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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미 May 01. 2024

아픈 아버지에 대처하는 가족의 자세

2월 말에 쓰러지시고, 3월 초에 병원에 옮긴 아버지는 위급한 상황은 넘겼으나 아직 온전한 정신을 되찾지 못하시고, 보행을 잘 못하신다. 원래 가지고 있던 치매였는데 워낙에 말씀이 없으시고 집에만 계시던 분이라 가족들이 모르고 지냈던 것인지 잘 모르겠다. 시간대를 혼돈스러워하시고, 아침식사가 나오면 아까 먹었는데 왜 또 주냐고 하시고, 집에 다녀가지 않은 사람들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하시기도 한다. '섬망'이라고 부르는 의학적으로 불안정할 때 나타나는 일시적인 혼돈상태는 분명히 있으신데, 치매에 병발한 섬망인지 아닌지가 우리 가족에게는 중요한 관심사이다. 


쓰러지며 생긴 골절이 두 군데나 있어 혼자 보행이 어려우신데, 보호자가 보지 않는 사이 휘청휘청 일어나서 걷는 것도 큰 문제이다. 한번 더 넘어지시면 다시 일어나기 힘드실 거란 위기감에 아버지 곁을 누군가 지키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가장 불안하고 힘든 분은 당연히 어머니이다. 병실에 계실 때 눈물을 보이기도 하고, 좋아지지 않으면 어쩌냐고 걱정을 하시기도 했다. 2주간의 입원 기간을 거치며 엄마는 위기 대처 모드로 변경을 하셨다. 동네에 지인들이 많아 매일 모여서 식사를 하고 티타임을 갖고 수시로 봉사활동을 다니시는 활동적인 분이 종일 아버지 옆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못하니 곧 우울증이 올 거라 예상했는데, 내 예상은 빗나갔다. 퇴원 무렵 엄마는 이제 괜찮다고 하셨다. 아빠와 함께 집에 갈 수 있으니 좋고, 원래 집에서도 혼자 잘 지내는 사람이라 외출 못하고 집에만 있어도 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근 5주째 집에서 지내는 어머니는 시간이 많으니 평소 안 보던 책도 읽고, 집안 청소도 좀 더 꼼꼼히 할 수 있다고 하시며 칩거 생활의 장점을 주르륵 열거하셨다. 

 

의외로 제일 힘들어한 사람은 나였다. 우울함, 무력함이 밀려왔다. 아픈 가족을 둔 환자들이 오면 하는 공감과 대처에 대해서는 이미 다 잊어버렸고, 난 우울하고 무기력했다. 병원에 출근하면 자동반사적으로 원래의 내 모습을 찾아 일을 했지만, 혼자 있는 시간에는 멍하고 눈물이 줄줄 흘렀다. ("길 가다 그냥 눈물이 흘러요"라고 말하는 환자들의 말이 너무 이해가 됐다.) 


그렇게 힘든 기간을 보내던 중, 언니와 번갈아 토, 일요일에 부모님을 뵈러 가다가 동시에 방문하게 된 날이었다. 부모님을 뵙고 나오면 늘 무겁고 슬픈 마음에 애써 밝은 척을 하며 집에 들어갔는데, 오랜만에 만난 언니는 정말 해맑았다. 하이톤에 밝은 언니는 "OO아, 아빠 우리를 보고 지금까지 한말 중에 제대로 된 말이 하나도 없어!!!" 두서없는 아버지의 모습을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하는 그녀를 보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실제 언니는 나보다 눈물이 더 많고, 부모님에 대한 애틋함이 더 크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우리가 잘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진지하고 심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아무튼 그날 언니는 엄마에게 나중에 외출할 때 입으라고 예쁜 옷을 한벌 선물해 주고,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를 보였다. 내가 환자들에게 강조하는, 아픈 가족이 있더라도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도 알아서 잘하고 있었다. 


아픈 가족이 실제 생겨보니 내가 지금까지 한 공감과 조언이 얼마나 마음에 박히지 않을 얘기들이었는지, 실제 적용하기 얼마나 힘들지 와닿았다. 아버지에 대한 걱정, 미리 더 신경 써드리지 못한 죄책감, 아버지가 아프고, 어머니가 병간호하느라 힘드신데 내가 웃고 떠들고 신나게 지내면 안 될 거 같다는 생각, 과거의 좋았던 기억들과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뒤범벅되어 마음이 무거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하고, 가족들을 챙기고, 환자들을 돌봐야 하니 다시 힘을 내보려 한다. 어머니가 하듯이 불편함 가운데 장점을 찾아보기도 하고, 언니가 하듯이 현재의 상황을 가볍게 밝게 바라보고 일상에 집중해보려 한다. 물론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돌봄을 게을리하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또다시 아픈 가족을 둔 환자가 오면 공감 후에는 결국 가족이 잘 버텨내야 한다, 일상을 유지하자라고 할 테지만, 그 일이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 더 마음을 담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장점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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