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멈추면

지브리가 말하는 사랑법

by 이단단

지브리 영화에는 유난히 고백 장면이 적다.
사랑한다는 말 대신, 같이 걷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온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고, 옆에 서 있는 시간이 길다. 사랑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그런 장면들을 조용히 쌓아 올린다. 지브리에서 사랑은 말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거창한 약속도, 미래에 대한 설계도 없다. 다만 상대가 흔들릴 때 곁을 비우지 않는 사람들만 남아 있다. 그래서 그 사랑은 빠르지 않고,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하쿠가 치히로에게 해주는 건 대단한 구원이 아니다. 그는 단지 이름을 잊지 말라고 말한다. 이름을 기억하는 일, 그것이 곧 누군가를 잃지 않겠다는 태도처럼 보인다. 그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상대의 짐을 대신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며 스스로 그 짐을 지고 나아갈 수 있게 곁을 지키는 것.지브리의 사랑은 이런 사소한 장면에서 작동한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울은 멋있어서 사랑받는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엉망이고, 도망치고, 유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그 상태 그대로 곁에 남는다. 지브리는 사랑을 ‘완성’으로 그리지 않는다. 불완전한 채로 함께 있는 시간을 보여줄 뿐이다.


지브리 영화를 보면 사랑이 더 편하게 다가온다. 재촉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강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서로에게 진짜 모습을 깨워주는 것이 오랜 감동을 남긴다


영화가 말하는 사랑은 늘 조용하다. 보고 있을 때보다 끝난 뒤에 더 오래 남는다. 거창한 말 대신 오래도록 곁에 남는 사랑, 우리는 그런 순수한 영화들 속에서 사랑을 천천히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활발히 노동을 하고 걷다가 고요히 멈춘 시간 조용히 목을 축이며 영화를 보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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