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가 되기를 바라며 - 다이룸이야기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나는
참 약한 아이였다.
착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유약하고, 타의적이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아이였다는
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도전도, 진취도 없었다.
어쩌면 인식하지 못한 채
나와 오래 얽혀 살아온
기면증 때문이었는지도.
나는 그 병이 내 안에 있다는 걸
성인이 되고 한참 후에야 알았다.
뭔가를 해보려 하면
늘 잠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졸음은 의지로 이길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고
그 때문에 받았던 시선도
그리 따뜻하지만은 않았다.
자신이 없으니
더 눈치를 보게 되었고,
눈치를 보다 보니
점점 더 작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내 삶에 들어왔다.
나와는 정반대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목소리가 크고,
자기중심이 분명한 사람.
나는 그 사람이 참 멋져 보였다.
그 사람과의 평생을 그리던 어느 날,
첫째 아이를 만났다.
아이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하던
설레는 시간 속에서도
나를 붙잡고 있던 건
나를 닮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줏대 있고, 패기 있고,
에너지 넘치고 건강한 아이였으면 했다.
그 뜻을 담아 지어진 이름,
‘다니엘’.
사자 굴에서도 꺾이지 않았던 사람.
끝까지 신념을 지켰고,
그럼에도 그의 말년은 힘들지 않았던 사람.
나는 그 이름에
흔들리지 않는 삶을 향한
나의 바람을 담았다.
그땐 몰랐다.
아이란 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아이는 유난히 단단했다.
단단해서 때로는
키우는 내가 버거울 만큼.
이미 지쳐 있던 나에게
아이의 영특함과
끝까지 혼자 해내겠다는 고집은
내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무게였다.
나의 힘듦에
그저 하루를 살아만 가던 어느 날
문득 아이 옆을 보게 되었다.
단단한 아이였지만
그 아이의 곁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앞자리가 잘 어울리는 아이였지만
아직 영글지 않은 리더십 탓인지
곁은 늘 조용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외로워 보였다.
그때 나는
그 이름에 담았던 내 뜻을
후회했다.
강하기를 바랐던 내 욕심이
아이를 혼자 서게 한 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아리고 안쓰러웠다.
둘째 아이를 만났을 때
나는 다른 바람을 품었다.
사람들 속에서 웃는 아이였으면 했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서는 아이였으면 했다.
그 마음을 담아 지어진 이름,
사랑의 천사 ‘가브리엘’.
둘째 딸은 사랑을 덜 받는다는
누군가의 말이 싫었기에,
더더욱
사람들 속에서 사랑받는 아이로
자라기를 바랐다.
언니처럼 단단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아이였다.
자연스럽게 사람들 속으로 스며드는,
사랑을 줄 줄도, 받을 줄도 아는 아이.
그리고 선물처럼 찾아온
막내아들.
자라난 아들들이 제 삶을 향해
가족과 조금씩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내 아들은 가족을 아우를 줄 아는
따뜻한 아이였으면 했다.
다정하되
제 방향은 분명한 아이.
어느 4월,
교회에서 들은 한 문장이 마음을 끌었다.
“다 이루었도다.”
그 뜻을 담아 지어진 이름,
‘이룸’.
가정을 보듬고, 자기 삶을 이루는
따뜻하고 단정한 아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렇게
다니엘, 가브리엘, 이룸.
세 아이의 이름을 따라
내게도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다이룸맘’.
이름이 그 인생을 끌어간다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다이룸’이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우리 가족의 삶과 더불어
나의 삶 또한
더 잘 이루어 가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제 이름의 몫을 살아내려 애쓰는
세 아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구석이 쓰릴 때가 있다.
부모의 바람으로 지어진 이름이
아이의 운명을 먼저 그어 놓은 건 아닐지.
혹시 아이에게
나의 결핍을 덧씌운 건 아닐지.
이름이 축복이 아니라
부담이 되지는 않을지.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그 이름을 닮아 자라고 있다.
다니엘은 제 중심을 지키고,
가브리엘은 사람들 속에서 웃고,
이룸은 제 속도로 삶을 이어가며.
이름이 운명을 정하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그 이름의 가치를 살아내는 건
아이들의 몫이기에.
나는 그저 그 곁에
조용히 서 있다.
그 이름이 짐이 아니라
날개가 되도록.
그 날개가 단단해져
스스로 하늘을 날아오를 때까지
너희의 뒤에서
너보다 먼저 마음 졸이고
너보다 더 아파하며
늘 같은 자리에서
엄마로 서 있겠다.
다니엘,
가브리엘,
이룸.
그리고
다이룸맘.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다 이루어 가듯,
나 또한
내 몫의 삶을
조용히 이루어 가겠다.
이 모든 시간을 함께 견디며,
묵묵히 우리 곁을 지켜 온
내가 많이 좋아했던,
지금은 아이들의 아빠가 된
그 한 사람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