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걷는 시간

by 부뚜막 고양이
누구도 내 외로움을 채워줘야 할 의무는 없어.

이 문장을 속으로 되뇌다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더 쓸쓸해진다.

서글픔은 뿌리처럼 조용히 퍼지고,

그 감정은 내 어깨 위에서 묵직하게 앉아 움직이질 않는다.


하지만 그건 또 한편으로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현실이기도 하다.

기댈 곳 없이 혼자 설 수밖에 없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건,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매번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과

혼자 견뎌야만 하는 현실 사이에서

조용히, 아주 조용히 줄다리기를 한다.


가끔은 몸이 너무 지쳐서

감정까지 엉켜버리는 날이 있다.

마음이 나약해진 그날엔

문득 누구든 좋으니

그저 옆에 있어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그 누군가가 나를 꼭 껴안아주지 않아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함께 있어만 줬으면 좋겠는 그런 순간.


그런데 아무도 없을 때가 많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 순간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함께해 줄 사람은 드물다.

그게 외로움의 본질이 아닐까.


그러다 문득

‘그럼 내가 나를 챙기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고른 방법이 산책이었다.

혹은 트레드밀 위 걷기였다.


이 두 가지엔 공통점이 있다.

몸을 부드럽게 움직이는 동안,

내 안에 웅크린 감정들이 서서히 풀려나기 시작한다는 것.

슬픔도, 외로움도, 그리움도

꼼짝 않고 앉아 있을 땐 너무 버거운데

걷기 시작하면

조금은 나를 따라 움직여주기 시작한다.


산책은 해 질 녘이 좋다.

해가 천천히 물러가고,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들고,

사람들 틈에서 나는 ‘조금은 괜찮은 투명함’으로 걸어간다.

세상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나 혼자만의 세계를 지킬 수 있는 시간.

그건 생각보다 귀하고, 나를 다독여준다.


하지만,

사람들 틈에서 더 외로워질 때도 있다.

누군가는 연인과 함께 걷고,

누군가는 친구와 웃고,

그런 풍경 속에서

나는 아무도 불러줄 수 없는 이름처럼 고요해진다.


그럴 땐,

차라리 트레드밀 위를 걷는 게 낫다.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발걸음,

조용히 이어폰으로 흐르는 음악,

생각의 덩어리가 하나씩 녹아내리는 그 기분.

그건 도망이 아니라 ‘함께 있어주는 시간’이다.

내 감정과, 내 몸과, 지금의 나와.


“오늘은, 나를 위해서만 살아도 괜찮은 날.”


아무도 내 외로움을 채워줄 의무는 없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 공허한 자리를

조금은 부드럽게 덮어줄 수 있었다.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그러니까

나 자신이 해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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