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사자와 풍등

by 시월

“망자는 어서 나와 신의 부름을 받으시오.” 도로의 한복판, 부서진 차와 뭉게뭉게 피어나는 연기 사이로 검은색 양복을 빼입은 사자가 말했다. 어딘가 무심한 표정, 억양없는 말투로 그는 방금 교통사고로 사망한 한 남성의 이름을 부를 준비를 했다. “황선우, 황선우... 황선우.” 이상했다. 원래 같으면 자신의 앞으로 홀린 듯 와야 하는데, 그는 여전히 회색빛 연기 속에 앉아 있었다. 다시 한 번 이름을 세 차례 불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거 제 진짜 이름 아니어서 그래요.” 어느새 육체와의 분리가 끝난 선우의 영혼이 사자의 곁으로 다가왔다. “저 어릴 때 엄마가 해외로 입양 보내셨거든요. 그래서 원래 한국 이름이 뭐였는지 몰라요. 선우는 그냥 임시로 지은 이름이에요.” 선우의 사정은 딱했지만, 사자의 입장에서는 낭패였다. 안 그래도 시간 없어 죽겠는데, 이승에 떠도는 망자를 하나 더 만들 수는 없었다. 최대한 떠오는 이들의 영혼이 없도록 할 것. 그것이 사자의 첫 번째 원칙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우의 이름을 알 도리도 없었다. 여기는 주민 행정센터가 아니니까. “그럼, 제 이름 찾으러 가지 않으실래요?” 사자의 침묵이 길어지자 선우는 말했다. 원래 한국에 있는 친부모를 찾으러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으니, 죽었더라도 얼굴이나 한 번 보자는 심정이었다. 더욱이, 저승사자라면 나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도 내심 들었다. 사자도 딱히 방법이 없었기에, 둘은 선우의 진짜 이름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친부모를 찾기에 선우의 기억은 흐렸다. ‘집 밖에 호수가 있었던가, 장터가 있었던가’ 하는 식이었다. 5살 즈음에 입양됐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빨리 뭐라도 생각해보라는 사자의 말에 선우는 망자의 이름도 모르는 사자가 말이 많다며 되려 짜증을 냈다. 그러던 와중, 선우가 소리쳤다. “아! 정확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어요.” 선우는 매년 생일, 가족들과 함께 집 앞에 열리는 풍등 행사에 갔다고 했다. 생일과 행사의 일자가 매년 비슷하게 겹쳤다며, 풍등에 소원을 적어 하늘로 보냈다고 말했다. “풍등 행사가 남아있는 곳은 몇 군데 없기는 한데...” 이미 그런 전통 행사들이 사라지기 시작한지 오래였지만, 사자는 기억을 더듬어 한 지역을 생각해냈다. 아직까지 풍등을 날리고 있는 곳, 주거 지역 근처에 큰 호수가 있는 곳. 선우와 사자는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마침 선우의 생일 즈음이었기에, 그곳은 행사 준비로 분주해 보였다. 형형색색의 풍등을 지나치며, 사자는 선우에게 물었다. 매년 생일마다 행사에 올 정도면 살이가 퍽 좋았던 것 같은데, 입양을 가게 된 이유가 있냐고. “그땐 다 그랬죠, 뭐.” 툭 던지듯 시작한 선우의 이야기는 잔혹했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려던 그날, 선우는 잠시 엄마의 손을 놓았고 엄마는 잠시 눈을 놓았다. 떠돌아다니는 선우에게 한 기관의 젊은 직원이 다가갔고, 그렇게 팔리듯 해외로 가게 되었다며 선우는 담담히 말했다.


선우의 이야기가 끝날 즈음, 선우와 사자는 한 주택가에 들어섰다. 둘의 시선에 한 풍등이 보였다. 텅 빈 창문에 쓸쓸히 흔들리고 있는 풍등이었다. 선우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사자도, 그런 선우를 바라보며 선우의 이름을 부를 준비를 했다. 풍등이 간절히 빌고 있는 선우의 진짜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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