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멈추면 3

13.온 몸으로 겪어낸 이야기를

by 이단단

​1. 시선을 위로 올릴 때

고된 노동을 마치고 나오면 시선은 자꾸 바닥으로 떨어진다. 내 몸의 무게와 팔목에 새겨진 시퍼런 흔적들이 자꾸만 나를 중력 아래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그때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파란 하늘을 날카롭게 가르는 하얀 선 하나. 어딘가로 향하는 비행기구름이었다. 저 구름을 만드는 이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움직이고 있겠지. 그 선 하나에 내 서러움을 잠시 실어 보냈다. 높은 곳의 공기는 이토록 맑은데, 지상의 나는 왜 이리도 무거운가 생각하면서. 그렇지만 이 경험이 앞으로 쓸 글에 무게와 진실성을 더해줄 것을 믿는다. 적어도 경험한 것에 대해 쓰면 잘 쓰겠지. 언제나 생각이 많아 머리가 주로 움직이지만 이제는 글 쓰려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겪어낸 삶이, 직접 체험한 인생 이야기가 필요한 나였으니까. 좋은 책들을 읽고 나도 부쩍 끓어오르며 내 삶을 살아가고 싶어 지니까. 그래서 언제나 이야기 곁에, 글 곁에 지내고 싶어서.

​2. 비워진 자리에 새겨진 문장

무거운 책들을 비워내고 돌아오는 길, 길가 벤치에 적힌 문구 하나가 발길을 잡았다. "오늘 첫출발인가요?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지금의 마음을 잘 기억해 두세요." 아이러니했다. 나는 오늘 하루를 다 소진하고 녹초가 되어 돌아가는 길인데, 의자는 멍하게 버스를 기다리는 나에게 '첫출발'이냐고 묻는다. 하지만 가만히 곱씹어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낡은 파편들을 팔아 치우고, 그것으로 미래를 투자하는 새 교과서를 주문하고, 내일을 살 식량을 마련한 지금. 나는 분명 어제의 나를 비워내고 새로운 시작점에 서 있었다. 이건 분명히 온몸으로 겪어낸 내 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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