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요가생활 Oct 31. 2019

일상 요가 생활 - 내가 좋아하는 것

감정의 기만


평일 하루 반의 틈이 생겼다. 가을로 스며드는 계절은 나에게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고 속삭이고 있었고 혼자 여행을 한 지도 꽤 오래되었으므로 어디든 나서보자 결심했다. 떠나기 전날 밤, 어느 작가가 SNS에 남해의 한 게스트하우스를 추천했던 것이 생각나 그곳으로 예약했다. 숙소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오전 수업을 하나 마친 후 전날 사놓은 빵과 큰 보온병에 가득 채워온 보이차를 마시며 남쪽으로 차를 몰았다. 날씨가 완전히 화창하지는 않았지만 한낮의 햇볕은 따뜻했다. 한두 군데 휴게소를 거친 후 첫 목적지인 구례에 도착했다. 구례에서부터 섬진강을 따라 국도를 통해 남해로 들어갈 작정이었다. 지리산을 오를 것도 아니므로 특별히 할 것은 없고 한 번 가봐야지 싶었던 구례의 한 빵집에 들러 커피와 빵을 먹었다. 유명한 빵집이라 평일임에도 빵이 쑥-빠져있었지만 운 좋게도 두 가지 빵을 맛볼 수 있었다(조금 늦은 사람들은 빵이 모두 떨어져서 한 시간 가량 다음 빵을 기다려야 했다). 거친 빵을 꼭꼭 씹었다. 하드 계열 빵의 향긋함과 고소함이 가득 퍼졌다. 남편이 함께였다면 분명 또 빵을 먹는다고 불평을 했겠지만(남편이 좋아하는 종류의 빵도 아니었고) 나는 빵으로 세 끼를 다 때울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므로 전혀 상관하지 않고 점심인지 간식인지 모를 끼니를 챙겼다.


남은 빵을 포장해서 잠시 동네를 걷다 남해로 향했다. 오른쪽으로 섬진강이 보였고 가로수 그늘 사이로 햇빛이 어른거렸다. 차도 많지 않아 오른쪽 창을 활짝 열어 바람이 들어오도록 두고 틈틈이 창 밖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운전했다. 바람이 차지 않아 좋았다. 운전을 하면서 이렇게 평화로워보기도 오랜만인 듯했다. 운전에 스트레스를 많이 느끼지 않는 편이긴 하지만 특별히 드라이브를 즐기지는 않았다. 보통 혼자 운전을 할 때는 일을 하러 가는 등 목적이 있어 시간을 맞춰가야 하거나, 일을 마치고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에 앞만 보고 달렸다. 남편과 번갈아 운전할 때는 피곤하지 않을 때에도 옆자리에 퍼질러 앉아있는 남편이 보기 싫은 못된 마음이 일어 시간 맞춰 재깍 교대를 요구한다. 보조석에 앉으면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이나 라디오를 듣지 못하니(소음에 민감한 운전자 배려), 혼자 여유를 즐기는 것과는 또 달랐다. 창밖의 풍경도 도로 상황도 차 안의 환경도 내 마음도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남해 초입에 있는 사람들이 그다지 찾지 않는 듯한 공원에 잠시 들렀다 이번엔 바다를 우측에 끼고 먼 길을 돌아 숙소를 향해 갔다. 가는 동안 해가 점점 내려가는 것이 보여 숙소에서 석양을 보지 못할까 봐 초조했었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석양이 잘 보이는 쪽은 아니었더라. 무엇을 착각했던 것일까? 어쨌든 하늘이 좀 흐리기도 하고 석양이 좋은 날도 아녔어서 그냥 가는 길을 더 느긋하게 즐길걸 그랬다 싶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순간에도 지는 해가 닿은 모든 색은 애틋하고 아름다웠다.




새삼스레 내가 어떤 순간에 행복감을 느끼는지 발견한 날이었다. 그리고 사실 내가 애 먼 곳에 집착을 부리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홀로 세상의 모든 것을 접해보는 것은 불가하니 무엇을 선택할 때 다른 사람들의 생활이나 생각을 많이 참고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사회의 통념보다는 나와 결이 맞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의 삶을 참고로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자주 찾아봤었는데, 어느 순간 진짜 내 감정보다는 그들이 가진 그저 보기 좋아보는 것을 나도 함께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 믿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당연히 사람은 사회에서 다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고 나도 조금씩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주체적으로 내가 추구하는 것으로 소화한 것과 그저 멋있어 보여 남을 따라가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후자에 집착하게 되는 경우, 심지어는 내 감정까지 기만하게 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나름대로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라 자부하는 나이지만, 내가 동경하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 새에 좀 달라지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잘 모르는 것에 분노하고 잘 모르면서 기뻐한다. 익숙하지 않은 것을 즐겨보려 하는 것에는 당연히 에너지가 들어간다. 어느 정도의 진입장벽을 넘겨야 참 맛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속이며 여전히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즐거워하려 노력하고 있던 순간이 있었다. 즉각적으로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이 있지만 그 상황을 직접 눈 앞에 목도한 것이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 서술되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다 화를 내니 잘 알지 못함에 불구하고 열을 올렸던 경험이 있다. 나는 이런 것을 즐기고 이런 것에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내가 만들어놓은 에고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요가에서는 내가 하는 생각,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나’라는 사람이라 여기는 에고(ego)를 주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참 나’는 그 뒤에서 변화무쌍한 하물며 스스로를 속이기 도하는 에고를 그저 바라보고 있다.


‘참 나’라는 존재가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에고를 차분히 관찰하다 적어도 자기기만을 하는 순간에는 좀 신호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그래? 진짜 그렇게 느끼니?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 요가 생활 - 일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