4인 가족이 가장 기본적인 형태로, 가정마다 차를 한 대씩 보유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매년 나쁠 것보다 좋아질 것들이 더 많았던 시대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
나는 당연히 내가 아버지보다 훨씬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난하고 어렵지만, 하나하나 일구어 온 아버지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넉넉하지는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게 지원받고 공부만 해 온 내가 당연히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아주 평범하게 생각하다고 생각해 온 삶의 형태가, 아주 특별해진 시대를 살아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예전에는 방 1칸으로 시작하더라도 좀 더 넓혀 가고, 전자레인지, 양문형 냉장고 하나씩 갖춰가는 것으로 직장생활의 보람을 느꼈던 시대라고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아들이었을 때 누렸던 좋은 집, 물건들을 가장으로서는 가지고 살기가 어렵다.
물질적으로는 기준이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졌는데, 소득은 그에 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치솟는 물가와 집값을 은행의 예금 이자율과 연봉 상승률이 감당해 주지 못한다.
이미 가져보았지만, 앞으로는 가지지 못할 것으로 생각되는 세대들은 누리지 못할 것들이 분명할 뿐 무언가를 하나씩 갖춰가는 즐거움을 깨닫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4인 가족을 부양하던 1인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힘은, 맞벌이가 아니면 살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떨어질 때로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반복되는 야근, 휴근, 스트레스 속에서 직장인은 물질적 즐거움, 가정 속에서의 위치 말고 무엇으로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능력있는 가장의 삶으로 대변되던 행복의 기준이 한국 사회에서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기준들은 내가 보편적으로 살 수 없음으로 인해, 통하지 않고 괴리감만 커진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은 내가 기준을 찾아야 하고, 내가 오늘 하루 즐거워야 할 이유와 보람을 만들지 못하면 이 공허함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오늘 하루 무엇을 위해서 살고 있지?"
"나에게 중요한 것은 뭐였지?"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나를 놓지 않기 위해, 내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하는 질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