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류하고, 분류되어 살아간다

by 희재

취향에 대해 글을 쓰기로 했는데 글을 쓸수록 취향을 더 알기 힘들어졌다. 무작정 교보문고에서 아무튼 시리즈 중 내가 관심 있을만한 주제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튼 떡볶이, 아무튼 술, 아무튼 문구, 아무튼 사전, 아무튼 메모, 아무튼 딱따구리 등 어떤 책을 고를지 훑어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취향이 확실한 사람이 많은데 굳이 나까지 취향이 확실할 필요가 있을까?'


취향을 찾는 건 내게 이력서에 취미와 특기란 앞에 머뭇거리며 고민을 하는 것과 같았다. SNS에서 녹차라테만 주문하는 손님이 매장 밖에서 걸어오는 게 보이면 주문하기도 전에 제조하기 시작한다는 에피소드는 매일 그날의 날씨와 기분에 따라 마시는 종류가 달라지는 내게는 재밌는 이야기일 뿐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세상에서 '무색무취'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오랜 시간 나만의 것을 찾으며 살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편의점 음식이 연예인이 방송해서 새로운 조합이라며 소개하면 OO정식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나만 아는 장소, 음식, 브랜드, 아티스트, 취미 등 많은 것들 앞에 우리는 '나만 안다'는 의미를 부여할 때가 있다. 나만 아는 것을 소개하기도 하고, 감추기도 하면서 나만 아는 것이 곧 나의 취향이 된다.


"그 카페 좋아하시나 봐요?"


퇴근 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여러 조건이 맞아서 한 카페를 자주 이용하고 있는데 '좋아한다'는 질문에 '그렇다' 또는 '아니다' 양자택일형 대답을 하고서 생각에 잠긴다.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누군가는 여러 조건 중 하나만 해당되어도 좋을 수 있고 또는 모든 조건이 해당되어야 좋은 사람도 있는데 대개 사람들은 '좋다'라는 것을 '그것을 제일 좋아한다'라고 받아들일 때가 많다.


스타벅스는 언제, 어디서든 방문하기 편하지만 유독 쾌적한 집 근처 매장을 좋아한다. 개인 일정 보기 좋은 그 카페는 핫플레이스 답지 않게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혼자 편하게 방문할 수 있어서 좋아하지만 원두를 사지는 않는다. 정세랑 작가의 지구에서 한아뿐을 읽고 또 읽었지만 그 책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독립서점마다 다른 큐레이션의 매력에 책을 구입하기도 하지만 인접한 교보문고에서 자주 산다. 나는 어느 포인트가 좋아서 좋아했을 뿐, 좋아하는 것의 모든 부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나의 취향을 찾기 위한 여정은 여기서 마치기로 했다. 제일 좋아해서 취향인 게 아니라 그저 회사 근처에 있어서 자주 가게 되면 그곳이 단골 카페가 되고, 인터넷 쇼핑몰에는 '올드머니룩'이라는 타이틀을 만들어서 판매하지만 30대인 나는 무엇을 입든 올드머니룩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사과 그림을 보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MBTI 유형을 나누는 여러 예시 중 사과 그림을 보고 백설공주, 뉴턴, 아이폰 등을 대답하는 경우 직관형(N)에 해당되고, 빨갛고 맛있다는 대답을 하는 경우 감각형(S)에 해당된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만 생각되는가?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봄이 다가오면서 사과를 보고 신선한 재료의 식감을 떠올릴 수 있고, 아이폰 유저라 자연스럽게 아이폰이 떠오를 수도 있지 않을까?


사료를 다 먹은 고양이에게 "물 마셔야지"라고 말하면 바로 옆에 놓인 물그릇의 물을 마실 때가 있고, 어느 날은 물그릇 대신 화장실로 향하는 우리 집 고양이처럼 그때, 그때 바뀔 수 있는 건데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취향이라고 하는 건 어느 사물에만 있거나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고유한 것에 한정해서 정의하고 있는 건 아닐까?


우리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 계절과 주기에 빗대고는 한다. 어쩌면 취향이라는 것도 나를 분류해서 정의하느라 이제 내 취향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을 놓지 못해서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시기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고유한 나만의 취향이 없어서 취향 방랑자였던 나는 좋아했다가 아닐 수도 있고, 안 좋아했다가 좋아질 수도 있는 삶의 흐름에 나를 맡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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