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가 멈추면 3

14. 잠시나마 파편을 나눈 시간

by 이단단

오늘 내 발길이 닿은 곳은 남산이었다. 소음들을 잠시 뒤로하고 오른 그곳은, 도심의 소란을 발아래 두고 제법 고요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산의 어느 카페,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배경 삼아 독서모임이 시작되었다. 오늘 처음 만난 멤버들에게 위화의 소설 『인생』을 소개했다. 주인공 푸구이가 겪어낸 그 모진 세월들. 가족을 하나둘 떠나보내고 결국 늙은 소 한 마리와 남겨진 그의 삶을 보며, 조금씩 내 삶의 파편들을 테이블 위에 잠깐 꺼내 놓았다.


​소설 속 푸구이는 비록 모진 세월을 겪고 나서야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나는 그 덕분에 조금 더 빨리 배울 수 있었다.

오늘 내가 남산을 오르며 느낀 가쁜 숨도, 내리막길을 따라 숭례문까지 걸어갔던 걸음도 결국은 그저 '살아있음' 그 자체를 증명하는 과정이 아닐까.
​책장을 덮고 다음 걸음을 위해 카페를 나설 때, 남산의 공기는 조금 더 봄에 가까워져 있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은 위화가 던진 투박한 위로로 채워진 기분이었다. 거창한 의미를 찾지 않아도 좋다. 그저 오늘처럼 걷고, 좋은 사람들과 문장을 나누고, 돌아와 이렇게 글 한 편을 남길 수 있다면, 그리고 새로운 지식을 배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인생'이다. 그래서 감사하다.
​오늘도 나는 내 삶의 흩어진 파편 하나를 소중히 주워 담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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