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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a Sep 17. 2019

네가 왜 여기 있느냐

day6. 무엇 때문에 이 먼 곳에 왔을까


 거길 왜 가니?


 아이슬란드에 가겠다고 했을 때 뒤따라 온 부모님의 질문은 어쩌면 자연스러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덜컥 유럽으로 혼자 여행을 떠날 때도 “소매치기들이 전기충격기도 들이댄대” 등 각종 괴담들을 늘어놓으시다 그것조차 안 통하자 '여자 혼자 어디 그 먼 데를' 이라며 호통을 치셨다. 당연히 차 없는 여자 셋이 아이슬란드 반도를 렌터카로 운전해 다닌다는 사실은 부모님의 혈관 건강에 해가 될까 보태지 않았다. 부모님 세대에게는 흔히 있을 수 없었던 일이니 걱정은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부모님의 또 다른 우려가 후리가케처럼 얹히기 시작했다. '싱글녀들끼리 좋은 걸 보러 다닐수록, 똑똑할수록 결혼 못한다'는 명제는 영험한 부적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런데 그만 다니고 결혼할 생각을 해."라며 엄마는 아이슬란드를 결혼의 걸림돌로 응수했다.


 혼자 살면 늦어진대.

 어느 날 자취한 지 5년이 넘어가는 내게 엄마는 말했었다. 삼십 대 딸을 둔 엄마 친구들의 해석인데 딸이 자취하기 시작하면 독립생활이 너무 편해 결혼을 기피한다는 게 변이었다. 그렇다면 "결혼하면 삶이 조금 더 불편해지는 것이 기정사실이겠군요."라고 쏘아주고 싶지만 "그럼요. 자취하니 세상 편해."이젠 주특기가 된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대화를 넘긴다. "눈이 높나 봐요. 주변에 좋은 사람 없나." 서른 중반의 여성이 미혼이라면 이성친구가 없을 것이라고 가정해버리는 시선도 익숙하다. 엇비슷한 커리어를 가진 미혼의 남자들에겐 "여자친구 있어요?"를 먼저 묻지만, 나에게는 칭찬을 빙자한 안타까움이 섞인 말이 처음엔 이상했다. 거기에 대고 "저 남자친구 있는데요?"로 응수하면 유치해져 버리는 것 같아 싱겁게 웃고 대화를 돌리는 스킬만 늘어있었다. 친한 후배의 결혼 선물로 와인을 샀더니 이를 본 회사 상사가 "친한 후배가 결혼하니 약이 올라 병나발을 부는거냐"며 순식간에 '여적여'를 만들어버리는 농담에도, 토론을 잘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학급 대표로 웅변대회에 나갈 때 제 일처럼 기뻐했던 분들이 "따박따박 말대답하고 기가 너무 세서 결혼이 어려운거야"로 생각하실 때, 그들에게 따져 묻는 대신 침묵을 택하게 되었다. 어쩌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예민함보다는 아묻따 무던하게 사는게 평온한 멘탈을 유지하는 데 이로울 지 모른다.


 하지만 매일 아침 두 번씩 갈아타던 지하철 환승 구간에서 무표정한 병정같이 일터로 향하던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일상이 첩첩 쌓여갈 때 한 걸음 올라설 변화가 필요한 것 같은데 멈춰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밥벌이를 하고 있음에도 이대로 인생이 아무것도 아닌 채로 끝날 것 같은 초조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각자 삶에 맞는 개별적인 방식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까운 친구들이 모두 결혼하여 자녀들에게 흠뻑 빠져있음을 보며 다수의 철로를 따르지 않아도 괜찮은 걸까 불안감이 엄습할 때쯤, 걱정을 가장한 주변의 지나가는 말들은 속수무책으로 마음으로 침투해온다. 그때 나는 일상을 영위하기 위한, 내가 향유하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기 위한 방식으로 멀리 떠난다.



식상하지만 빠질 수 없는 점프샷(좌), 맑은 해가 비춘 요쿨살롱의 빙하(우)

