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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다인 Jul 16. 2021

나와 '나'의 갈매나무

백석,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 방'을 읽고

 “시는 편지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그러나’를 기준으로 시상이 전환되고, 쉼표의 반복으로 운율을 형성하고 있으며...” 나에게 있어 모든 시는 정답이었어야 했다. 책에 적힌 몇 줄의 글을 그대로 머릿속에 집어넣어 마치 시인보다 시를 잘 안다는 듯이, 내가 이 시를 모두 통달하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교과서에 적혀 있는 주제와 시의 특징을 그대로 읽고 5개의 선지에 쏟아내는 것, 그것이 나의 시 감상 방법이었다. 시 하나당 10분 이상의 시간을 쓰지 않았고, 주제와 비유법만 파악하면 바로 다음 시로 넘어갔다. 그러면서 남들보다 많은 시를 알고 있다고 자부했으며, 올라가는 점수에 ‘시는 이렇게 쉬운거야.’라며 단언했다. 그러나 내가 한 것은 시의 감상이 아니라 시를 감독하는 것뿐이었다는 걸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통해 깨달았다. 이 시는 나에게 있어 시를 감상하게 해 준 첫 번째 작품이며, 나의 인생을 투영한 첫 번째 시이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을 처음 접했을 때는 역시나 수업시간이었다. 시험에 어렵게 낸다는 말에 수업에 집중해야 했고, 한눈에 봐도 압도되는 길이에 이건 또 언제 공부하냐는 걱정이 앞섰다. 시인의 이야기나 화자의 삶은 뒷전이었다. 나에게는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것보다 당장 내 앞에 놓여있는 시험 문제 몇 개가 중요했다. 역시나 이날도 수많은 정보가 내 눈과 귀를 맴돌았다. 화자의 슬픔과 외로움을 선생님이 말하는 몇 자로 정리했고, 화자가 자신의 삶을 극복하는 그 극적인 순간을 시상의 전환, 정확히 다섯 글자 안에 가뒀다. 그리고 얼마 뒤 시험을 치렀으며, 그렇게 시와의 첫 만남은 마무리되었다. 이 시가 다시 떠올랐던 순간은 입시에 실패했을 때, 그러니까 재수할 때였다. 인생 첫 가장 차디찬 실패를 맛본 나는 가장 유명하다던 재수 학원에 등록했다. 80명의 학생이 한 교실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닭장 같다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할, 그런 학원이었다. 그 넓은 학원과 교실에서 온전한 내 공간은 1평도 되지 않는 작은 책상과 의자의 공간뿐이었다. 그마저도 온전하게 보장되지는 못했다. 한 달, 많으면 2주마다 자리를 바꿨으며, 나의 공간과 익숙해질 때쯤 또 다른 0.5평짜리 공간이 내 임시 거처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나는 학원 근처 학사에서 내 생활을 시작했으며, 학사 는 2, 3평 남짓 되는 공간에 책상과 침대, 화장실이 테트리스마냥 끼워 맞춰진 곳이었다. 아침 일찍 학사에서 나가 학원에 출근하고, 늦은 저녁이 되면 다시 학사에 출근하는, 쉼이 없는 하루의 연속이었다. 학사에 들어오면 나의 늦은 것 같은 미래에 대한 걱정을 뒤로 한 채 잠을 청해야 했다.


 학사 침대에 누워있었던 여느 날 중 하루였다. 문득 하늘이 보고 싶어 조그마한 창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나를 맞이했다. 하늘을 보지는 못했다. 창문이 너무 작아 하늘까지는 보여주지 못했으므로. 하늘을 포기하고 침대에 누워 하얀 벽지를 보고 있자니 시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구절을 마음속으로 읊조리자 갑자기 서글퍼졌다. 나는 지금 갈매나무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목수네 집 헌 삿을 깔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그래서 시의 ‘나’와 함께 나의 슬픔이며 어리석음을 되새김질해 보았다. ‘나’가 고개를 들기 전 했던 행동을 따라 하면 나도 고개를 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학원의 강의와 함께 재수하는 친구와의 무의미한 한탄과 걱정을 되새김질했다. 사실, 한탄과 걱정의 내용은 매일 비슷하다. 대학에 붙을 수는 있을지, 대학에 붙는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남들보다 조금 늦는 건 아닌지와 같은 그런 것들. 답이 나오지 않는 무수한 고민을 하고 있자면 어느새 시의 ‘나’ 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너는 어떻게 고개를 들 수 있었냐고, 나의 갈매나무는 무엇일지 좀 가르쳐 달라고.’ 항상 그의 답은 똑같았다. 슬픔이 반복되면 무뎌지고, 그러다 보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삐딱하게 봤던 그 당시 나에게 이 대답은 나의 슬픔과 고민을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렸고, 묘하게 생긴 반항심에 나는 이것들을 모두 지고도 나의 갈매나무를 찾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반항심도 잠시, 속절없이 울리는 알림 소리에 나는 나의 슬픔을 지고 갈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하늘을 보고자 했으나 천장만 바라봤던 그 하루의 생각은 조금 신선했던 경험으로 남겨졌을 뿐, 슬픔을 지고서도 고민이 해결되는 극적인 순간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도 기억 속으로 사라져갔다.


