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아이 친구가 긴 머리를 똑단발로 자르고 나타났다. 알고 보니 소아암 환우를 위한 기부를 한 것.
자신의 머리카락을 꼭 필요한 친구를 위해 기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이는 이후로 기부 가능한 머리 길이가 되기를 고대하며 열심히 머리를 길러왔다.
25센티미터 이상이면 기부를 할 수 있는데, 자른 이후 머리가 너무 짧지 않아야 하니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드디어 25센티를 자르고도 비교적 생활 가능한 길이가 되어 이번 주말 거사를 치르러 다녀왔다.
두근두근하며 방문한 미용실에서 노란 고무줄로 머리를 묶고, 그 위쪽을 과감하게 잘라냈다.
아뿔싸~ 쑤욱하고 올라간 머리는 아이의 뒤통수 올라가지 말아야 할 곳까지 올라가고 있었다.
깜짝 놀란 나와 미용사의 마음과는 다르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마냥 신이 나있었다. 그래도 앞쪽으로 보이는 머리는 괜찮아서 다행이다.
최대한 심란한 마음을 숨기고, 예쁘게 잘 다듬어달라고 하고, 완성된 아이의 모습에 가족 모두 귀엽고 예쁘다며 환호를 보내주었다. 자신의 뒷머리를 볼 수 없다는 것이 지금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구나 싶다. 앞은 정말 귀엽고 예쁘다. 머리카락이야 다시 기르면 되니 다음 달에는 다시 정상적인 단발이 되어있으리라.
그렇게 아이는 똑단발을 하고 월요일을 맞이했다. 친구들이 놀릴거 같다고 염려를 하며 등교한 아이는 아니나 다를까 다채로운 놀림을 받고 왔다.
"어머, 우리 반에 새로운 남자애가 전학 왔네~"
"여자는 긴 머리가 예쁜데~ 좀 못생겨졌네"
다행히 아이는 놀림이 불쾌하긴 하지만, 예상했던 바이기도 하고 이런 놀림쯤은 털어 넘길 정도의 마음이 되었는지 꽤 적응적으로 반응했다.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며 아이들의 반응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최근 아이가 재밌게 읽은 오만과 편견의 '편견'을 이야기했다. 여자아이가 꼭 머리가 길어야 한다는 '편견'을 아이들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그 '편견'에서 비롯된 놀림에 마음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이는 긴 머리를 좋아하는 여자친구들의 심리가 아직 공주를 좋아하는 유치원 시절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거 같다고 나름의 분석을 했다. 공주가 긴 머리에 여리여리한 캐릭터가 많기는 하지만, 요새는 머리가 짧기도 하고 오히려 씩씩한 캐릭터의 공주도 많아지는 추세인데 말이다.
"머리가 짧아져서 못생겨졌다"라는 친구의 평가는 과연 나에게 중요한가도 중요한 이슈이다. 짧은 단발머리를 보고 예쁘다고 말한 친구도 있고, 이상하다고 말한 친구도 있어서 미에 대한 기준은 다양하다는 것. 내 머리이니 내가 만족하는 것이 중요할 뿐 부정적인 다른 친구의 평가에 반응하지 말자고 결론 내렸다.
머리카락은 잃었지만 아이는 그 과정에서 기부의 즐거움, 놀림에 대처하는 법, 편견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 외모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을 배웠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 기부였다.
아이 친구 엄마에게 연락이 와서 머리카락 기부가 있는 줄 몰랐다며 방법을 물어보아서 링크 공유합니다.