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러 갔다. 친구가 먼저 가본 뒤에 너무 좋았다고 추천해 줘서 같이 가게 됐다. 대학로 골목 속 인스타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가게들을 지나, 안내판을 보지 못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구석에 있는 카페였다. 사실 다도 카페라 하면 우드 톤의 따뜻한 감성을 생각하고는 했는데 우리가 간 곳은 화이트톤의 가정집을 리모델링한 작은 카페여서 조금 의외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조그마한 찻잔들과 한자가 적혀 있는 찻잎들이 누가 봐도 이곳이 찻집임을 알리고 있었다.
사장님이 안내해 주신 자리에 앉아보니 차를 마시는데 필요한 여러 물품들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찻잎을 걸러내는 것부터 물을 버리는 통, 물을 끓이는 전기포트까지. 사실 엄마가 한동안 보이차에 빠지면서 집에 있었던 물건들인데도 여기에서 보니까.. 뭔가 신기했다. 집에 있을 땐 관심도 없었던 물건들이었는데 말이다. 어쨌든 새롭게, 다시? 보게 된 물건들에 신기해하면서 사장님이 주신 차 한 잔을 마셨다. 난 원래 얼어 죽어도 아이스인 사람인데 차를 마시고 난 뒤에 사람들이 왜 겨울에 따뜻한 걸 마시는지 이해하게 되었달까.
몸이 조금 따뜻해지고 난 뒤 본격적으로 메뉴판을 보며 우리가 먹을 차를 골랐다. 골랐다... 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메뉴판에 있는 수많은 차 이름들 중에 내가 아는 거라고는 녹차 하나였기 때문이다. 친구랑 메뉴판만 뒤적거리다가 결국 난 친구가 저번에 먹었다고 추천해 준 차를, 친구는 녹차 계열 중에서 하나를 주문했다. 우리가 주문한 차가 나오고, 사장님께서는 조심스레 우리에게 물었다.
차 마시는 법 알아요?
아니요.
머쓱하게 웃어 보이는 우리에게 사장님은 따듯하게 웃으시며 다시 말했다.
차를 처음 먹어본 사람이 와야 사장이 할 일이 생기죠.
그리고 나서는 입문자에게 조금 위험할 수도 있는 도구들을 치워주신 뒤 차를 먹는 방법에 대해 차근차근 알려주셨다. 물을 끓이고, 세차를 한 뒤, 우려먹는 방법까지. 사장님이 가신 뒤에 우리는 사장님께서 알려주신 방법대로 차를 마셔보려 했다. 조금 우당탕탕한 방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하는 거였나? 이게.. 맞나? 하면서.
그렇게 본격적으로 차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내 인생에서 이렇게까지 액체류를 많이 마셨던 건 술 마실 때 빼고는 처음이었다. 부담스럽지 않아 계속해서 마시게 되는 느낌. 이따 영화 보러 가야 해서 많이 마시면 안 되는데, 생각하면서도 물을 끓이고 있었다. 몇 번이고 우려내도 맛이 변하지 않아서 좋았다.
영화 보러 가야 할 시간이 다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을 하려는데 사장님께서 달력 필요하지 않냐고 물어보셨다. 엄청 따뜻한 사장님이네, 생각하며 친구와 함께 필요하다며 끄덕였다. 하나밖에 없다고 하셔서 괜찮다고 말하며 친구에게 줬다. 그리고 나서 사장님께서 달력을 꺼내시는데... 본의 아니게 달력에 적혀 있는 문구를 봐버렸다. 달력을 받고 나오며 친구와 이야기했다.
너 거기에 적혀 있는 거 봤어?
응. 봤어.
ㅋㅋㅋㅋㅋㅋ
아, 카페 달력인 줄 알았는데.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 카페 달력인 줄 알고 받았는데 이런. 아, 참고로 우리 둘 다 무교다.
뭐, 날짜만 적혀 있음 됐지.
고요하고 따뜻했던 내 첫 다도 경험이 뜬금없이 튀어나온 종교로 마무리되기는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앞으로도 종종 차를 마시고 싶어질 것 같은 그런 느낌. 특히 공기가 차가워질 때면 생각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