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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뚜막 고양이 Jul 12. 2023

1. 그녀의 죽음..

<  무제 >

 그녀의 죽음을 알게 된 건 신문 1면을 장식한 기사 덕분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굴지의 기업 막내딸이 갑자기 미국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스물한 살의 어린 나이에 심장마비라… 뭔가 석연치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나는 그녀의 죽음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녀가 지구 어디선가 살아 숨 쉬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아니 먼 나라, 아무도 알 수 없는 곳에 꼭꼭 숨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1997년, 그녀와 나의 인연은 도원외고 1학년 때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가 우리 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언론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댔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건설사 회장의 막내딸이었던 그녀는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프랑스어를 전공으로 선택한 나는 그녀와 같은 반에 배정될 수 있었다. 재벌가의 딸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처음에는 누구도 그녀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예상과 다르게 소탈하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로 친구들과 금세 친해져 있었다.

무표정한 그녀의 얼굴에서는 알 수 없는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아버지를 닮은 탓이리라. 가녀린 몸매에 비해 다부진 그녀의 모습은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학교 생활은 매우 타이트했고, 서울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우리들의 마음에는 늘 부담감이 한가득 올려져 있었다. 이미 도원외고에 합격했다는 사실만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뛰어난 아이들 사이에서 좌절감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여느 고등학생들처럼 분식집에 줄 서서 간식을 사 먹고,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며 소소한 행복들을 누리고 있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 쪽지 하나를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

“집에 가서 읽어 봐.”

그때까지 별다른 소통이 없는 우리였기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나는 얼른 교복 주머니에 쪽지를 쑤셔 넣었고,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으려 교과서를 꺼내 들고 책에 눈동자를 고정했다.

‘ 갑자기 이현이가 왜 나에게 쪽지를 건넨 거지?’

‘ 내가 맘에 안 드는 행동을 했나? ‘

’ 설마 나에게 고백하는 건 아니겠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에서 뒤죽박죽이 되어 책 속의 글자는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집에 가서 보라고 했지만,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화장실 문을 닫고 들어가 조심스럽게 구겨진 쪽지를 펼쳐보았다. 거기에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열 자리의 숫자만 적혀 있을 뿐이었다.

017- 794 - 4159

쪽지를 열어보았지만 나의 의구심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셔틀버스에 올라탔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의자에 머리를 대자마자 곧장 곯아떨어졌다. 옆자리에 타고 있던 친구가 나를 흔들어 깨워 일어나 보니 집 앞이었다.


집에 도착해서 간식도 챙겨 먹지 않고 내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앉았다. 다시 한번 쪽지를 펴 들은 나는 숫자를 한참 들여다보았다.

0.1.7.7.9.4.4.1.5.9

나에게 왜 전화번호를 준거지? 이현이가 왜 나에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나는 번호를 조심스레 눌렀다.

전화벨이 5번 울리고 나서야 그녀가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다.

“어.. 어.. 나야 상원이.” 나는 떨리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떨리는 마음을 숨기고 싶었고, 남자답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 오늘 피곤했지? 나도 정말 피곤하다. 과제까지 하고 자야 되는데 너무 졸려.”

그녀는 왜 전화번호를 준 건지 설명하지도 않은 채 관계없는 말들만 늘어놓았다.

“근데 이현아, 나한테 왜 번호를 준거야?”

“아이~ 그런 걸 꼭 물어봐야 되겠어? 나는 너에게 쪽지를 준 것만 해도 엄청 용기 낸 거라고.. 너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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