 이렇게 떠난 아이슬란드도 벌써 후반부에 달했다. 오늘은 스톡스네스를 거점으로 찍고, 우리가 왔던 길을 역행하여 레이캬비크로 돌아가는 코스다. 그동안 찍었던 여행지들을 역순으로 하나둘씩 곱씹는 여정이었다. 기억을 새기는 데 있어서 복습의 중요성은 다들 익히 알고 있는 듯, 아 우리 이런 걸 봤었지! 여긴 다시 보니까 더 좋아! 라며 차창 밖 풍경들에 화답했다. 푸른 빙하가 뉘엿뉘엿 떠내려오는 요쿨살롱도 어제의 조금 흐린 버전, 오늘의 맑은 햇살 버전으로 두 번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스톡스네스-요쿨살롱까지 보니 슬슬 2시가 넘어간다. 배꼽시계는 정확했고 우리의 사랑스러운 도시락을 꺼낼 차례였다. 차창밖을 살피며 먹을만한 벤치를 찾아야 했다. 그때 sunnyi가 "아 거기에 벤치가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기억을 더듬었고, 기억은 적중했다. 스카프타펠 앞에 빙하로 부서진 다리를 모셔놓은 곳에 벤치가 있었다. 올레! 밥을 먹기는 아까운 명당이었지만 그래서 더욱 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쩐지 어제 아침 이 곳에서 Queen 노래로 텐션이 하이로 솟구쳤을 때, 우리는 이미 이 곳을 운명처럼 한번 더 머물 것임을 직감했었던 것이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풍경도 일급 캐비어급 반찬이 되었다. 빙하 설원을 병풍으로 두고 먹는 한식은 꿀맛, 신선의 맛 그 자체였다. 햇반 반공기면 충분해요 란 말은 쏙 들어가고 한 공기가 이거밖에 안되었나 싶어 마지막 한 톨까지 슥슥 긁어먹었다.


이런 명당에서 밥을 먹어도 될만큼 좋은 사람이었을까를 고민했던 순간


 여행지에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던 대나무 숲의 밀고자처럼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곤 한다. 이 날이 그랬다. 여행도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천상의 배경에서 먹은 점심도 흡족하고, 왠지 모르게 풍요로워진 마음에 나는 봉인해제되어 있었다. 성인이 되어 만난 사람들하고는 절대 공유하지 않는 이불 킥하는 내밀한 기억들을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더군다나 인생에서 만난 멍멍이 선수들에 대한 에피소드 전모를 꺼내기 시작한 데는 둘의 물개 박수급 피드백 능력이 한몫했는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민망할까 봐 하나둘씩 자신들의 숨겨놓은 이야기를 꺼내놓는, 누가 더 일류 멍멍이 선수를 만났는지 대결 구도를 보여주는 이 착한 사람들. 천국 갈 거예요.

차 안에서 고백 타임을 하다 보니 이 광활한 자연에서도 교통량이 늘어있었고 이는 레이캬비크 근교에 이르렀음을 증명해주는 증표였다.



 나는 조금 멀리서 보면 남들과 다를 것 없는 모범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세상 사람들이 좋다는 것엔 반기를 드는 반항아적 기질이 있는 별스러운 사람이었다. 대학교 졸업식은 형식적 의례가 가득한 학교 부심 같다며 참석하지 않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사람을 은밀히 싫어하며, 인구 오천만 국가에서 천만 관객을 찍는 영화는 파시즘의 전조라 생각하며 보지 않는다. 누군가가 당연하다고 말하면 '왜'를 달고 사는 피곤한 사람이다. 하지만 어릴 때는 일정 정도의 학급성적이 나오고 기본 규율을 지키면, 선생님과 부모님이 크게 간섭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공부는 이 나라에서 '뭣이 중헌 것'으로 취급되는지 간파한 어린아이가 택한 방식이었다. 그런 모범생의 관성은 혈중에 남는 것인지 커서도 그 굴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리먼 브러더스의 취업난을 겨우 뚫고 들어간 직장에선 3년 주기로 사표를 들고 인사팀 문턱까지 가봤지만, 어느새 책임 직급을 단 십 년을 꽉 채운 근속자가 되어있었다. 사회생활에 무난하게 적정선을 유지하는 노하우들을 조금씩 깨쳐가고 있었으며 내 일을 조금은 사랑하게 되었다.


이 찬란한 보라색 꽃의 향연도 실화

 

 성경 창세기 구절을 빌려 “네가 왜 여기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경이로운 푸른 하늘과 지천에 핀 꽃들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지금 들이마시는 공기의 천연함에 대해서, 모든 들숨, 날숨으로 내가 가진 것을 사랑하기 위해서라고 대외적으로 멋있게 말한 다음,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냥 밥 먹으러 왔어요


 여자 셋이 대단한 거 하려고, 휴가에 남는 시간이 많아서 이토록 멀리 온 것이 아니고. 좋은 거 보고 밥 먹고 힘내서 살아가려고 왔다고 말이다. 걱정이 많으신 여느 부모님들에게도, 인생에서 당연한 것들을 확신하며 무심히 말하는 사람들에게도 우리들은 지금 어떤 시기보다 행복하다고.

 어떻게든 제 힘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올바른 태도에 관해 생각하며 나도 누군가에게는 개xx가 될 수도 있지는 않을까 작은 말, 작은 행동 하나도 고민하며 사는.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내가 좋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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