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 담은 가르침 - 개띠이야기
세녀석 모두
더 자라기 전에
하나씩 오롯이 안고
따뜻하게 품어
토닥이며 재워주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하지만 사실은
셋 다
엄마 품이 그리워
목을 매는 통에,
누구 하나만 안고
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열이 펄펄 나고 아파야
합당하게
엄마 옆자리를 차지할 수 있으니.
아플까 전전긍긍하는
어미 마음은 모르고
내심 아프기를 바라는 눈치다.
끙끙 앓으면서도
엄마 품에 비비적대며 좋아하는 모습이
참 속없고
또 짠하다.
자다가 잠이 깨지는 횡재 같은 밤에야
엄마를 찾으러 오는데,
배실배실 웃으며
엄마 품이랍시고 기어들어오는 녀석들을
못 이기는 척 받아줄 수밖에.
오늘은 이른 저녁
둘째 딸이 빠르게 옆자리를 차지했다.
새근새근 자는 모습이 아직도 애기 티가 난다.
얼마나 지났을까.
빼꼼히 문이 열린다.
아들 녀석이다.
엄마를 찾으러 왔다가
누나에게 선수를 빼앗긴 아들 녀석이 말한다.
“하… 짠누나… 이미 찼어… 이미 차버렸어…”
아주 나라를 잃은 목소리다.
몸을 비스듬히 틀어
슬며시 옆자리를 내어주니
염치없다는 듯 조심스레 들어와
정작 엄마 품에는 기대지 못한 채
반대편 벽에 등을 붙이고 눕는다.
행여 엄마를 불편하게 할까
손도 대지 않고
눈을 꼭 감는다.
그 고운 성정이
갸륵하고 고마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이내 색색 고른 숨을 쉰다.
잠들기 전
큰누나와 한바탕 하고
혼이 난 밤이었다.
비슷한 성격 탓에
유난히 잘 부딪히는 두 녀석이다.
그런데 유난히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씩씩대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가 없을 때
이 아이가 오롯이 견뎌야 할
세상의 차가운 눈초리가 먼저 떠올라
마음이 덜컹 내려앉는다.
나야 아이의 성정과
아직 다 설명되지 못한 상황 속
억울한 속내 빤하니
짠하고 안쓰럽다지만
밖에서도 그럴까.
그 마음속 억울함을
뻔히 다 알면서도
나는 또 쓴소리를 더한다.
아프지만
이 아이의 지난했던 1년을 보았으니
더 이상 모른 척할 수는 없다.
감정이 먼저 밖으로 튀어나오는 쪽이
더 눈에 띄기 마련이니.
결국
가르치는 수밖에.
상황을 조리 있게 설명하는 것도
아직은 어렵다.
제 일이 아니어도
그냥 지나가면 될 일을
그냥 넘기지 못하고,
말로 풀 수 있는 일에도
감정이 앞서는 통에
자기 마음을 다 보여주기도 전에
방어할 기회도,
해명할 기회도,
좋게 풀어갈 기회조차
잃어버린다.
속은 한가득인데
말이 되기 전에
제 속의 화에 먼저 부딪힌다.
남는 건
다 전하지 못한 마음과
아이의 억울함뿐이다.
문득,
스르르 잠에 드는 아이에게
말을 걸어본다.
“이룸아.
화가 나도 한 번만 더 생각하고 화내자, 응?
화부터 내면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
“알았어… 엄마… 참아볼게…”
잠결의 대답.
“아니, 참는 게 아니고.
먼저 생각을 하는 거야.
생각하고, 그다음에 말하는 거야.
화를 먼저 내버리면
말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거야.”
참.
나도 못하는 걸.
어려운 말을 또 해버린다.
이미 아이는
새근새근 꿈나라다.
화를 내는 것.
그리고 참는 것.
나는
참으라고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억울한 아이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대신
생각하는 아이가 되었으면 했다.
하지만
부족한 어미는
어디까지 말해줘야 하는지
어디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여전히 어렵다.
이 귀한, 고운 아이의 마음이
상처 입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이렇게 된 이상
내일 하루가 개운하긴 틀렸지만,
잠결에 어둠 속
엄마 품을 찾은 그 마음을
모른 체할 수 없어
오늘도 나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
조용히 잠을 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