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기다림
살면서 가장 공평하면서도 가장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것이 '기다림'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는 시간이지만,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의 시계는 유독 느리게, 혹은 멈춘 것처럼 흐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기다림의 한복판에 서 있다. 내 삶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신호들. 휴대폰의 검은 화면을 들여다보며 나는 내 안의 수많은 파편을 줍는다. '왜 이렇게 됐을까'라는 자책과 '그래도 잘 될 거야'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뒤섞인 조각들이다.
간호사로서 병동을 지킬 때, 나는 환자들에게 기다림을 처방하곤 했다. "약효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세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금만 참으세요." 하지만 정작 내 삶에 닥친 기다림은 처방전도, 기한도 명확하지 않다. 방 안에서 이 침묵을 견디는 일은 어쩌면 병실의 밤을 지키는 것보다 더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이 기다림을 낭비하지 않기로 했다. 바라는 대로 오지 않는다고 해서 내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바라던 일의 시간표와 나의 시간표가 잠시 어긋나 있을 뿐이다. 기다림은 정체된 상태가 아니라, 다음 장을 맞이하기 위해 근육을 이완시키고 숨을 고르는 능동적인 과정이다.
오늘도 나는 휴대폰 대신 펜을 든다. 결과가 합격이든 불합격이든, 이 기다림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워 글자로 박아 넣는다. 나중에 이 시간을 돌아봤을 때, 단순히 '버틴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써 내려간 시간'으로 기억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