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세대를 위한 노력
지난 주말 첫째 같은 반 친구와 근처 산에 다녀왔다. 10시쯤 만나 아이들이 힘들어하지 않을 정도까지만 다녀오자 하고 갔는데 생각보다 아이들은 다람쥐처럼 재빠르게 지치지도 않고 산을 뛰어올랐다. 둘이 손을 맞잡고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장난도 치면서 꽤 높이 올랐다. 어느 때는 엄마들이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로 가서 시야에서 사라질 정도라 이름을 외쳐 부르기도 했다.
산중턱에 앉아 챙겨 온 간식을 나눠먹으며 산 아래로 보이는 한강, 작게 보이는 아파트들을 내려다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셔본다. 산속 내음이 폐 깊은 곳까지 들어오며 몸이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어디까지 갈지 묻자 의외로 정상까지 갈 수 있다는 답이 나왔다. 기특하다~ 어디 갈 수 있는 만큼 가보자!! 하고 산을 다시 올라본다. 아이를 데리고 이 정도로 올라와본 게 처음이라 중간중간 위험해 보이는 구간이 나도 신경이 좀 쓰인다. 좁은 산길 아래로 발을 헛디디면 꽤 오래 데굴데굴 구르겠다 싶은 구간이 있다. 마주 오는 어른들을 피하느라 아이들이 바깥쪽으로 나서면 불안 불안하다. 조마조마 한 건 엄마 마음뿐 아이들은 마냥 신이 나있다. 큰 바위 옆쪽으로 설치된 밧줄을 잡고 올라가는 구간에서는 과연 아이들이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는 사이 이미 아이들은 밧줄을 잡고 척척 올라가고 있다. 키즈카페에서 느끼지 못하던 스릴과 쾌감을 아이들도 엄마도 느낀다. 더 오르겠다고 하는 아이들의 풀린 다리를 보며 하산할 길이 힘들 거 같아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고 설득해서야 데리고 내려온다.
마침 최근 읽은 조너선 하이트 박사의 불안세대가 떠오른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자연 속에서 놀아본 게 얼마만인가 싶다.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이기도 하고, 학원 기반 아동 기이도 한 우리 아이들. 스마트폰을 통한 놀이가 아닌 아이들이 직접 만나 서로 놀이를 하며 자연스레 대인관계를 익히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나치게 위험이 통제된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후 겪는 사소한 불안들에 취약해진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2010~15년 사이 십대를 보낸 아이들에서 우울, 불안이 증가되었다는 자료가 나오기도 하는데, 진료 중 요즘 20-30대의 스트레스 대처 능력이 유독 떨어졌다는 생각을 줄곧 해오던 터라 이제야 그 맥락이 이해가 된다.
평일에는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학원을 가니 한두시간 맞춰 놀기도 힘들다. 몇 명 모여 놀려고 하면 학원 스케줄 조정하고 시간 잡느라 번거로워서 중간에 뜨는 30-40분 휘리릭 놀다가 헤어지는 걸 선호하는 엄마들도 있다. 정해진 스케줄에 맞춰 간식 먹고 이동하는게 대부분 아이들의 생활이다 보니 놀이터에 가도 아이들이 별로 없다. 주말에 약속을 잡아 만나도 대부분은 키즈카페나 박물관. 아이들에게 지나치게 통제된 환경을 주고 있는건 아닌지,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한하고 있는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앞으로 종종 이렇게 자연속에 풀어놓자고 다짐해보고 다음 산행을 계획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