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멈추면

17. 도시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by 이단단


도시는 늘 먼저 다가오지 않았다. 나는 늘 한 발 뒤로 서서 불이 바뀌는 신호를 놓치고, 문이 닫힌 카페 유리창에 비친 얼굴을 보았다. 그럼에도 도시를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는 짝사랑했다.

도시는 늘 바빴고, 나는 늘 조용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흘러갔고, 나는 그 흐름 옆에서 멈춰 서 있는 쪽에 가까웠다. 지하철의 소음, 밤늦은 편의점의 형광등, 비 오는 날 젖은 보도블록 같은 것들이 나를 스쳤지만, 아무도 나를 붙잡지는 않았다. 그 무심함이 처음엔 서러웠다. 내가 투명해진 것 같아서. 그래서 더 애를 썼다.
도시가 좋아할 만한 사람이 되려고.
도시가 알아볼 만한 얼굴이 되려고.

바쁘게 걷고, 표정을 접고, 감정을 숨겼다. 하지만 도시는 여전히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짝사랑이 늘 그렇듯, 노력은 사랑으로 환원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도시를 좋아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도시가 만들어낸 외로움을 붙들고 있었다는 걸. 밤이 깊어질수록 선명해지는 고독,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라는 감각, 아무도 나를 부르지 않는 시간들. 그 감정이 이상하게도 나를 버티게 했다. 외로움은 나를 소외시키는 대신, 나를 나에게 데려다주었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 목적 없이 앉아 있어도 괜찮은 순간들. 도시를 향한 짝사랑은 끝났지만, 외로움은 남았다. 그리고 그건 생각보다 나쁜 연인이 아니었다.


이제 나는 도시를 사랑하지 않는다.

대신, 도시 안에 있는 나를 사랑한다. 불 꺼진 골목에서 나만의 리듬으로 걷는 법을 알게 되었고,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도시는 여전히 무심하지만, 외로움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나는 그걸 사랑하게 되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걷다가 멈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