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밤 습관
밤에는 생각보다 몸이 먼저 잠들 준비를 한다.
커피를 마신 뒤라 머리는 조금 또렷한데, 눈은 자꾸 감기고 손발은 이상하게 차다. 삼각김밥 하나 먹었을 뿐인데 위는 괜히 묵직하고, 별일도 아닌데 마음은 약간 예민해진다. 이런 밤이 있다. 특별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밤.
낮에는 꽤 많은 일을 했다. 책을 읽었고, 진도를 나갔고 끊임없이 사소한 숫자 계산들을 했다. 앞으로의 시간을 조금씩 상상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밤이 되면 그 모든 일들이 갑자기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밤이 되면 생각이 아니라 감각으로 하루를 정리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냥 책을 조금 더 읽기로 했다. 한강의 소설을 천천히 넘기다가 문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잠이 오면 그대로 책을 덮을 생각이다. 오늘은 많이 정리하지 않아도 괜찮다. 무언가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날들은 그렇게 끝난다.
특별한 사건 없이, 조용히.내일의 일을 위해 오늘만 생각할 것.
그리고 그런 밤들이 모여서, 다음 날의 나를 조금 덜 예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