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0년 만에 비포선라이즈를 다시 봤다.
줄리델피와 에단호크가 기차에서 만나는 장면, 강가를 걷는 장면은 여전히 생생하였다. 보는 내내 꼭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다만 기억하는 결말과 다시 본 결말의 느낌만은 매우 달랐다. 내가 기억하는 결말은 줄리델피와 에단호크가 잔디밭에 누워있던 그 장면, 그리고 곧바로 기차에서 재회를 약속하던 장면이었다. 10년 전 영화를 처음 소개 받은 건 어떤 여자아이로부터였다. 영화의 내용을 깊게 음미하는 것보다는 "나도 이 영화를 봤어, 너의 감성을 나도 이해하고 싶어"라는 말이 더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 여자아이는 나의 첫 여자친구가 되었고 그 때까지는 이별의 경험이 무엇인지도 몰랐으니까.
다시 본 영화의 결말에서는 잔디밭에 누워있던 장면부터 기차역 재회를 약속하는 장면 사이의 미묘한 감정, 기차가 떠난 뒤에 둘의 얼굴에 남은 그 표정들이 보였다. 처음 영화를 본 느낌이 달달하기만 한 가나초콜릿이었다면, 지금 본 영화는 달콤씁쓸한 맛의 카카오초콜릿 같다고 할까. 씁쓸하고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아마 몇년 전 쯤에는 그 감정이 더 강했을지 모른다.
그 때의 영화와 지금 영화 사이의 간극 동안 나는 만남과 이별에 얼마나 많은 감정을 쏟았으며, 그것들로 나는 지금 어떠한 사람이 되었을까. 분명한 것은 저리도록 아팠던 것들은 이제 흐려져간다는 것이다. 가끔 그게 나를 잃는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그것도 억울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 그게 나이듦의 과정이라면. 10년 동안 미뤄둔 비포선셋을 봐도 좋을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