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온실 속에서 숨 쉰 하루
연휴에 『지구 끝의 온실』을 다 읽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데, 손끝에 남은 온도가 묘하게 서늘하면서도 다정했다. 소설 속 더스트가 걷힌 세상처럼, 내 마음 한구석도 조금은 깨끗해진 기분이랄까. 결국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아주 작은 다정함이라는 말이 자꾸 맴돌았다.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책꽂이에서 『월든』을 꺼내 들었다. 이젠 숲이다. 멸망한 미래의 온실에서 19세기의 호숫가로 점프하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다. 소로는 숲으로 들어갔고, 나는 다시 출근하겠지만,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진짜 삶'을 찾고 있다는 공통점 하나는 쥐고 가기로 했다.
문득 예전 겨울에 보았던 그 나무가 생각났다. 잎을 다 떨군 앙상한 가지 끝에, 말도 안 되게 돋아나 있던 연두색 새싹 하나. "너 지금 나와도 괜찮니?" 물어보고 싶을 만큼 위태로워 보였지만, 그 녀석은 자기만의 속도로 겨울을 이겨내고 있었다.
어쩌면 내가 매일 일어나 글을 쓰겠다고 앉아 있는 꼴이 그 새싹을 닮았을지도 모르겠다. 대단한 성찰이 없으면 좀 어떤가. 와닿는 문장이 하나도 없으면 또 어때. 그냥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냈고, 책 한 권을 완독 했으며, 다시 새로운 페이지를 열 준비가 되었다는 것. 그게 오늘 내가 주운 가장 소중한 파편이다.
차차 '새벽의 온실'이라는 이름으로 일기를 써보려 한다. 모닝 페이지 겸, 나를 지키는 성찰일기 겸.
거창한 건 없다. 그냥 그날그날의 날씨와, 어제 있었던 사소한 일과, 읽다 만 책의 구절들을 적당히 버무려볼 생각이다.
겨울나무도 새싹을 틔우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 있나. 일단 써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