 입시를 모두 끝내고 대학에 입학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 시를 다시 떠올리는 일은 없었다. 재수의 경험이 있는 다른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그 당시 경험이 나의 마음을 치고 간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도 어느새 시의 ‘나’처럼 그 당시 어지러움이 나를 치고 가더라도 나는 이제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습한 방으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해했다. 슬픔과 한탄이 앙금이 되어 가라앉는 것은 나의 고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을 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갈매나무는 내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항상 내 옆에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재수하던 시절 나의 갈매나무는 무엇이었을까. 재수를 모두 마치고 되돌아봤을 때야 비로소 나의 갈매나무를 찾을 수 있었다. 우수한 대학을 입학하는 것이 나의 슬픔에서 벗어날 유일한 해결 방안이라 생각했었는데, 대학에 온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입학은 나의 갈매나무가 아니었다. 대학 입학이라는 사실 하나는 나의 슬픔을 앙금으로 만들어 줄 하나의 도구일 뿐이며, 내 옆에 있었던 갈매나무는 그런 도구 하나가 아니었다. 대신 그 당시 생각했던 무수한 고민이 나의 갈매나무였다. 내 순간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며 서글퍼했던 그 무수한 순간들이 나를 버티게 해 준 유일한 갈매나무였다. 그리고 이 고민을 하던 그 하루는 이 시의 ‘그러나’가 아니었을까. 나는 나의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던 그 순간이 나의 고개를 들었던 순간이며, 하늘이 아니라 내 눈앞에 펼쳐져 있던 하얀 천장이 시의 ‘나’의 것과 같은 것임을 알았다.


 모순적이게도 지금 나에게 갈매나무는 재수 때의 생각들이다. 수많은 과제와 시험에 내던져져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마음껏 할 수 있었던 내 0.5평이 좀 더 나은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말이다. 그 당시 했던 나의 고민은 모두 찬란했으며, 하늘을 보지 못해 시를 떠올리는 낭만적인 순간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의 상황은 불안정했어도 목표와 꿈이 안정적이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이 지금까지 나의 자산이 되고 있다. 남들보다 늦게 가는 대신 오래 볼 수 있었고, 나를 더 되돌아볼 수 있었으며, 슬픔의 층위를 내리는 것이 포기가 아니라는 가장 값진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만의 갈매나무를 찾았다는 것은 매우 신나는 일이다.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의 ‘나’도 갈매나무를 떠올릴 때마다 나와 같은 감정을 느낄까. 무엇보다 나에게 갈매나무를 찾아준 ‘나’의 갈매나무는 무엇이었을까 물어보지 못한 게 아쉽다. 그러나 이미 내가 ‘나’가 된 지금, ‘나’의 갈매나무도 나와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만 하고 있다. 수많은 고민을 끝마치고 누군가에게 담담히 써 내려가는 그 편지 자체가 그의 갈매나무가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갈 만큼 단단해지지는 않았다. 나를 치고 오는 무수한 생각들에 나는 아직 흔들리고, 슬퍼할 때면 다시 그 습한 공간으로 들어가 뜻 없는 글자들을 나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 위에 하얀 천장이 있다는 사실을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고 있으며, 내가 고개만 든다면 하얀 천장이 위에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다.



그리고 바란다.

이 시를 읽은 모두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담히 편지로 남길 수 있을 만큼 흔들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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