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멈추면

18. For you

by 이단단

요즘 나는 ‘어른’이라는 말에 자주 걸려 넘어진다.
어른답게 굴어야 한다는 말, 이제는 알 법도 하다는 말, 그 나이에 그러면 안 된다는 말들과 눈치들.

그 말들은 대부분 조언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삶의 속도를 재촉하는 채찍에 가깝다. 나는 아직도 사소한 장면들에 마음이 오래 머문다. 해가 조금 기울어진 골목, 나무 간판의 글씨, 하루를 마치고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는 상상 같은 것들. 누군가는 그런 걸 철없다고 부르겠지만, 나는 그게 내가 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방식이라는 걸 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감정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서두르지 않는다. 남들이 이미 지나간 것처럼 말하는 감정들 앞에서 나는 여전히 멈춰 서서 바라본다.


‘각자의 속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당신을 위해.’

걷다가 멈추어 본 미술관 전시에서 본 이 문장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위로라기보다는 허락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지금 이 속도여도 괜찮다고, 아직 다 자라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하지만 미완성이라는 말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고칠 수 있고, 더해질 수 있고, 무엇보다 아직 열려 있다는 뜻이니까. 오늘도 나는 나만의 속도로 하루를 건넌다. 조금 느리고, 조금 서툴지만 정직하게, 그리고 가능한 한 다정하게.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지는 않겠다.

다만, 나를 잃지 않는 어른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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