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글쓰기 시간
새 학기가 열리기 전이지만 수업은 시작되었다. 세 가지 전공필수 과목을 포함해 한 학기 19점을 취득해야 해서 열심히 교양 수업을 신청했는데 과목 중에는 글쓰기가 들어있다. 대학 생활을 새로 시작하며 배우게 될 글쓰기는 어떨까. 내가 오랫동안 잘 쓰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제일 쉽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마주하면 겁나는 글쓰기.
수업은 한 주마다 과목을 나눠 듣고 있다. 아무리 1학년 기초과목이라고 해도 몰아서 듣다가는 머리카락이 하얗게 쉬고 말 테니까.
오늘은 헌법의 기초와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방통대는 영상도 정속으로 봐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연습문제를 풀어야 수강완료된다. 오늘도 어김없이 눈이 빠지게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으로 지문을 읽는다. 여기서 틀린 문법은? , 화를 '돋구다'가 아니라 '돋우다.' '구설수와 구설' 임신부에겐 홀몸이 아니라 '홑몸'을 쓰는 거다.'재원'은 재주가 뛰어난 '젊은'여자를 지칭하는 말이며... 수많은 문법의 바다 사이에서 허우적대고 있는데 '틀리다'와 '다르다'의 경계가 피부로 다가왔다. 이미 수없이 마주한 문제였다. 정답이 정해진 문제에서 벗어난 것이 '틀림'이라면, 두 존재의 모양이나 색깔이 일치하지 않는 것은 '다름'이라고 했다. 100퍼센트 완료된 강의를 종료하며 생각했다.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다름'을 '틀림'으로 오해하며 스스로를 괴롭혔던가.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고 집에 돌아와 서촌에서 빌려온 안채윤의 <서촌의 기억>을 펼치고, 낡은 판잣집 같은 내 방구석의 책들을 정리하며 맴도는 다 어를 곱씹었다. 나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의 '다른'모습들이. 내가 '틀리다'라고 했던 모든 것들이.
그는 혹은 그녀는 나와 화법이 '다른' 것뿐이었다고.
방 안 가득 쌓인 책 박스들을 테이프로 봉인한다. 한때는 내 머릿속을 꽉 채웠던 정답 같은 문장들이 이제는 내일의 나와 '달라져' 박스 안으로 들어간다. 무거운 박스들은 문명에 맡겨 보내기로 했지만, 그중 유독 손때 묻은 다섯 권만은 따로 가방에 챙겨 넣었다.
이 다섯 권은 직접 들고 헌책방으로 향하려 한다. 이것은 비우기가 아니라 '배웅'이다. 내 삶의 한 궤적을 함께했던 파편들이 또 다른 누군가의 하꼬장에서 새로운 빛을 발하기를 바라는 마음.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인생의 파편을 줍는다. 그 모양이 남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혹은 내 계획과 어긋난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파편은 아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 다르게 생긴 조각들을 모아 저마다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중일뿐이다.
내일 아침, 나는 이 다섯 권의 배웅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신문을 펼칠 것이다. 그 속에 담긴 세상의 수많은 '다름'들을 이제는 '틀림'이라는 잣대 없이 읽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내일은 조사와 접속어를 배우는데 나는 이 연결을 또 어떻게 바라볼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