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멈추면

10. 잠시 멈춘 도시

by 이단단





오늘 하늘은 낮게 내려앉은 회색이었다. 바람이 한번 몸을 가로지르면 귀신 우는 소리가 났다. 가로등과 신호등이 길을 밝히고, 차들과 사람들은 각자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바빠 보였지만 나는 그 흐름에서 잠시 벗어나 서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고개를 들자 언덕 위 집들이 보였다. 창마다 켜진 불빛은 크지 않았지만 분명했다. 저 안에서는 저마다의 하루가 마무리되고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재미없고 딱히 잘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은 하루였지만, 이렇게 서서 바라본 도시가 전부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계속 달리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 멈춰 있어도 세상은 알아서 흘러간다는 것이 조금은 편안했다.

걷다가 멈추면, 오늘은 이 정도로 충분한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다시 움직이는 것은 다음 신호등이 켜질 때 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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