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해줄 수 있는 작은 일
아이들이 커가면서 친구들과 부딪히고,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오는 날이 생기기도 합니다.
어제 퇴근 후 집에 가자마자 둘째 아이가 볼멘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축구에서 말을 나쁘게 하는 애가 한 명 있는데, 내가 축구 못한다고 셔틀도 타지 말래"
"헐~ 걔 왜 그런 나쁜 말을 한대!! 코치님도 아니면서 왜 너한테 그런 소리를 한대~~"
"그치~ 너무 나빠. 다른 애들한테도 자꾸 험한 말 하고!!"
초보 엄마 시절에는 기분 상해하기보다는 상황을 이성적으로 보자고 하며 어린아이를 붙들고 되도 않는 성인과의 대화를 시도했었는데, 이제는 저도 내공이 쌓여갑니다.
"엄마가 몽둥이 하나 들고 축구교실 갈 때 같이 가야겠다~ 가서 그 애 혼내줄게!!"
아이는 움찔합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엄마, 엄마가 오는 건 좀 웃기기만 하고 애들이 안 무서워할 거 같아.
차라리 아빠가 오자~"
"야~ 너 엄마를 어떻게 보고 있었던 거야?!!!"
아빠가 올 때의 임팩트가 더 클 거 같다며 즐거운 상상을 하는 아이와 깔깔대다가 잠이 듭니다.
출근길 아침 큰아이를 데려다주는데 또 비슷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엄마, 어제 영어학원에서 같은 반 남자애가 나를 죽이고 싶대. 문구점에서 산 부적에 나 죽어라, 레벨 다운돼라, 학원에서 잘려라~ 뭐 이런 소원 빌거래"
"뭐?! 뭐 그런 말을 하냐!! 걔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쁜 말이니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하고 계속하면 선생님께 말씀드려야겠다~"
"이미 그렇게 했는데도 계속 그래"
"안 되겠다. 엄마가 몽둥이 하나 들고 영어학원 갈 때 같이 갈게!"
둘째에게 안 먹혔지만 다시 시도해 봅니다.
"엄마, 엄마가 오는 건 쫌..... 아빠가 오라고 할까?"
"헉. 야~ 엄마도 힘세~ 무서울 땐 얼마나 무섭다고!!"
.... 아이들에게 엄마는 약한 존재였나 봅니다.
다소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엄마가 너희들 뒤에 든든히 버티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 과한 리액션과 함께 몽둥이 드립을 쳐보았습니다만 다음부터는 아빠가 해야겠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밖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안 좋은 대우를 받고 오는 일들이 간혹 생깁니다. 이미 40년 이상을 살면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온갖 경험을 하며 극복해 온 엄마는 이제 웬만한 일에는 유연하게 반응하고 상한 기분을 오래 가져가지 않을 수 있지만, 고작 10년 미만으로 살아온 아이들에게는 쉽지 않은 문제들인 것 같습니다.
육아가 제일 힘들다고 느끼는 지점이, 내 문제면 스스로 견뎌내고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는데, 아이의 문제에서는 부모가 개입해서 해결해 줄 수 있는 게 제한이 있고 아이 스스로 이겨내길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부분입니다. 제가 통제감을 가질 수 없는 지점이지요. 아이가 불편한 감정을 스스로 다뤄내 보고, 불편한 친구들과의 관계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재정립하는 과정을 묵묵히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는 게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감정을 공감해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항상 내편을 들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으로 아이가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힘을 조금이라도 더 얻을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